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자기 글을 자기가 쓸 줄 알아야 한다.'
우주의 기운이 도운 책이라고나 할까.
초판은 2014년이지만, 2016년 가을 즈음에 시국과 맞물려 화젯거리로 떠올랐고,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러있는 책이다. 애초의 집필목적(?)보다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궁금증,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JTBC <말하는대로>에서 저자 강원국씨의 강연에 매료된 것을 계기로 이 책을 구매하게 됐다. 그 전부터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적어놓긴 했지만, 내 이 목록은 사실 존재이유를 잘 모르겠는 것이라서 이런 직접적인 충격 없이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그렇게 가볍지 않은 내용인데도 막힘없이 읽혔다. 대체로 글쓰기와 말하기란 어떤 것인가, 왜 해야만 하고, 특히 리더의 글과 말은 어때야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중간중간 두 대통령이 글쓰기에 대해, 또 자신의 연설문에 대해 조언한 내용을 길게 직접 인용해놓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버릴 게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짬나는대로 이 곳 저 곳에서 읽었기 때문인지 감명받은 내용을 세세히 표시하면서 읽지는 못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요새는 면접날만 기다리면서 심장이 손바닥만큼 쪼그라든 상태라서 커다란 그릇들의 이야기를 받아내기가 다소 버겁기도 했다.
우선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은 순간 느꼈던 감정은, 아득한 향수였던 것 같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대통령으로 계실 때 나는 너무 어렸고, '정치외교'라는, 내 콩알만한 마음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학문을 전공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못꿨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글로나마 그들의 평소 생각과 말, 철학을 간접적으로 접하고나니 국가가 이 지경이 된 것을 보면 그들은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촛불집회는 계속되었고 탄핵요구는 빗발쳤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날, 탄핵안이 가결됐다. 국민들을 움직인 것은 '수치심', '배신감'. 버젓이 민주 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단 나라에서 내 손으로 뽑지 않은 이가 정권을 좌지우지했고, 예산을 제 쌈짓돈처럼 휘둘렀고, 심지어 그 주범이라는 인간은 사이비주교 집안의 품격 없고 성질머리 더러운 중년여성에 불과했다. 이미 부패 정도로 치자면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비리와 청탁이 난무한다는 것쯤은 암암리에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그 더러운 손이 내 나라 정치와 외교를 리드했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책 바깥에서 이러한 폭풍우가 불어닥치는 상황에서, 책 내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자신을 말과 글로 나타낼 줄 아는, 다른 것을 다 차치하고서 그 점에 있어서라도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졌던 그 시절에 대한 궁금증과 향수. 나는 그것이 그 시절의 명암을 다 알지 못하는 나라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말하는대로>에서 저자 강원국은,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표현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기에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해, 읽고 보고 느낀 것들을 표현해 놓으라는 것이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 버려둔 채. 책에서도 거듭해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글은 나에게 처방전 같은 것이었다. 누가 시켜서, 숙제라서 썼던 일기 이후에, 처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은 분명 어딘가 많이 아파서였다. 마음이 아프고, 누군가가 이유없이 미운데, 어디 털어놓을 데가 없었을 때. 그 때 나는 손으로, 컴퓨터로, 두서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가끔 과격한 표현도 쓰고, 내 자신을 또는 누군가를 열심히 씹어대면서. 그런데 참 신기했던 건, 너무 힘들고 아프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던 글들은 한참 써내려가다보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가 왜 아팠던 것인지, 그런 것들로 변해갔다. 의사선생님 어디가 아프구요, 어디가 쑤시구요, 하는 투의 글들이 곧잘 의사선생님이 되어 처방전을 기가 막히게 뽑아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글은 나에게 그렇게 고맙고 신기한 것이었다.
책에서 보여주는 국가를 이끄는 리더들의 그릇, 그들의 글, 분명 나와는 한참 먼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적잖은 허영심에,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설익은 꿈을 꿀 때였다면 분명 '동기 부여'를 하느라 전투적으로 읽었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꿈과 허영 그 모든 것들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지금, 이 책은,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왜 쓰기 시작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기 위한 글들이 아니라, 내가 처음 펜을 붙잡고 썼던 일기나 편지처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