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10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아이를 두고 나와라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흥분하며 말을 끊어버린다.
“뭐라고?”
“지금 아이를 버리라는 거야?”
“그게 엄마가 할 말이야?”
대부분은 그다음 말은 듣지도 않는다.
사실 나도 안다.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리는지,
얼마나 논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픈 말인지.
그래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들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 셋을 둔 친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늘 이혼을 꿈꾸며 산다.
가끔 그 집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속이 꽉 막힌다.
‘아… 진짜 왜 저렇게까지 말하지?
왜 저렇게까지 행동하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친구는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하지만,
어느 날은 진심을 담아 말한다.
“나 진짜 이혼하고 싶어.”
그럴 때 나는 웬만하면 이렇게 말한다.
“그냥 살아.”
“그래도 잠들어 있는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1%라도 들면… 그냥 살아도 돼.
죽이고 싶지는 않잖아~”
어쨌든 아이 셋의 아빠고,
지금은 너무 싫어도
살다 보면 또 힘이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
항상 이런 식의 대화였는데,
그날은 정말 진심으로 내뱉듯 말했다.
“야… 나 진짜 너무 싫어.”
그때 나는 두 가지 충고를 했다.
“진짜로 이혼하고 싶으면 일을 먼저 시작해.”
“일이 있어야 이혼을 하지.”
그리고 하나를 더 이야기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태로 이혼할 게 아니면…
아이들은 두고 나와.”
그 순간, 친구는 급흥분 상태가 되었다.
“뭐?”
“내가 아이들 때문에 이혼하려는 건데?”
“아이 없이 하루도 못 사는데 어떻게 두고 나와?”
여기서 대화가 끊겨버렸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면’이라는
전제는 사라지고,
오해의 불씨만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커피부터 한 모금 마시라고 권했다.
“잠깐만. 끝까지 들어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
엄마도 아이도 다 같이 바닥을 헤매게 되어 있다.
당장 잘 곳, 아이 맡길 곳, 일할 시간,
병원비, 학원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현실이 버텨주지 않는다.
친정 부모님의 도움도 없고,
아이를 편하게 맡길 곳도 없다면
상황은 더 답답해진다.
이혼을 당하는(?) 남편들의 특징이 있다.
집에서 아이를 살뜰히 챙기지도 않고,
살림을 돕지도 않는다.
둘 중 하나만 해줘도 대부분의 아내들은
이혼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런데 둘 다 아닌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혼하자. 그리고 아이는 네가 키워.”
라고 말하면, 그런 남편들은 당황한다.
그리고 대개 이렇게 말한다.
“양육비 줄 테니까 데려가.”
이게 첫 번째 포인트다.
온전한 양육비를 확보할 수 있다.
이혼 서류에 양육비 금액을 정확히 써야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경우도 있다.
“내가 키우겠다.”
라고 말하는 남편.
그때, 아이를 보낸다는 생각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아이와 함께 벌면서 버티는 삶보다,
혼자 벌면서 면접교섭권으로 만나고
용돈을 챙겨주는 게 아이에게도 정서적으로
더 편안할 수 있다.
세 번째.
혹시 아이가 “아빠가 좋아.”
라며 아빠를 따라간다 해도,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기본적인 애착이 있다.
조금만 크면, 반드시 엄마를 찾는다.
아이를 두고 나오라는 조언이
불쾌하고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아이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같이 무너질지, 혼자 먼저 살아남을지의 선택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아이를 전담해 줄 지인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나오는 선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혼 후의 삶은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삶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 현실을 감성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이성적으로 계산해 보길 바란다.
사랑만으로는
하루를 버틸 수 없고,
용기만으로는
아이의 내일을 책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