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9
회사 직원들 평균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
제일 어린 친구는 나랑 스무 살 차이.
딸은 스물둘.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이런 말을 싫어한다.
메뉴 고를 때도 그렇다.
“언니 먼저 하세요.” 이 말이 늘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메뉴 선택을 항상 상대에게 맡긴다.
나 때문에 싫은 음식을 먹고 있는 상대의 표정이
나는 유난히 불편하다.
사실은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었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라떼(?) 마인드가 없다.
그런 이유인지, 젊은 사람들도
나를 편하게 대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사람들에게
정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결혼 전에 꼭 살아봐야 해요.”
“동거는 필수죠.”
“그래야 결혼 잘해요.”
딸과도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 나지만,
이 말에는 솔직히 고개가 잘 안 끄덕여진다.
“동거가 나빠요?”
“보수적인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동거가 나빠서도 아니고,
동거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결혼을 잘하기 위한 동거’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실제로 10년을 동거하다가 결혼하고 6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 이야기도 들었다.
동거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는
같이 살아봤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동거는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그만하자”라는 말로 쉽게 헤어진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혼인신고 하나로 따라오는 책임감과 구속력.
그래서인지 같은 이유라도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동거를 오래 해도
결혼생활은 결국 다르다.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결혼은 복권이야. 긁어봐야 알아.”
정말 그렇다.
아무리 신중해도, 아무리 많이 봐도
결혼생활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김창욱 교수님은 결혼 전에
시댁 분위기를 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진심으로 도움이 되는 말이다.
그래도 그걸 다 본다고 해서 결혼의 결과까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결혼을 위한 동거는
추천하지 않는다.
대신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좋은 이혼을 위해서는 별거는 꼭 해보라고.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만,
막상 “별거부터 해보세요”라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그건 쉽지 않을것 같아요.”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괜히 더 복잡해질 것 같아요.”
이상하다.
이혼은 결심하면서 별거는 결심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별거하자’는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참고 참고 난 뒤에 나온
‘이혼하자’는 말이 오히려 더 쉬웠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이혼 후의 삶이
오히려 더 편해졌다고 느끼면서도,
그래도 나는 가끔 별거부터 해보고
이혼을 결정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혼을 생각하고 있고,
이미 이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나는 이혼 전에
반드시 별거부터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별거는
이혼을 위한 징검다리이기도 하고,
의외로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미움만 쌓이지만,
떨어져 지내면 조금 다른 시선이 생긴다.
그리고 이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갑자기 이혼했다고 하면
아이들은 준비할 틈도 없이 세상이 갈라진다.
하지만
부모의 직장, 환경, 상황 때문에
“당분간 따로 지내자”라고 하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부모도 알게 된다.
아이들이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아빠 보고 싶어.”
“엄마한테 가고 싶어.”
그 말을 들을 때 내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말 하나에 내 마음이 무너지는지.
그건 같이 살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별거를 해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별거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사이가 더 좋아지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이혼에 대한 확신이 되는 시간이 된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하나다.
도망치듯 결정하지 않는 것.
이혼이 흔해진 세상이라 해도,
이혼이 지나간 자리에
상처가 하나도 남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혼을 선택해야 한다면
떨어져서 한 번 살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좋은 결혼을 위해
억지로 살아볼 필요는 없지만,
좋은 이혼을 위해
잠시 떨어져 살아보는 건
충분히 해볼 만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