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3
연이가 기억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아빠라는 존재가
옆에 있지 않다는 걸 연이는 알게 되었다.
혹시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 때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왔었다.
미리 알린 것도, 큰 소문이 난 것도 아니었다.
연은 그날 집 안 공기가 좀
다르다는 걸 먼저 느꼈다.
"연아, 방에 좀 가 있어라."
어머니 목소리는 낮았고 단정했다.
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도 전에 문 여는 소리,
신발 벗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습니꺼."
"어."
짧은 말이 오갔다.
연은 방문을 살짝 열었다.
거실에 서 있는 남자는 연보다 훨씬 컸다.
처음 보는 얼굴 같기도 했고,
오래된 사진에서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아부지 오셨다."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이 집 안에 잠시 머물렀다.
아버지는 연을 보고 웃었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웃음이었다.
"연이지?"
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다가와 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은 따뜻했고, 조금 거칠었다.
"많이 컸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래간만에 오셨는데,
연이도 크고… 시간 참 빠르네예."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아버지는 며칠 집에 머물렀다.
연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다.
밥상에 숟가락이 하나 더 놓였고,
저녁 불도 좀 더 늦게 꺼졌다.
거실 탁자 위에는 아버지가 가져온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 온 과자, 장난감, 학용품등
어머니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연이의 집은 원래도 다른 집과 달랐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는 집안의 사위가 되었기에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연이도 여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따로 일을 하지 않으셨고,
양옥 집도 이 골목에선 눈에 띄는 집이었다.
"밥 더 묵으이소."
"됐다. 많이 묵었다."
어머니는 더 권하지 않았다.
아버지 말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대화도 함께 끝났다.
밤이 되면, 연은 이불속에서
부엌 쪽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며칠 계시다 가실 낍니꺼."
"이번 주만 있다 가야 된다."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거기는 괜찮습니꺼."
"괜찮다."
아버지의 대답은 짧았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말을 꺼내다 멈췄다.
"…잘 크고 있습니꺼."
"그래."
어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많은 질문을 한다는 건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어색하고 뭔가 편하지 않은 거 같았다.
그 말들 속에서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걸,
어린 연도 짐작했다.
아빠가 있는 곳, 저 멀리 일본.
거기 나보다 어린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 걸.
며칠 뒤, 아버지는 다시 짐을 쌌다.
연은 그 장면을 마루 끝에 서서 지켜봤다.
"또 가시예?"
연이 물었다.
"그래야지. 가서 할 게 있다."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아버지는 연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였다.
"말 잘 들어라."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울지는 않았다.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사람을 붙잡는 말이 뭔지, 연은 몰랐다.
"금방 올 끼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연에게 그 말은 약속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문을 나섰고, 돌아보지 않았다.
연은 골목 끝 세상으로 사라져 가는
그 등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늘 그렇게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골목 끝에서 다시 나타나곤 하는 존재가 되었다.
마치 그 골목이 두 개의 세상을
나누는 경계인 것처럼.
한쪽에는 어머니와 연이 있는 집.
다른 한쪽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야 할
또 다른 가족과 일본.
연이의 마음 한구석에는
떠나는 사람을 기다리는 법과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훗날, 연이는
누군가 자신의 곁에 오래 머물러 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었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