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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Nov 24. 2016

[영화] 시네마천국

인생을 담은 인생영화 - 취준생의 내멋대로 감상평


나는 “영화를 좋아해요.”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라서였다. 책이나 음악,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취향이나 일가견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일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망설임은 그저 내 기우고, 허영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빗장을 하나 쯤은 해제시키는 마법 주문과도 같기 때문이다. 



시네마천국은 ‘영화에 대한 영화’, 그리고 ‘죽기 전에 봐야할 영화’와 같은 조금은 진부한 리스트에 늘 이름을 올리던 영화였다. 우연히 볼 기회가 생겼고, 나는 지금 같은 때에 이 영화를 만나게 된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평온하고 잔잔한 배경만큼이나, 줄거리도 담백하게 진행된다. 영화와 영화관을 사랑했던 어린 토토는 마을 극장인 ‘시네마천국’을 드나들며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친구처럼 지낸다. 작은 토토는 필름을 만지작대며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알프레도는 그런 토토를 꾸짖으면서도 아끼고 귀여워한다. 어느날 알프레도와 토토는 영화 상영을 마치고 영화를 더 틀어달라 조르는 군중에게 깜짝 야외 상영을 해주다 실수로 영화관에 큰 불을 내게 된다. 이 사고 때문에 알프레도는 실명하고, 토토가 알프레도의 뒤를 이어 영사실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에도 둘은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다 토토는 같은 학교 친구인 엘레나에게 푹 빠지게 되고, 몇 달을 엘레나 집 앞에서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엘레나 부모의 반대로 사랑은 좌절된다. 이후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줄기차게 큰 도시로 나갈 것을 조언했고, 토토는 마을을 떠나 영화감독으로 크게 성공한다. 영화는 중년의 살바토레가 알프레도의 부고를 듣고 침대에서 이 모든 추억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크고 작은 의문을 몇 개 남겼다. 첫 번째 의문은, 왜 알프레도가 그토록 토토를 마을에서 내보내려 했는가이다. 알프레도는 영사기사로 나름의 만족을 느끼고 있는 토토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며 넓은 세계로 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엘레나와의 편지를 일부러 엇갈리게 만들어 사랑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알프레도는 토토를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자신이 못 다 이룬 꿈들과 모험을 토토에게 위탁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기 전, 토토와 어린 아이들 틈에 섞여 컨닝을 해가면서까지 시험을 치르던 알프레도의 모습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작은 마을 안 작은 극장, 또 그 한 켠 작은 골방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알프레도는 사고로 인해 그 작은 세상마저 잃었다. 계속해서 축소되고 소멸해간 자신의 인생과는 반대로, 토토만은 더 큰 세상으로 팽창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보인 애정은 또다른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졌다. 토토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이후에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라’고 부탁하는 어머니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토토가 또다른 자신이라는 확신이, 엘레나와의 사랑을 고의로 꺾어버리는 고집마저 부리게 만든 것이다. 마치 전생을 다 산 내가 후생을 살아간 내게 고언하듯이, 영사기 앞에서 돌아가는 영화가 인생의 거대한 부분이었을 알프레도는 말한다. “인생은 영화와 다르다”고.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는 인생,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비가 잔뜩 내리던 날 ‘영화였다면 지금 이 순간 엘레나가 내 앞에 나타날텐데!’하고 기다리던 토토의 앞에 엘레나가 등장하고,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던 두 사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는 ‘영화 같은’ 날들이었겠지만 알프레도는 이들을 훼방한다. 그런데 오히려 알프레도가 조작해낸 그들의 ‘엔딩’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되었다. 부모의 반대로 괴로워하고, 서로를 싫증내고 지겨워하다 서서히 잊어버리는 신파가 아닌, 아련한 영화로, 어쩌면 알프레도는 역설적으로 이들의 사랑을 훼방놓음으로써 사랑 영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고백을 계획하던 토토에게 알프레도가 들려줬던 병사에 대한 이야기. 100일을 창밖에서 기다려주면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말한 공주를 위해, 온갖 고통을 겪어가며 99일을 채운 병사는 딱 하루를 남기고 기다림을 그만둔다. 왜였을까? 알프레도는 답을 주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99일간 키웠던 간절함과 환상이 오히려 실제로 공주와 만나면서 깨지는 게 두려워서는 아닐까?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99일이나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공주가 무정하게 느껴져서는 아닐까? 아니면 그저, 뻔한 결말을 내기 싫었던 이야기꾼의 괜한 심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토토는 같은 방법으로 엘레나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쟁취해낸다.



이런 의문들을 안고 도달한 이 영화의 ‘엔딩’은 따뜻했다. 언제나 토토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컴컴한 영화관, 스크린에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인 필름이 상영된다. 내용은 다름 아닌, 그간 신부님의 ‘검열’ 따위에 걸려 잘라내졌던 모든 키스신들을 이어붙인 것이었다. 아름답고, 애잔하고, 정열적인 수많은 키스신은 토토와 알프레도가 함께한 날들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조금 뜬금없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매료되었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시네마천국이 낡고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되어 ‘폭파’되는 장면. 영화관 주인이자 토토의 ‘사장님’이었던 아저씨는 그리움과 허무함 등의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검댕이가 된 건물자재들 사이로 아이들이 천진하게 뛰어다닌다. 아마 또 다른 토토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아련한 극장의 ‘무덤’이 그냥 ‘놀이터’인 것이다. 그 아이들은 또 나름 각자의 추억을 쌓아나가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보금자리를 오가며 생을 이끌어간다. 나 같은 경우는 도쿄 근교에서 태어나고, 그 이후 한국에 와서는 계속 비슷한 동네에서 살았다. 일본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10년을 넘게 살았던 낡은 아파트단지는 근래 들어 자꾸만 애틋한 기분이 드는 곳이 되었다. 지금도 걸어서 3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아마 곧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소식 탓인가보다. 아파트 후문에서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힘들었던 분식 포장마차, 손님이 없어 늘 위태로워 보이던 상가 마트와 집 앞 놀이터, 아파트 옆에 이름까지 붙이며 이야기를 걸곤 했던 큰 나무, 그리고 온갖 새들이 살아서 아침방송에까지 나왔다던 작은 뒷산. 나는 이 주변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옛 애인들과 아쉬움에 빙빙 돌기도 하고, 동생과 줄넘기를 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일상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작은 기억들이, 이제는 가끔 찾아갈 때마다 조각 조각 떠오르곤 한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만 하기에 ‘취준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발버둥치면서도, 자꾸만 잊게 되는 사람들과 동네가 안타까워 끝없이 뒤돌아보는 지금. 시네마천국은 이런 나에게 ‘다들 그래. 인생은 영화 같지 않으니까, 쇼는 계속되어야 할테니까’라고 달래주는 듯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내 멋대로 용기를 얻어 간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5X5=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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