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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Nov 14. 2021

동거+안전장치=결혼?

2021년 11월 14일 소연에게 현지가

소연아 안녕!

나는 지금 정말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어쩌면 결혼 전엔 내 여가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이렇게 혼자 글 쓰고 책 읽으면서 보냈던 것 같기도 한데, 정말 많은 게 바뀌었구나 새삼 실감했어. 남편이랑 함께 하는 시간들의 높은 밀도에 중독이 되어버려서 굳이 혼자만의 시간을 찾지 않았던 것 같아. 억지로라도 자주 스스로를 혼자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내일은 결혼하고서 처음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이야. 월요일이라 정신 없을 게 뻔해서 말야. 그저께는 생일 선물로 먹고 싶다던 비싼 밥 한 끼를 함께하고, 어제는 혼자 밖으로 내보낸 뒤에 먹고 싶다는 음식과 제일 좋아하는 작은 몽*케이크에 하트 초를 꽂고 편지도 썼다. 오늘은 시댁과 생일파티 겸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급하게 레터링 케이크도 하나 주문해놨어. 사실 내가 꿈꿨던 생일축하보다 작고 소소한 것들이라 스스로는 만족이 안되는데 너무너무 기뻐하고 거듭 고마워하는 남편을 보니까 뿌듯하면서 미안하고 그렇더라. 네가 저번에 말했던 '너라서'가 생각난다. 이 사람이라서 받는 것에 익숙한 내가 주는 것에 더 기쁨을 느끼고 있어.


근데 오늘 아침, 나오기 전에 혼자 잠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었어. 남편이 친구의 여자친구를 봤던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괜찮은 사람인  같다는 칭찬을 하더라고. 정말 우습지만 가만히  나열된 칭찬들을 듣다보니 기분이 슬며시  좋아지대. 당연히 질투가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질투가 많은 사람이 아닌  알고 살아왔는데, 이런 것도 '너라서' 모멘트일까?  친구한테는 말도 안되는 소유욕이 생긴단 말이지.


근데 뭐 그럴 수 있지. 난 남편이랑 연애하면서, 내가 이제껏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랑이 오히려 내 수준에는 '쿨병'의 일종이었다는 생각도 들었거든. 어차피 서로를 완벽히 소유할 수 없으니, 질투는 쓸데 없는 감정이고 속박하려 들수록 도망간다는 그런 흔한 말들 있잖아. 나한테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 같아. 난 내 연인이 어느 정도는 나를 소유하려 드는게 좋거든. 물론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로만 말이야.


서론이 길었지. 너의 결심 뒤에 있었던 자세한 스토리 재미있게 잘 읽었어. 이 소소한 교환 일기를 쓰기 잘했다고 느꼈어. 수많은 'ㅋ'를 비롯한 자음, 'ㅠ'를 비롯한 모음들에 묻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우리 마음 속 이야기를 완성된 문장으로 상세히 교환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짝을 사랑하는 마음과 네가 가지고 있던 너의 인생에 대한 계획과 신념들 사이에서 마음 고생을 꽤 했겠다 싶기도 하네. 내가 결혼 전에 시끄럽게 고민했던 문제들이랑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만 궁금했던 건, 너의 글에서 동거가 '결혼 전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짝이 말한 동거의 이유에는 '결혼은 큰 이벤트니까 정말 상대를 잘 알고 난 뒤 하고 싶다'가 적혀있다는 거야. 그만큼 동거라는 개념이 참 애매하다는 거겠지? 사랑하는 얼굴을 보다보면 손이 잡고 싶고, 안아주고도 싶고, 함께 잠들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고- 그렇게 같이 잠들고 같이 눈뜨고 싶다는 깜찍한 소유욕은 눈덩이처럼 부풀기 마련이잖아. 상대의 온기를 더 많이 느끼고, 상대의 시간을 더 많이 공유하고 싶다는, 더 내 것으로 끌어 안고 싶다는 그 사랑스러운 소유욕 말이야. 그 끝자락 쯤에 '동거'라는 개념이 있는 게 아닐까.


결혼과의 차이점을 논하자면 더 애매해지고 말지. 어쨌거나 긴 기간 동거하며 지내고나면 법적으로도 '사실혼' 관계가 되어버리니 말이야. 내가 고민 끝에 찾은 제법 간단한 방법은 말이야, 결혼은 싫지만 동거는 오케이라는 사람들의 말 속에 몇가지 답이 있다는 거야.

1. 상대는 좋지만, 상대의 가족과 깊게 얽히는 건 싫다.

2. '이혼'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복잡하다.

 2-1. 그 과정이 싫어서 참고 살게 될까봐 무섭다.

3. 결혼식이 싫다.(어떤 이유에서든)

4. 법적으로 인정받는 게 뭐가 중요한가? 의미를 모르겠다.

5. 돈이 부족하다.

거칠게 쪼개면 이 정도인 거 같아. 아니, 이렇게 나열하다보니 어...꽤 다른 개념인가 싶기도 하네?


어찌보면 결혼이란 건 동거라는 형태 위에 여러가지 리스크를 굳이 달아가며 더 몸뚱이를 무겁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상대 뿐만 아니라 가족과도 얽힌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을 더하는 일이고, 이혼이 별거보다 힘들다는 건 또 그만큼 리스크를 가중하는 일일테고, 나와 상대의 세상에 우리가 함께 함을 떠들썩하게 공표하는 의식을 올림으로써 헤어짐의 리스크를 또 한 번 키우지. 거기다 돈을 투자한다? 와, 정말 결혼이란 리스크 그 자체다!


근데   구구절절한 리스크들이 별로 싫지가 않았거든. 네가 길다면  시간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어쩌면 어색했을 수도 있겠다. 자유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고, 무엇에든 구속당하는  제일 무섭다고 얘기하던 우리니까. (거짓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정말 그랬다구...)


일단, 헤어짐이라는 개념 자체는 우선  멀리 버려둬야지. 연인이기 이전에 가장 가까운 가족을 얻는 거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온갖 리스크를 지고 있는 만큼, 어떤 갈등이 와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지. 생각해보면 동거를 시작할  이런 수도승같은 마음으로 시작하지는 않는  같아. 아닌가?  짧은 식견에서 오는 오해일지 몰라. 그치만, 리스크가 없을수록 나처럼 충동적인 인간은 언제든 짐싸서 도망가버릴  같은걸? (물론 지금도 마음의 짐가방을 여닫는 순간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말야...) 그런데  정말 자주 생각하거든. 내가 혹시라도 욱해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혹여라도 도망가버리면 뼈아프게 후회하겠구나, 라고. 그러니까 결혼은 나에게 일종의 무거운 안전장치일지도 모르지.


너의 생각이 또 궁금하네. 글을 주고 받으면서 결혼과 동거의 개념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해보자. 그럼, 질문의 무게를 이번엔 살짝 덜어볼까. 짝과 함께해서 가장 좋은 점이 뭔지 궁금해. 얼마 전에 우리 함께 했던 모임에서 내가 '결혼 장려하러 정부에서 나왔냐'는 이야기 들은 것처럼, 제대로 너의 '동거 장려'도 한 번 듣고 싶어.


커버 사진은 저번주 글램핑 가서 남편이 찍은 별 사진이야. 숙소는 놀라울 정도로 너무 훤하고 추워서 마치 감금당한 기분이었지만 공기와 하늘만은 배신하지 않더라.


주말이 끝나가네. 다음주도 부디 건강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무사히 살아보자. 답장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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