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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Jan 24. 2024

첫째의 아기짓

37개월의 찬유


찬유가 오늘 내 가슴팍을 베고 잠이 들었다. 엄청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찬유는 원래 항상 잘 때 팔베개도 안 하고 토닥토닥도 안 하고 옆에 누워있어주기만 하면 자던 아이여서 잠들 때 스킨십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어쩐 일인지 밤에 자러들어가기 전에 내 품에 안기더니 ‘졸려~’ 하고 말하고 ‘엄마가 안아줘’ 하기에 품에 폭 안고 재우러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도 ‘엄마가 안아서 재워줘,’ 하기에 왼쪽 팔을 펼쳐서 찬유 머리를 어깨 근처에 뉘였다. 그 자세로 한참을 종알종알 말을 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살짝 잠든 듯 하더니 갑자기 일어나 앉았다가 내 가슴팍에 머리를 푹 파묻고 몸 전체를 내 몸에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젖먹이 아기 때 처럼 오랜만에 내 몸을 베개 삼아 잠이 든 나의 첫째, 우리 찬유를 보고 있으니 찡했다. 고맙고, 행복하면서도 나의 첫 아가, 우리 찬유 한 명만 오롯이 바라보며 사랑했던 그 때가 떠올라 뭉클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찬유는 스킨십을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할 정도로 우리 찬유는 앵기는 맛(?)이 없는 아가였다. 정말 잘 웃는 세상 밝은 아이였는데 애교가 많지는 않았다. 손 잡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안아달라는 말도 거의 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진유는 찬유 처럼 생글생글 웃는 아기는 아니었는데, 6-7개월 쯤 부터 팔을 쭉 뻗으며 안아달라는 표현을 하기에 ‘우와, 이렇게 일찍 부터 안아달라고 하는 아기도 있구나!’싶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돌 전후로는 엄마, 아빠에게 와서 부비며 예뻐해달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웃고 있는 걸 보면 ‘무슨 일이지?’하고 뚱 하게 쳐다보는 찬유와 달리 진유는 뭔지 몰라도 일단 같이 웃었다.

그런 진유를 보고 배운 걸까? 찬유는 세 돌이 가까워지며 안아달라는 표현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날씨가 많이 춥거나, 그냥 어리광을 피우고 싶을 때 안아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찬유의 이런 변화가 좋았다. 물론 둘 다 안아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안아줘’라는 찬유의 표현은 참 좋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랬다. 아기 때의 나는 엄마, 아빠에게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는 걸 정말 못 하던 아이였다.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한참을 그 앞에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집에 가자’는 부모님의 말에 마지못해 차에 타서는 뒷자리에서 엉엉 울음이 터져버리는 아이였다. 그랬던 나도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많이 바뀌었다. 동생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드러누워서 들어 줄 때까지 떼를 쓰는 아이였다. 어찌나 애교도 많고 넉살도 좋은지 만나는 어른들마다 다들 어쩜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냐고 했다. 그런 동생의 존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싶어 나도 조금씩 나의 감정에 대한 표현을 늘려갔던 것 같다.

찬유에게 진유의 존재가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우리 찬유는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탈이지만, 진유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감정적으로 조금 버티기 버겁다고 느끼는 순간에 ‘엄마한테 앵겨서 어리광 부리고 싶어!’하는 표현은 잘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찬유에게 너무나 고마운 건, 동생을 (거의) 질투하지 않는다는 거다. 진유가 아주 아기일 때 부터, 찬유는 우리가 진유를 돌보고 있는 순간에 우리에게 와서 짜증을 낸다든지, 일부러 관심을 끌만한 행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진유가 우리 집에 처음 왔던 순간 부터 진유를 너무나 예뻐해줬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얘네도 ‘찐형제’들이라 뭐 서로 살가운 표현 같은 건 없는데, 서로가 없으면 엄청 허전해하고 같이 놀 때면 서로의 존재만으로 그저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최근에 찬유가 평일에 한 번 열이 나서 등원을 못하고 병원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진유가 어린이집 가고 없으니 계속 진유를 찾았다.

“엄마, 진유는 어딨어? 진유 보고싶다. 진유가 없으니까 심심해.”

만 20개월에 형아가 된 우리 찬유는 아마 자신이 기억하는 삶의 모든 부분에 진유가 함께 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찬유가 이렇게 오늘 밤 처럼 아기짓을 하는게 좋다. 원래 기질이 독립적이고 씩씩한 아이일지라도 엄마, 아빠에게는 언제까지나 아기처럼 어리광피워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을 찬유가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우리 찬유의 뜬금 없는 아기짓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울애기 인뉴와! 엄마가 안아쥬께!’ 했다.





2024.01.23

37개월의 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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