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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Apr 19. 2022

빛의 향연 - 예산 수덕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0. 날씨 좋은 날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는데, 이런 날은 거울 못을 비롯해 석조물 정원 쪽의 석탑을 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이날 나의 목적은 박물관 내부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한쪽에는 이미 4월 말, 5월 초 진행되는 전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득 지금 전시실의 모습은 어떨지, 관계자분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엄청 바쁘고 긴장되는 시간들이겠지...?


1. [빛의 향연 - 예산 수덕사 괘불] 전시


이날의 첫 번째 목적지는 2층 불교회화실에서 열리는 [빛의 향연 - 예산 수덕사 괘불] 전시였다. 불교회화실이 길쭉한 모양으로 생겼고 괘불 전시 공간이 사실상 한 쪽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괘불을 한 번에 쉽게 찾아가려면 204호 목칠공예실 쪽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는 게 좋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불교회화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 현재 불교회화실에서 진행 중인 [화승畫僧-끝나지 않은 이야기] 관련 설명은 아래 포스팅 참고 바람.

충청남도 예산의 수덕사는 정규교육과정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사찰이다. 수덕사 대웅전이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 목조 건축물 중 지어진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고려 시대 목조건축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함께 놓고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의 차이를 배운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수덕사에서 올라온 괘불화와 목조 연화대좌를 볼 수 있다. 또, 수덕사 대웅전에 그려져 있었다고 하는 벽화의 모사본도 전시된다.


전시는 무료이며 올해 10월 16일까지 진행된다.


2. 보물 [예산 수덕사 괘불]


괘불은 절에서 야외 행사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걸어놓는 대형 불화다. 이러한 형태의 불화가 정확히 언제 그려지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괘불이 17세기 이후의 것들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천도재(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가 많이 열리면서 확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인 것 같다.

실제로 보면 '대형 불화'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세로 10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는 물론이고 중앙에 자리한 부처님(본존불) 주변으로 일렁이면서 퍼져나가는 빛의 물결이 큰 감동을 준다. 


본존불인 노사나불 주변으로는 부처님 제자와 여러 보살들이 모여들고 있다.  노사나불은 미륵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같은 부처님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로 "오랜 수행으로 공덕을 쌓아 부처가 된 보신불"이라는 설명이다.

화폭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는 듯한 빛, 생생하게 그려진 보살과 부처님 제자들의 모습도 볼거리지만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여러 장식으로 몸을 꾸민 노사나불의 모습도 괘불화 한가운데에서 당당하게 중심을 잡고 있어 오래도록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부처님이 이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기존 불화 등에서 찾기가 힘든지 학계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괘불 20점을 "장엄신 괘불화", "대관보살형 괘불화" 등의 이름으로 따로 분류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장엄신 괘불화는 17세기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그려지다 이후 경북으로 확산되어갔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형태의 괘불화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여러 논의가 있는데 내가 뭘 많이 보진 못했지만 당시 충청지역에서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흐름이 존재했을 것이란 접근이 많은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해석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이 보관을 쓴 대형 석불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시대와 양식을 초월한 예술의 영향력이랄까...

수덕사 괘불은 17세기 충청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응열의 주도로 그려진 작품이다. 조선의 승려장인 전시를 본 이후에는 불화나 불상을 볼 때마다 가능하면 화승의 이름도 함께 외우려고 노력 중... 


아무튼 이 응열이라는 화승은 수덕사 괘불에 앞서 이와 아주아주 유사한 형태인 "공주 신원사 괘불"(국보) 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두 작품이 동일한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성은 거의 똑같고 세세한 표현이나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주 신원사 괘불은 지난해 같은 시기 국중박에서 "빛을 펼치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덕분에 지난해 못 봤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3. [목조 연화대좌]와 [대웅전 벽화 모사도]


괘불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보면 목조 연화대좌가 있고 뒤로 돌면 대웅전 벽화 모사도가 있다.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의 연꽃 모양 나무 대좌다. 원래는 불상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 그 불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려 시대 목조 대좌로는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며,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사찰 바깥으로 나왔다. 14세기에 조성된 물건이라고 하니 거진 700년 만의 서울 방문인 건가...?

좌우로 위치한 디스플레이가 계속 유리장에 비치는 통에 사진 찍기 정말 불편했다. 정면은 어렵고 이렇게 비스듬히 찍거나 위 사진처럼 대좌의 일부만을 근접샷으로 찍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왼쪽=고려 시대 원예 전통을 보여주는 벽화 모사도 / 오른쪽=물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을 그린 벽화 모사도

현재는 소실됐지만 다행히 모사본으로 남은 수덕사 대웅전 벽화들. 왼쪽 것은 서벽, 오른쪽 것은 동벽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아주 예쁜 그림이다.


동벽 벽화의 경우 이 그림 바깥쪽에 조선시대 벽화가 있었는데, 대웅전 수리 공사 과정에서 안쪽에 있었던 고려 시대 벽화가 드러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서벽 벽화도 같은 경우인가 싶은 의문이 들었으나 따로 설명이 없어서 동벽 벽화에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싶음.


1937년 대웅전 수리 공사 당시에도 고려 시대 그려진 벽화의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고 이후 전쟁 등을 거치면서 사라져버렸지만 수리 공사에 참여했던 임천 선생이라는 분이 모사본을 남겨 이 멋진 작품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방배4동성당 화이팅

전시를 보고 며칠 뒤 성당에서 부활절이라고 단상을 꽃으로 꾸며놓은 모습을 봤을 때 수덕사 대웅전 벽화 모사도가 떠올랐다. 종교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화병에 꽂힌 꽃의 종류도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4. 그 외 볼거리


괘불 아래쪽에 놓여있는 길쭉한 상자가 괘불을 보관하고 운반하기 위한 괘불궤인 것 같다. 전시 다녀와서 찾아보니 수덕사 괘불궤 양쪽 끝에 구멍이 나있다고 하는데 이때는 그걸 확인하지 못했다. 중박은 조만간 또 갈 거니까 그때 잠시 들러서 확인해 보든지 해야겠다.


국중박 이애령 미술부장님 인스타에 가면 수덕사 스님들이 괘불을 직접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공개되어 있지만 개인 인스타라 직접 링크를 옮기기는 좀 그렇네...) 저 나무 상자 그대로 옮기지는 않고 흰 천으로 감싸서 옮기시는 것 같더라. 상자와 괘불의 무게를 합치면 380kg이라고... 


이렇게 전시를 보는 사람이야 편하게 보지만 준비하는 자체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수덕사 괘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자료도 비치되어 있다. 괘불 앞에는 이번 전시의 도록이 놓여 있어 살펴볼 수 있으며, 3층 불교조각실에 마련되어 있는 괘불 감상 공간에는 터치스크린으로 수덕사 괘불에 표현된 인물과 무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다. 키오스크 터치감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음;;

특히 계단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처님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괘불을 볼 수 있는 3층에서도 괘불을 꼭 보라고 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키오스크도 3층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 조각실도 워낙 볼게 많으니...


5. 빛의 향연


수덕사 괘불이 바깥에서 걸린 모습을 상상해 봤다. 은은한 박물관 조명이 아니라 너른 공터에 높이 걸린 압도적 크기의 괘불, 그리고 밝은 햇빛과 부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괘불 속 세계와 현실을 모호하게 만들어 놓을 것 같았다.


그 앞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괘불 앞에서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은 제각각이겠지만 수덕사 괘불의 휘황찬란한 빛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듯하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도 너무너무 좋은 날씨에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도 점점 끝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풀리면서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요즘 느끼기에 아주 적절한 감정이 아닐까?


마침 국중박이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개최한 이 괘불 전시에 "빛의 향연"이라는 제목을 붙인 만큼, 어두운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잔치에 들러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갔으면 좋겠다.


나는 괜히 부처님 오신 날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해져서 그때 한 번 더 가볼까 싶네... 정말 좋았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전시는 아니니 국립중앙박물관 2층을 꼭 한 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6. 참고 문헌


1. 17세기 충청도 지역 장엄신 괘불화와 화승 응열, 경유진, 불교미술사학, 2021

2. 1653년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을 중심으로 살펴본 조선시대 야외의식과 괘불, 정명희, 동아시아불교문화, 2019

3. 조선 17세기 충청권역 대관보살형 괘불의 특색, 박은경, 문물연구, 2013

4.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거는 부처님, 이현주, 서울신문, 2022. 04. 18,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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