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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Aug 09. 2021

1시간의 롤러코스터 드라이브

남편 부모님 집은 방화동. 우리 집은 분당.


하품을 쩍쩍 하는 남편을 보고는 "내가 운전할게." 했다. 운전이 싫지 않다. 운전하면서 '생각'도 하는 멀티태스커이기 때문에 그나마 생각을 정리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으로 이용한다. 


올림픽대로는 꽉 막혀있었다. 일요일 오후 4시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한두 번 가본 길이 아니기에 능숙하게 루틴대로 나아갔다. 일단 2차선 타고 쭈욱 성수대교 부근까지 가는 것. 앞차 따라 브레이크만 밟아주면 되니 나는 이내 생각하기에 돌입했다.


집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을 떠올리던 중 여의도를 지나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 '이렇게 큰 비가 내릴 때 운전하는 사람은 항상 남편이 아닌 나였다.'는 생각과 함께. 2017년 6월, 하필 장마 시즌에 태풍까지 겹친 오키나와 남쪽 시내에서 북쪽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2021년 6월, 하필 장마 시즌에 송도에 사는 남편 친구 집에 방문했다 돌아오던 길에도. 다 칠흙같은 밤이었다. 이미 충분히 무서운데, 앞의 길은 일본이라 운전석과 조수석이 반대라는 점, 뒤의 길은 차 안에 내 새끼가 타고 있다는 점이 나를 온 몸이 굳어버릴 만큼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5년 전에 결혼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사람이고, 그때도 지금도 남편은 수입이 일정치 않은 사람이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 그리고 결혼 후 5년동안 많은 것들을 약속했다. 대부분 우리 가족의 금전적 목표 달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실상 우리의 생계는 주로 내 월급으로 유지되어 왔다. 생활비뿐 아니라 내 부모님 근처에 마련한 전셋집 대출도, 남편 사업을 위한 투자금 대출도. 


그 사이 비는 한남대교 부근부터 잦아들었지만, 내 마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원대한 계획만 가지고 있던 백수와 결혼했으니 그 리스크를 떠안은 건 바로 나다. 누굴 탓하랴.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사람은 충분한 노력을 했나라고 하면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가 않았다. 억울함일까, 불안일까. 이 와중에 옆에서 열심히 졸고있는 그다. 언제나 미래에 낙관적인 그.


우리의 이런 돈 사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 초반 어쩌다 사회에서 만난 절친에게 얘기를 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하곤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 너 사고싶은 것도 못 사고 그런 거야?" 뭐 그리 대단하게 사고싶은 게 있다고. 그녀와는 더 이상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shop & live) 중이다.


대치동에 도착했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조카를 내려줘야 한다. 졸다 깬 남편은 세상 자상한 삼촌의 모습으로 조카를 배웅한다. 그 순간 아, 처음부터 저랬던 그다. 여전히 그렇다. "이제 내가 운전할까?" 다정히 묻는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괜찮다. 남편과 결혼한 이유, 남편이 가지고 있는 그 스윗함의 quality는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럼 괜찮은 거다. 강남에서 내곡을 타고 분당으로 가는 길. 내 출퇴근 길. 이 길도 알고 있다. 내 생각을 수없이 엿보았으니까. 나에게는 이런 남자가 맞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면서. 그런 맞장구의 뜻인지 그 길 하늘이 참 맑았다. 


1시간의 롤러코스터. 내 마음이 그랬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요동치다 멈춰섰다.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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