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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Sep 12. 2020

자기 파괴적인 서른의 연애

별 것 아니기를, 결국엔 참으로 별 것이기를

사람은  사람과 감정적으로 엮이면서 살아가야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는 서로가 못 이기게 사랑스러워져서 한껏 끌어당기고  사이의 모든 경계선을 지우다가, 다시 서로를 할퀴고 가장 못살게  수밖에 없는 걸까. 그냥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몫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너무나 피로한데,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해야 할까.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뭘까. 서로를 위해  내어줄 것처럼 희생을 약속하고, 기꺼이 스스로 속박당하기를 선택하지만,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서로를 누구보다 믿기에 속내를 곧잘 내어놓고 상처 받기 너무도 쉬운 상태로 교감하기에 둘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받지 않을 상처를  마음에 그리고 너무도 사랑한다는 상대의 마음에 깊게 새긴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의 지금 사랑은 과거보다 갑절로 피로하다. 적당히 내어줄 정도로 계산적이지는 못하면서 하루하루 훨씬  방어적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다는  내성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제때 배출을 하지 못해 안에서 눈물이 고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되어가는 듯하다. 그리고 분명   전쯤의 나는 표현도 확실히 하고, 잘못도 확실히 인정하고,  싸우는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연인 간의 다툼은 정당한 투쟁과 발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일단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숱한 갈등 끝에 내가 맞은 결론들이 (당연하지만) 하나같이 이별이었기 때문에서 오는 학습효과일까. 아니면 혹은, 진지하게 처음으로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와의 연애라는  안에서의 규정에서 오는 어떤 극한의 두려움 때문인 걸까. 아주 우스운 인과관계일지는 몰라도, 정말 나는 갈등의  순간 ‘내가 이 사람을, 혹은 이 사람이 나를 평생 힘들게  운명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린다.

어른의 사랑, 아니 늙은 사랑이 계산적이 되는 것은 이런  아닐까. 굳이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있는 사람인지를 끝없이 재게 되는 . 왜냐면 이제 우리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 사랑 하나만으로 견뎌   있는 것들에는 보통 한계가 있다는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다툼의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 같이   아니고 유치한 것들 투성인데, 극복의 과정에서  안에 들어오는 갖가지 생각들은 전과 다르다. 연애라는  어쩜 이렇게 느는 법이 없을까. 인간관계라는  해도 해도  요령이 생기지 않는 걸까.  지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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