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다석사상 공부 모임에서 만났다.
다들 다석을 좋아해 모인 자리였는데,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강사의 설명이 끝날 때마다 꼭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태도는 조금 호기로웠다.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 밀어붙이며 확인하는 사람 같았다. 처음의 나는 그런 태도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정치부 기자였다.
생각해보면 직업과 꼭 닮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갈등을 피하는 성향이 강해서 그런 날 선 태도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워지고 나서는 오히려 그에게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다석 공부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했다.
서로가 찾은 공부, 새로 주목받는 인물들, 강의 소식들을 나누었고, 함께 강의를 듣고 나면 술집에 앉아 떠들었다. 누가 보면 별 쓸모도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즐거운 공부였다.
“우리가 어디 가서 누구랑 이런 영성, 사상, 철학을 얘기를 하겠냐.”
그 말 속에는 약간의 자조와 제법 큰 애정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한동안 뜸하다가 아저씨가 전화를 했다.
요즘 어떤 선원에 다니는데, 거기 선생님이 꽤 다르다고 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사람들과는 좀 결이 다르니, 시간 되면 한번 와서 직접 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의심 많고 비판적인 아저씨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니, 그 점이 오히려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큰 맘 먹고 간 선원에서 나는 시작부터 마음이 틀어졌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처음 온 여자는 앞줄. 안내받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야 한다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름이라 짧은 티셔츠를 입은 나는 뒤에 앉고 싶었고, 결국 안내를 무시한 채 맨 뒷줄 벽에 기대 자리를 잡았다.
“거기 앉으면 혼나실 텐데...”
안내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이미 삐딱해질 대로 삐딱해져 있었다.
그리고 정말 혼이 났다.
법문 말미, 단상의 선사가 갑자기 맨 뒤를 가리켰다.
“저기 맨 뒷줄에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 너. 그래 너.
너 이런 데 평생 쫓아다녀봐라. 너는 죽을 때까지 깨달음 못 얻는다.”
그게 나였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처음 온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나 싶었다.
내 옆의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내 심기를 더 뒤틀리게 했다. 여기는 사람들은 사람 열불 나게 하는 그런걸 배우는 건가?
예불이 끝나자마자 나는 선원을 빠져나왔다.
사당역 앞 호프집에서 씩씩대고 있을 때 아저씨가 와서는 웃었재낀다.
“너지? 맨 뒷줄에. 느낌이 딱 너더라.”
나는 서운함과 분노를 있는 대로 쏟아냈다.
깨달은 사람이라면 자비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 사람이 뭐가 좋으냐고.
아저씨는 오히려 선사가 나의 교만을 한방에 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직접 만나보라는 말도 했지만, 이미 토라질 대로 토라진 나는 다시 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이생에 깨달음을 못 얻으면 못 얻지, 그 영감탱이한테는 안간다’
막말을 하며,,, 그렇게 끝나는 인연일 줄 알았는데..
몇 해 시간이 흐른 뒤, 오래전 영어 선생님이 선물해준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예전에는 몇 장 넘기지도 못했던 책이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한 번에 읽혔다.
문장들이 가슴으로 바로 들어왔다.
나는 감탄하며 저자를 확인했다.
대우 선사.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주 강렬하게.
그리고 곧 떠올랐다.
내게 죽을 때까지 깨달음을 못 얻는다고 했던 그 선원, 그 할아버지,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저씨는 한참을 웃었다.
“어때, 지금이라도 만나볼 테냐?”
끝내 만나러 가진 않았다.
참 묘한 일이다.
세상에 스승도 많고, 책도 많고, 깨달았다는 사람은 더 많은데, 하필 같은 사람을 두 명이나 따로 추천하다니.
한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다 그분의 책을 건넸고, 다른 한 사람은 선원까지 끌고 갔다.
각기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주는 꽤 집요하게 같은 답안을 두 번 제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중에 영어 선생님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는 정말 한참 웃었다.
선생님도 “이쯤 되면 한번은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보통 우연은 한 번 스치고 마는데, 이건 거의 재전송 수준이었다.
나는 두 번이나 같은 이름을 받았고, 두 번이나 문 앞까지 갔고, 두 번 다 비껴갔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서로 저주를 퍼부은 사이는 피하는 게 좋지 않나?”
그 농담 뒤에 숨어 있었던 건 아마도 민망함이었을 것이다.
인연은 자꾸 같은 방향을 가리켰는데, 나의 교만은 끝내 못 본 척했으니까.
어떤 표지는 친절하게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어떤 표지는 오히려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내 마음을 긁고,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서라도 멈춰 세운다는 것을.
이것이 내가 놓친 세 번째 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