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연

by 릴리앤릴라

지금 내가 마음 수행 과정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인도, 명상, 영성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도 여행 후 나는 ‘영성’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로 20년째 이쪽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P를 만난 이후부터였다.


나의 30대. 그땐 정말 쉴 틈 없이 달렸다.
이벤트 PD 일을 하며 몇 년 동안 내게 주말, 연차, 휴가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는 게 이벤트다. 그렇게 6년을 휴가 없이 지낸 보상으로 2달간의 휴가를 받았다.
그래, 무조건 아프리카다. 난 아프리카로 간다!

아프리카는 평생의 로망이었지만, 비행기표 가격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접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학교 1학년 때 봤던 생태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 인도의 오로빌이 떠올랐다. 그땐 막연하게 ‘나중에 저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래, 오로빌이다’ 싶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인도 바라나시.
아, 하지만 바라나시는 오랜 업무에 지쳐 쉬고 싶었던 나에게 너무 정신을 쏙 빼놓는 곳이었다. 그렇게 바로 오로빌로 향하고 싶던 나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떠올랐다. 한의사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던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이었다. 나는 바로 네팔로 올라갔다. 거기서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날씨가 좋아지기를 일주일 동안 기다렸다. 포카라에서의 일주일은 정말 평온했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오로빌을 가기 위해 다시 남부로 향했다. 드디어 나의 목적지, 오로빌로.


인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 나는 하루하루 방전되는 오래된 건전지 같았다. 마말라푸람이라는 해변 마을에서 더는 안 되겠다고,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인연이 나타났다.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연, P가 이때 나타났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쉬고 싶었던 나에게, 한 달 동안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해 한국어가 너무 하고 싶어 하던 한국인 P가 나타난 것이다. 카페 창문으로 동양인을 발견한 그는 진격의 거인처럼 내게 오더니, 한국인임을 확인하고는 바로 합석해 버리는 행동력을 보였다.

나는 밥만 먹고 들어가 쉬고 싶었는데, 어느새 P와 함께 밤바다에서 맥주까지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야 휴가를 받아 두 달 여행을 하는 중이었지만, P는 백수로 인도를 여행하고 있었고, 리쉬케시에서 안다만으로 한 달 여를 지내다 남부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하룻밤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각자의 목적지로 떠나는 터미널에서 P는 갑자기 목적지를 바꿔 나와 함께 오로빌에 가기로 했다.


오로빌의 관문, 폰디체리에 도착. 그런데 목적지를 앞에 두고 나의 몸이 배신했다.

폰디 체리 첫날 아침, 나는 완전히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침대에서 고개도 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침대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도 어지러워 다 게워냈고,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물 한 모금조차 먹지 못한 채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태였다.

아침에 나를 보러 온 P는 침대에 누워 꼼짝 못 하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했는데, 나를 침대 위에서 내려다보던 P는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웠다.

“내가 진짜, 진짜 이러고 싶지 않은데… 아, 진짜 싫은데… 아,,근데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으니…”

갑자기 침대 이불속으로 손을 넣더니 내 손을 잡는 게 아닌가.
아니? 아니? 아니! 나, 아픈 사람이라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이불을 젖히고 내 손을 잡던 P는 갑자기 진맥을 짚었다. 당황한 나와 달리 침착한 P는 진맥에 집중했다.

“긴장할 거 없어요. 나 사실 한의사예요. 닥터! 닥터라고. 그러니 안심하세요.”

추운 북부에서 따뜻한 남부로 내려온 내 몸이 신경계 교란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P는 사실 ‘한의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마음을 정리하러 인도에 온 사람이었다. P는 다시는 침을 잡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채, 부모님의 기대와 개원의로서 다져온 명성, 그 모든 것을 다 버리려고 인도에 왔다고 했다. “다시는 침을 잡지 않겠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포고한 상태로.

P는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자기 직업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심하게 아프자 결국 신분을 밝히고, 나를 위해 침을 잡았다.

어떤 이유로 한의사를 그만두려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P의 결심이 너무 확고했기에, 나중에 그는 나를 치료해야 할지 말지도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상태를 보고는 인도 병원에 가는 것보다 침이 낫겠다고 판단해 치료를 했다고 했다.

남에게는 침을 놓지 않겠다던 P가, 혹시 자신의 위급 상황을 위해 챙겨 온 침 한 봉지.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자신에게도 놓고 싶지 않던 그 침을, P는 일주일 동안 나를 돌보며 아침저녁으로 내게 놓아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처럼 아파본 적이 없다. 일주일 동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누워 있었고, 계속 잠만 잤다. P는 근처 식당에서 흰 죽을 쑤어 와 먹였고, 오렌지즙을 먹였고, 침을 놓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나를 간병했다.

마말라푸람에서 ‘말 많고 귀찮은 백수 한국인을 만났네’라고 생각했던 P가, 내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나를 돌본 P는 삼화한의원 아저씨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 몸으로 어떻게 인도에서 한 달을 지냈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게 기가 약하게 흐르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자기는 정말 나를 못 만났으면 인도에서 큰 일 치를 뻔했어. 나 만나서 산 줄 알아~~ 그런데 자기도 대단하다. 나를 또 이렇게 침을 잡게 한 사람이니….”

그 말은, 내가 P에게 단지 치료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다. 어쩌면 나 역시 P로 하여금 굳은 마음을 열고 다시 침을 잡게 만든 어떤 인연의 역할이었는지도 모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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