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선 Dec 20.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12월 20일, 소연에게 현지가

소연 안녕!

업무도 개인 일정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요즘이야. 그래도 나는 이런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 아마 너도 그렇겠지. 맞아 이번에도 변명으로 시작하는 편지야.


내 생일이 12월 한복판이다 보니 나는 매년 내 생일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한 해를 돌아보고는 하는 것 같아. 너에게는 올 한 해가 어떤 해였는지 궁금하다. 아마 너도 나도 완전히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반쪽과 동거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니, 우리에게 2021년은 참 각별한 해일 수밖에 없겠구나. 연말에 하루쯤 둘이 만나 일과 thㅏ랑 thㅏ랑과 일에 대해 하나씩 짚어가며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 한 잔과 메모장 펜 한 자루씩을 들고 시간을 보내보자구~


너의 질문은 이번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좀 더 그럴듯한 답변을 하고 싶게 만든다.

언제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된다 싶을 만큼 이 사람을 무한 신뢰하게 되었는지, 혹은 언제 이 사람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는지를 물었지.


내 답변을 떠올리기도 전에 문득 너의 답변이 궁금해진다. 왜냐면 난 아무래도 이 사람을 무한 신뢰하기 때문에 나를 보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거든. 네가 말한 대로 나도 사람을 만날 때 나를 한 꺼풀 벗겨 보여주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이 맞아. 그런데 연애는 조금 다른 문제였어.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마저 있는 연애를 해 왔던 것 같아. 그래서 굳이 이야기하자면 나는 화살표가 반대로 그어져야 할 것 같다. 나의 솔직한 모습을 다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내 곁에 남아줬던 이 사람을 점점 신뢰하게 되었거든.


가벼운 질투나 투정, 네가 말한 깜찍한 생리 현상 정도의 단점이 아닌 좀 더 내놓기 꺼려지는 단점들이 있잖아. 나조차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것들. 맥락 없는 우울, 자격지심, 피해의식, 극한의 변덕 같은 것들 말야. 어쩌면 숨기거나 참지 않고 그때 그때 표현해버리는 내 방식 탓에 나와 내 짝은 더 많이 갈등하고 싸웠던 것일지도 몰라. 물론 더 평화롭고 성숙한 방식의 연애도 있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숨기지 않고 상대도 숨기지 못하게 하는 조금은 극단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런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기는 해. 솔직하게 서로 패를 까놓고 이야기해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차이점에 절망하기도 하면서 말야.


하지만 우리의 갈등은 늘 솔직했고, 응어리진 부분이 없을 때까지 표현했기 때문에 완성형이었어. 결국엔 서로가 이렇게나 부족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며칠 뒤면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에 놀라곤 하지. 또, 내가 생각해도 정말 못나거나 못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에게 팔을 벌려오는 상대를 보며 이 사람이 내 가족이 되었음을 거듭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신뢰가 쌓이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야.


물론 오해로 생기는 불필요한 갈등의 횟수를 줄일 것, 화가 나거나 속상하면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좀 더 스스로 돌아보고 합리적인 이유가 정리되면 마음을 추스른 후에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할 것, 때때로는 작은 것들은 그저 흘려보내줄 것 등 숙제가 산적해있기는 하다.


이젠 어찌됐건 내가 이런 저런 갈등 끝에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서로를 파헤치고 알아가는 과정을 마치고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것 같아. 그게 참 쉽지는 않지만... 내년엔 좀 더 의식적으로 노력해보려고!


너희의 신뢰는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단단해졌는지도 궁금하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땅에 발을 디디는 이야기를 나눠볼까! 동거하면서 필수적인 이슈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면 어떨까해. 첫 번째는 가사분담! 나도 너도 자취의 역사가 길지 않다 보니 나의 가사 스타일이 채 잡히기도 전에 동거 라이프가 시작됐잖아. 그래서 은근 좌충우돌도 있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매서웠던 날이 다시 풀리고 이번엔 미세먼지가 몰려온다더라. 비염인인 우리 호흡기 건강 잘 지켜보자. 그럼 답장 기다릴게!



매거진의 이전글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을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