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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Mar 08. 2024

치앙마이 혼자 살기, 하루 종일 뭐하냐고?

님만해민 맛집, 카페, 요가원, 과일집 대추천!

알람은 9시에 맞춰뒀지만 언제나 그보다 일찍 눈을 뜬다. 단잠을 찢는 알람소리에 짜증스럽게 눈을 뜨는 것보다 훨씬 낫다. 서울에선 3번이나 울리는 알람 소리에도 깨기가 힘들었다.


포근한 침대에 엎드려 몸을 쭉 스트레칭한 뒤 커튼을 걷는다. 따갑지 않은, 딱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오늘은 공기가 좀 낫네"


화전이 시작되는 2월 말 치앙마이의 미세먼지는 날로 두꺼워지고 있었다. 날씨 어플을 볼 필요 없이 발코니 앞에 펼쳐지는 산의 능선이 얼마나 선명한지 확인하면 됐다.

활기차지만 시끄럽지 않은 '힙한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냉장고로 가 어제 사둔 신선한 망고와 유기농 무설탕 요거트를 꺼낸다. 푸딩처럼 탱글한 요거트를 크게 두 스푼, 망고는 반개 정도를 넣고 견과류가 섞인 그래놀라를 뿌려준다. 물을 끓여 가루커피를 한잔 만들면 아침 식사 준비 완료.


우물우물 달콤한 아침을 먹으며 노트북을 켠다. 어제 공부했던 영어 표현들을 훑거나,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간단히 정리한다. 치앙마이에 와서는 한번도 유튜브를 보지 않았고 중독되어 있던 릴스나 쇼츠도 안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두껍게 바른다. 밤새 헝클어진 머리도 질끈 묶는다. 어차피 요가 끝나고 샤워를 해야한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10시반 쯤 집을 나선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매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공기가 약간 매캐해졌다. 7분 정도 터벅터벅 걸으면 요가원이 나온다. 오늘은 75분짜리 하타 요가다. 


(난 '옴 가네샤 요가'가 티칭이나 분위기가 맘에 쏙 들어 내내 여기만 다녔다. 바로 근처에 있는 '애니 블리스 요가'도 티칭이 너무 훌륭한데 공간이 약간 답답한 감이 있다)

외관도 너무 예쁜 옴 가네샤 요가

11시 수업은 멀티레벨 반인데도 꽤나 힘들다. 하타든, 플로우든, 빠른 속도감의 빈야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75분을 꽉 채운다. 대신 서울에서보다 핸드 스탠드나 역자세가 적어서 크게 무리가 되진 않는다. 온몸의 굳은 곳들을 펴내고 속근육을 짜내고 나면 몇 분의 사바 아사나가 천국 같다. 


2월의 치앙마이는 건조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는데도 그늘이나 건물 안은 꽤나 시원하다. 크게 난 통창 밖으로 나뭇잎이 흔들린다. 가끔 싱잉볼을 울리는 날엔 황홀하기까지 하다.

분위기로 압도하는 옴 가네샤

요가가 끝나면 12시 30분.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왼쪽이 노부부와 손녀딸이 하는 맛집인데, 뜨끈하고 짭쪼름한 국밥 국물로 속풀고 싶을 때 추천한다. 삼겹살 튀김은 말해 뭐해 당연히 맛있다.

오른쪽 위치안부리 로스트 치킨은 워낙 유명한 맛집이다. 바로 옆에서 닭을 굽기 때문에 연기와 더위가 엄청나지만 치앙마이에서 단백질 섭취하기엔 이만한데가 없다.

치킨집 바로 옆에 있는 '카오톰밧디아오'는 태국식 김밥천국 같은 곳이다. 한달살기 하면서 매일매일 고민없이 갈데가 필요하면 여길 가면 된다.

약간 시원하고 고급진데 가고 싶을 땐 Ging Grai에 갔다. 여기 갈비찜 비슷한 것도 맛있는데(완전 한국인 입맛에 딱일 것) 도전적으로 시켜본 새우 에그 소스 어쩌고도 진짜 맛있었다.

로컬 식당에 가서 삼겹살 튀김, 로스트 치킨 등을 먹을 때도 있지만 여유롭게 커피까지 마시고 싶은 날엔 브런치 카페로 간다. On the bread 와 Cafe rosemary는 내 방앗간이다. 두 카페가 붙어있고 가는 길에 예쁜 꽃도 있어서 하루의 또 다른 기쁨이다.

보통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먹거나 클럽 샌드위치를 먹는다. 음료는 언제나 '아이스 타이 티' 강추한다. 서울에선 단 음료를 절대 안 먹는 나지만 타이티는 포기가 안되더라(살 엄청 쪘다). 천천히 밥을 먹고 책도 보고 멍도 때리다 보면 2시 정도가 된다. 집에 갈 시간이다.

집에 가는 길엔 언제나 단골 과일 가판대에서 여러가지 과일을 산다. 첨엔 망고를 사러 갔었는데 먹다 보니 수박이 정말 일품이다. 가끔은 파파야, 사과, 파인애플도 산다. 다 손질된 작은 봉지 하나가 15바트. 우리 돈으로 550원이다. 망고는 손질해주는 1kg(3개 정도)가 2800원. 여기가 천국 아닐까.

과일을 달랑달랑 들고 가다 못참고 수박 하나를 먹어버린다. 너무 달다. 샤워를 끝내고 더 시원하게 먹기 위해 아껴둔다. 집에 와서 샤워를 끝내면 보통 2시반. 수박이나 망고를 먹으면서 머리를 말리고 나서 침대 위로 간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두번째 보고 있는데 정말 명작이다. 휴가 와서 읽기 너무 좋은 책. 인생의 실존적 고민을 안고 있는 자에게도 너무 좋을 책.

책을 읽다보면 스스르 잠이 온다. 낮잠 타임이다. 한두시간 꿀잠에 빠진다. 낮잠은 보약이라던데 맞는 것 같다. 일어나면 네다섯시. 가 조금 더 지기를 기다려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올드타운에 있는 '그린 뱀부 마사지'는 몇년 전부터 치앙마이 오면 한번씩 들르는 곳인데, 망치로 두드리는 '탁센'이라는 전통 마사지가 꽤 매력있다. 기 예약 필수다.

진짜 로컬스러운 마사지샵이다

카페에 가서 두어시간 일을 하기도 한다. 카페의 성지답게 치앙마이에는 노트북 두고 일하기 좋은 카페가 정말 많다. 내가 자주 들렀던 곳은 The Barn Eatery And Design이다. 치앙마이 대학의 학생들이 많다. 조용하고 각자의 일에 집중한 모습들이 정겹다.

노트북 하기 좋다

저녁 8시가 넘으면 조금 심심한 기분이 들긴 한다. 서울과 달리 밤까지 하는 카페도 많이 없고, 구경할꺼리도 많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고독의 감정은 아니다.


나는 고독이 곁에 있는 사람의 유무가 아니라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분명 모든 이에게 저마다 고독을 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고독의 중력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공간.

나는 서울에선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하루 내내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 날에도 까만 새벽에 어둡게 스며들어 그 압도되는 기분과 싸우다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드는 날이 잦았다. 낮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북적대는 서울의 한 중심에 집이 있어도 마음을 푹- 뉘일데가 없었고, 매일매일이 좁고 딱딱한 관 속에 누워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답답했다. 조바심이 그치지 않았지만 막상 무언가에 집중하긴 어려웠으며, 적막이 두려워 언제나 TV를 끄지 않았다.


치앙마이에선 일주일 내내 아무랑도 말하지 않고 내내 혼자 밥을 먹고 낯선 큰 방에서 혼자 잠들어도 외롭지 않았다. 비를 굳이 켜놓지 않아도 헛헛한 마음 없이 책을 볼 수 있었다.

주말에만 여는 러스틱마켓

주말에는 마켓에 간다. 치앙마이는 아기자기한 소도시지만 주말마켓 만큼은 꽤나 알차게 볼게 많다. 나는 징자이마켓(러스틱마켓)을 좋아한다. 파는 물건들이 정말 예쁘고 질도 좋아서(대신 값도 비쌈) 날이 너무 뜨겁지만 않다면 아침부터 시장이 파하는 시간까지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지갑 사정이 허락한다면 더더욱 해피한 시간! 굿굿즈도 예쁜 소품이나 가방 등이 많으니 꼭 들러보시길.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머스 마켓도 열리는데, 태국식 코코넛 풀빵인 '카놈 크록'을 먹었다.

왼쪽이 바로 카놈 크록이다!

사실 나는 좀더 넓적한 빈대떡 모양의 '카놈 바빈'을 더 좋아하는데 찾기가 힘들어 먹지 못했다. 와로롯 시장에 카놈 바빈 찐맛집이 있다고 하니 가시는 분들은 꼭 사먹어보시길!


이번 여행에서 나는 생각이라는걸 정말 많이 했다. 만으로 10년 일하고 리프레시 휴가 겸 온 여행이기도 했고,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절대적으로도 생각이 많을 시기이기도 하고.


난 대체로 먹는거, 불편한거, 약간 더러운거(?), 아픈거, 그런건 되게 무던한 편인데 '인생, 행복, 마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같은 것들에 있어서는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다. 게 종종 날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위로해주는 말이 있었다.

예민한 영혼으로 태어난 것은 신의 실수가 아니라 축복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다른 이들이 놓치는 현상의 이면을 보고, 울림 있는 내면세계를 가지며, 문학과 예술에 감동받는다.

예민한 사람은 그 예민함으로 인해 고통받기도 하지만 그 예민함 덕분에 세상을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예술가에게 상처를 입혀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가한 상처가 걸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내 예민함과 감수성은 글을 쓰며 살라고 신이 내려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또 다른 의미의 큰 축복이었던 치앙마이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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