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2
그날도 햇살이 먼저 골목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해가 조금 들기 시작하면
바닥은 금세 따뜻해졌다.
아이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야, 여기 진짜 따뜻하다.”
“야 니 좀 치우라. 거 내 자리다.”
아이들이 웃고 밀치며 자리를 잡았다.
먼지 섞인 햇살이 바닥에서 반짝거렸다.
연은 흙냄새가 폴폴 나는
골목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공기알 다섯 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 번 굴려보더니 가볍게 던졌다.
예쁜 돌을 골라 끝을 다른 돌에
연신 문질러 다듬어 만든 공기알이었다.
공기알이 허공에서 잠깐 반짝이다가
다시 손바닥 위로 딱 떨어졌다.
“와, 또 다 잡았다.”
“연이 니 손에 자석 붙었나?”
연은 소리 내 웃었다.
웃을 때마다 얼굴이 더 하얗게 드러났다.
햇볕을 받으면 살결이 유난히 환해 보였다.
골목 아이들 사이에서
연이는 유난히 얼굴이 하얀 아이였다.
“연이 니 공기만 하면 와 이리 잘하노?”
“공부도 그만큼 하면 안 되겠나?”
어른들이 웃으며 말을 던지고 지나갔다.
연은 그 말이 농담인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그런 말은 늘 가볍게 지나갔다.
연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어른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은 유난히 연을 좋아했다.
“연아, 니 차례다.”
“알았다, 알았다.”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공기알을 던졌다.
아이들이 “오~~” 하고 동시에 소리를 냈다.
연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놀다가도 연은 가끔 고개를 들었다.
웃다가도,
공기알을 주우며 잠깐 멈춰 서서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잘 들지 않는 쪽,
그 골목 끝을
연은 유난히 자주 돌아보았다.
“어데 보노?”
“아이다.”
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괜히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연아, 나 먼저 간다.”
“엄마가 밥 묵으라 카신다.”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흩어졌다.
골목은 금세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 떠들던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연은 마지막까지 남아
공기알을 주워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공기알은 햇볕을 머금어 따뜻했다.
“연아, 집에 가자.”
연이를 유독 더 예뻐하던
세 살 터울의 오빠가 연을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은 괜히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서 있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연은 한 번 더 골목 끝을 바라봤다.
이런 연이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오직 오빠 한 명뿐이었다.
“뭐하노. 오늘은 아빠 안 오신다.”
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아빠가 저 골목 끝에서
불쑥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연은
놀다가도 자꾸 그쪽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아닐 걸 알면서도
조금만 늦게 오면
누군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빠라는 말도,
그리움이라는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연은 오늘도 골목 끝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날의 햇살은 오래도록 따뜻했다.
하지만 연은 그 따뜻한 빛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의 연은 아직 몰랐다.
밝은 날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그 서늘하고 허전한 마음의 이름이
아빠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