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12
처음 이혼을 결심했을 때
나는 상대가 너무 미웠다.
친구가 물었다. “많이 밉지?”
나는 바로 대답했다. “응. 진짜 싫어.”
그땐 그 말이 너무 쉬웠다.
왜 나는 이런 결혼을 했을까?
왜 조금 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왜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성급했을까?
상대를 원망하면서도
사실은 나를 더 많이 탓하고 있었다.
시간을 돌리고 싶었고,
선택을 지우고 싶었고,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는 생각에
밤마다 마음이 뒤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혼을 하고 내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날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나와 맞지 않았던 사람일까?
어쩌면 나를 만나서, 나와 계속 부딪히면서
더 날이 서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세상에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도 있다.
폭력과 학대, 명백한 잘못은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결혼은
그 정도의 문제라기보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이
억지로 같은 방향을 보려다
지쳐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대화로 풀고 싶었고,
상대는 침묵으로 버텼다.
“왜 말을 안 해?”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돼?”
이 짧은 문장 안에 우리는 계속 어긋났다.
나는 공감을 원했고, 상대는 그 방식이 아니었다.
그 차이가 쌓이고 쌓여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불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그래서 누가 더 잘못했어?”
마치 한 명은 가해자여야
이야기가 정리되는 것처럼!
처음엔 나도 열심히 설명했다.
“그 사람이 말이야…”
“그때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을 반복하는 내가 더 지쳤다.
이미 끝난 관계인데 왜 자꾸 그 장면을 다시 꺼내
누가 더 나쁜지 판결받으려 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끝까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남겨두면
내 인생이 계속 그 장면에 묶여 있게 된다.
감정만 현재형으로 살아 있는 셈이다.
결혼이 실패였는지 아닌지는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선택이었을 뿐이고,
그걸 인정하는 게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어쩌면 진짜 성장은
이혼을 결정한 순간이 아니라,
상대를 ‘악역’으로 두지 않기로 한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미워하지 않아도
내 선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끝난 관계를 굳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계속 남겨두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나는 나를 탓하지도 않고,
상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때의 우리는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걸 조용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인정이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