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11
가끔 이혼한 나를 보며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참고 살았어야지.”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아?”
이상하게도 나를 오래 봐왔고,
내 결혼생활의 안쪽까지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나를 아는 사람들만
언제나 충고를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용기 없어서 이혼도 못하면서,
불행한 결혼을 붙잡고 사는 게
더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왜 나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거지?
그렇다면,
그래서 너는 진심으로 행복해?
이 질문 앞에서는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이혼을 했는지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준이 아니라
행복한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의 내 삶이
남들 보기에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여자, 이혼한 엄마,
어딘가 미완성처럼 보이는 인생.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들보다
나는 훨씬 더 행복하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 앞에서
아빠 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를 좋아한다.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걱정이 들었다.
“제가…
나중에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이들이 너무 충격받지 않을까요?”
잠시 말을 고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은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라요.”
“아~~” 나는 순간 멍해졌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설명하고, 기다려야 할 순간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도
본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고,
부모의 모습을 배워가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여전히 말할 것이다.
“그래도 참아보지.”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참는 삶이
언제나 아이를 위한 선택은 아니라는 걸.
겉으로 유지되는 가정이
반드시 따뜻한 가정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나는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나를 잃어가는 삶 대신,
조금 외로워도 나답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분명히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의 방향도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의 삶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행복을 향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