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놀이와 똥물 한 바가지

by 릴리앤릴라

노자 책이 이렇게 재미있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 나는 노자에 푹 빠져 있었다.
그쯤 공중화장실에서 누군가 물을 내리지 않고 간 변을 봐도 예전처럼 더럽다며 피하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배 속에 있을 때는 깨끗하고, 나왔다고 더러운가. 다 생각이지.”

그러고는 아주 시원하게 물을 내려버리고 화장실을 썼다.
혼자 제법 노자적인 사람이 된 듯도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지나고 어느 날이었다.
또 누군가 남기고 간 변을 보고 익숙하게 물을 내렸는데,

앗!! 이번에는 내려가야 할 물이 갑자기 위로 폴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똥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기겁을 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바로 그 순간, 웃음이 훗 터졌다.
머리로 하던 노자놀이에
“옛다, 이놈아.”
하고 제대로 가르쳐준 똥물 한 바가지 같았다.


오래전 들었던 선종 이야기가 떠올랐다.
구지 선사는 선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시자 하나가 그 모습을 흉내 냈고, 어느 날 누군가가 스님의 가르침을 묻자

자기도 손가락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구지 선사는 시자의 손가락을 잘랐고, 울며 달아나는 시자를 불러 세운 뒤

다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시자가 깨달았다고 한다.

예전의 나는 이 글을 읽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비심 없는 스승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똥물 사건을 겪고 나니, 생각을 머리로만 흉내 내는 것과 실제로 끊어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단박에 깨우치게 도와준 스승의 지혜가 날카로운 사랑이였음을. 손가락 하나가 문제가 아니란 거다.
노자를 읽으며 “깨끗하다, 더럽다, 다 생각일 뿐”이라고 말하던 나는, 막상 똥물이 넘치자 누구보다 재빨리 기겁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이해한 것은 노자가 아니라, 노자 흉내였다는 것을.


그러면서 오래전 대우 선사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그분을 속으로 자비심 없는 영감탱이라고 흉봤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분은 내 안의 거대한 에고를 먼저 보셨던 것 같다.
사람은 다 자기 근기대로 만나고, 자기 그릇만큼 본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 그릇은 종지만 했다.
그 작은 종지에 우주를 담겠다고, 사상을 좋아하고 깨달음을 말하면서도
정작 똥물 한 바가지와 말 한마디에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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