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트니 휴스턴의 ‘Whitney’를 들으며
공항전철을 타고 강 건너로, 해가 지는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강물은 잔잔했다. 붉은빛이 전철의 유리창 가득 스미었다. 꼬마 아이 둘이서 모의한 듯 일어나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몇몇 승객도 휴대폰을 꺼내어 창밖을 촬영했다. 나는 아이들을, 너머의 노을을 바라보았다.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전철은 역과 역 사이를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P에게 전화가 온 것은 바람이 거세던 8월의 아침이었다. P는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며 지금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급작스러운 비보에 별다른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멜버른에서 알게 된 P는 호주 영주권자로 나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커피콩과 쿠키를 종종 선물하던 유쾌한 친구였다. 달고 쓴 마음에 위로가 된 적이 많았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때면 우연히 마주친 척 동전을 던져준 이도 P였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생일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준 것도 P였다. 그러면서도 P는 언젠가 떠날 사람에게는 정 따위는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떠날 사람 중 하나였고, P는 그곳에 남아 삶을 꾸려나가야 할 운명이었다. 호주에서 다른 나라로 떠나던 날 P는 내게 무뚝뚝하게 작별을 고했고, 나는 다소 무심하게 그 반응을 받아들였다.
장례는 제주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태풍 때문에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힌 상태였다. P는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장례 일정이 잡히면 알려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력한 태풍이 제주를 할퀴고 내륙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가 발표되던 날이었다.
6100m의 고도로 시속 800km의 속도로 제주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비행기는 많이 흔들렸다. 밤바다는 하늘과 구별되지 않게 어두워져 버렸고, 먼 하늘에 잔존하던 빛의 무늬도 희미해져 갔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색은 흐려지고 흩어졌다. 애써 눈을 감아보아도 잠들 수 없었다. 잡지를 뒤적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음악을 듣기로 했다. 귀는 늘 열려 있으니까. 처음에는 카펜터스의 ‘Close to you’를 들었다. 그러다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을 레이철 야마가타의 ‘You won't let me’를 조규찬의 ‘무지개’를 반복해서 들었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드뷔시의 ‘달빛’을 레리 칼튼의 ‘Room335’를 박효신의 ‘숨’을 들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가 나오던 차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나는 음악을 정지시켰다. 버스에서 내려 장례식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어둡고 삭막했다. 나는 준비한 조의금을 봉투에 넣고 화장실로 들어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지 몰라 거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부고 소식으로부터 이미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향과 초가 꺼지지 않은 그 밤, 나는 P의 곁에서 술을 마시고 맥락 없는 농담을 던지고 서투른 위로를 건넸다. 바보 같은 질문도 하고 말았다. 지금 당장 듣고 싶은 음악은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대답하기를 난처해하던 P는 자리를 옮겨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다. 나는 잠시 바람을 쏘이고 돌아와서는 장례식장 구석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귓가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발인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P는 제주에 남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되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들었다. 떠오르는 건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였다. 미뤄둔 과제를 해결하듯 나는 그녀의 음악을 무작위로 재생했다. ‘Greatest love of all’과 ‘I will always love you’와 ‘One moment in time’과 ‘When you believe’를 ‘Saving all my love for you’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레코드점에 들러 2집 앨범 <Whitney>의 LP를 샀다. 이제 세상에 없는 휘트니 휴스턴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1987년 발매된 그녀의 두 번째 앨범 <Whitney>는 여성 최초로 빌보드 1위를 달성한 앨범이다. 그녀는 냉전시절의 배신과 음모 그리고 사랑을 다룬 뮤지컬 체스의 주제곡인 ‘I know him so well’을 이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부른다. 이 노래의 첫 가사는 이렇다. Nothing is so good it lasts eternally. 어떤 것도 영원히 남을 수는 없지. 체념하듯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고 짙은 슬픔을 각인한다.
나는 며칠 동안을 휘트니 휴스턴으로 채웠다. 또한 제주에서 홀로 돌아가신 P의 아버지를, 태풍에 발이 묶인 P를, 빈소를 지키는 P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았다. 어쩌면 나는 음악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삶을 이어가야 하니깐.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노래라도 불러서 귀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제주로 간 것이리라. 휘트니 휴스턴의 힘찬 목소리를, 슬픈 목소리를, 나약한 목소리를, 허무한 목소리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명랑한 그녀의 목소리를 나는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처음부터 휘트니 휴스턴을 들을 마음은 없었다. 그 노래는 장례식장 앞에서 멈춘 우연한 음악일 뿐이고, 즐겨 듣는 노래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 멈춘 노래일 뿐이었다.
P는 호주로 가야 한다고 했다. P를 다시 만난다면 바보 같은 그 질문을 또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어코 돌아온 답이 휘트니 휴스턴이 아니라도 좋다. 가령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라 해도 귓가에 맴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뜨거운 태양이 기울고 있었다. 해가 지는 방향이 제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이 제주라고 잠시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