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자 1,000만원으로 결혼하기.
기존 연애를 정리하고, 소개로 알게 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됐다. 그런데 난 돈을 버느라 정작 연애에는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이 남자는 내 수중에 돈이 500만 원밖에 없는 것을 알고 연애를 시작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지금 아니면 다른 여자를 못 만날 것 같다고 했다.ㅋㅋㅋ)
이 사람의 마인드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는데, 앞으로는 자기가 하는 일보다 내가 하는 창작의 일이 더 가치 있어질 거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고 시간이 없는 나를 위해 집 앞에서 데이트하거나 2주일에 한 번 만나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30년 넘게 결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진심으로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 막상 이 질문을 들으니 대답한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집으로 들어왔다. 돈 없다고 도망간 남자들도 많은데, 이 사람은 기다리겠다니. 그제야 결혼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는 결혼식이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친구가 많이 없었고, 돈도 없었다. 뭐 하나 고를 때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금액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친구들 중에 제일 꼴찌로 결혼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을 한다면 소규모 웨딩을 진행하고 싶었다. (나중에 보니 이게 더 비쌌다.-_-)
이번에 결혼하게 될 거 같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부모님은 웨딩드레스와 예식장, 뷔페 등 일반적인 결혼에 대한 환상에 대해 늘어놓으셨다. (대리만족 이신 듯했다.)
K 장녀인 나는 부모님을 위해 부모님의 장단에 맞춰드리고 싶었다. 우리를 키워주시던 그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리고 새아버지이신 우리 아빠에게도 감사함과 가족의 소속감을 드리고 싶어 우리 부모님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결국 결혼식의 우리의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니라, 부모님의 로망이었음을 인지하기로 했다.
결혼식의 방식에 대해 부모님께 맞춰드리긴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우리끼리 정했다. (어차피 결혼비용도 우리의 돈이었기에.) 부모님께서 한 푼도 대주시지 않아 우리끼리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이런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예식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이름하여 패키지 결혼이랄까..!
드레스, 앨범, 반지 등등.. 모두 기본 패키지 안에서 골랐다. 우리 남편은 이런 와이프를 얻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ㅋㅋㅋ 난 이런 게 진심으로 귀찮다.
대신 부모님 한복이라던가 메이크업 등은 돈을 추가해서라도 가장 비싼 것으로 맞춰드렸다. 그래서 결혼사진을 보면 우리 엄마, 아빠가 새 부부 같으시다.
우리가 가장 고민했던 건 이것 하나였다. 지하철 노선도를 펼치고 "어디가 가운데일까?" 정하고, 역에서 가장 가까운 예식장을 골랐다. 집 앞과 본가끼리의 중간. 딱 두 개 골랐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돈으로 하는 결혼이기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
"ㅇㅇㅇ신부님~" 이때부터 내 이름 뒤에 신부님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너무 어색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돈을 쓰는 입장에서 예식 구성에 대해 가장 눈길이 갔다. 돈에 비해 공간이 괜찮은지, 식사는 어떤지,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때, 가장 비수기를 골라서 예식장을 예약했다. 우연히 명절 전 주와 겹쳐 여행을 빠듯하게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 시기라서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인원 제한도 있어 힘들었던 부분도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호재였다. 애초에 인싸가 아닌 우리는 적은 손님만 초대하고 싶었고, 보증 인원도 적게 계약했다. 그 덕에 대관료도 무료에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위험한 때에 결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때 하지 않았다면 최소 3년은 결혼하지 못한 채로 지냈을 것이다. (우리에겐 2세 계획이 있어서 빠른 시일 내에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건 신의 한수였던 듯!)
해가 지날수록 물가는 오르고, 또 오른다. 지금은 아주 스펙터클하게 물가가 올랐지만 우리는 이 당시에 약 1,000만 원으로 결혼을 했다. (각자의 집 식사비는 더치페이) 나와 신랑의 옵션(?)은 모두 무료인 선에서 골랐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크게 아래의 항목으로 구분했던 기록이 있다.
- 대관료 무료, 부케, 헬퍼 비용, 본식 스냅(영상 안 함), 사회자, 주례 등등 225만 원.
- 스튜디오 촬영, 원본 구매 등 약 150만 원.
- 부모님 한복 대여 100만 원. 우리 아빠 맞춤정장 약 100만 원.
- 반지 : 청담동 160만 원 (마음에 드니 DC 해달라고 함!)
크게 이 정도 들었는데, 평생 살면서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들께 예쁜 것들을 자꾸 추가해 드렸다. :)
남들이 말하는 예단비, 선물 이런 것들은 일절 하지 않았다. (기본이라는 반상기, 이불, 은수저만 좋은 것으로 드렸다. 약 150만 원.)
애초에 쓸데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것을 원하는 상대라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먼저 모든 것을 생략하자고 말씀 주셨다. 우리가 살게 될 집의 인테리어를 남편이 미리 해두었기에 이 결혼식 비용과 혼수는 내가 전부 마련하기로 했다.
워크룸 921을 정리하고, 짧은 시간 안에 내 삶이 후루룩 바뀌었다. 사람일 모른다더니, 그게 내 이야기였나 보다. 결혼 후에는 더욱 스펙터클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우린 집에 pc방을 만들어 밤새 게임도 하고, 난생처음 요리를 하며 맛집 놀이도 했다. (나 좀 요리에 소질 있는 듯...)
워크룸 921 창업 일기에서 왜 결혼 이야기까지 넘어왔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천천히 살더라도 남들처럼 이렇게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남편의 지지도 무시 못 한다.) 두 번의 사업자를 냈던 경험으로 그다음엔 더 큰 규모로 아동미술 학원을 오픈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워크룸 921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후에 남편의 가장의 책임을 함께해 준다는 약속을 지키며, 우리 남편은 나를 저가매수했다며 좋아해 했다. :) ㅋㅋㅋ
30대에 철들어서 돈을 모으고, 미래를 그리는 것이 남들보다는 느린 걸음일지라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샘솟는다. 삶의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한 하루하루들이다. :)
다음 시리즈에서는 육아와 일에서 방황하고, 마음을 잡는 엄마의 창업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 세상 모든 30대 여자들 파이팅! 엄마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