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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Apr 07. 2022

함께 희, 노, 애, 락 하는 것

2022년 4월 7일, 소연에게 현지가

소연, 안녕!

듣자 하니 아직 감염의 여파가 남아있는 듯한데 나날이 괜찮아지길, 하루빨리 없었던 일처럼 쾌유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와 남편은... 울 아버지 환갑 기념 온 가족이 모인 식사 후, 결국 우리를 뺀 전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무사하다.

지난주에는 잔기침이 좀 나고 목이 따꼼따꼼한 게 불안했는데 딱 그때 한라산을 등반하고 왔거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바이러스가 들어 올리다가 '어이구, 지겨운 놈들'하고 나간 게 아닐까? 그랬어. 왕복 11시간 등산 후, 하필 그날 인피니티 풀이 유명한 호텔에서 묵는 날이라 등산복을 벗고 수영복으로 환복하고 수영까지 했거든.


저번 편지에 적었던 큰 다툼 이후, 우리는 아직 평화를 유지하고 있어.(꼭 이런 말을 하고 나면 다투게 되더라. 오늘 조심해야겠다.) 이번 제주는 3박 4일의 일정이었고 우리의 두 번째 제주였어. 한라산을 빼고 났더니 나머지 일정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긴 했는데, 그래도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

특히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나는 새삼 남편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꼈어. 남편이 나중에 '현지는  없으면 여길 어떻게 올라오려고 했지?'라고 생각했다더라. 그도 그럴게 남편이 나보다 준비성이 철저해서 방한용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결국  모든 용품은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쓰였어. 그리고 내가 은근히 '과한  아닌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던 간식들, 뜨거운  등등은 정말 유용했어. 그리고 정상 찍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불고 추워서 내가 살짝 정신이 나갈 뻔했는데, 남편이 계속  소리로 정신 차리라고 해줘서 겨우겨우 버텼거든. , 아마 남편이 없었으면 내가 이번보다  준비를 해갔을 수는 있었겠지만  배는  고생하면서 위태위태하게 내려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했어. 매 순간 '네가 있어서', '네가 없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말로 감사한 점을 찾고 표현하는 것도  노력해야 하는   하나라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도 이런 과정을 새삼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서로 '새삼스럽고', '남사스러운'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사이,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는 관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소연이 네가 저번 편지에서 이야기한 '솔직함' 대한 이야기. 내가 질문했던 '유대감을 위해 노력할 부분', '포기하지 말아야  '  가지 모두에 대한 답이 되는 요소인  같네. 나도 정말 공감하는 바야. 내가 예전 편지에서   이야기한  있었지! 연애할  나는  포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버텨줄 거야?' 하는 심정으로 나를 까보이는  같다고.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인  같아서 재미있었다.


'유대감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부분, 그리고 애초에 조율하기 어려워 잘 확인해야 할 부분', 나에게 되물었지. 오늘 이 편지에서는 먼저 마지막 질문에 대해 한 번 답해볼까 해. 최근에 남편과 이야기 나눴던 게 있었거든. 뭐, 어쩌면 뻔한 얘기고 어쩌면 너무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 말이야. 우리의 그날의 답은 '같은 것을 보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이었어.


같은 것을 보고 기뻐하기. 나에게 기쁜 소식인 것이 상대에게도 기쁜 소식인 거. 같은 것을 향해 분노하기. 서로의 상식 범위가 비슷해서 그 상식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함께 분노할 수 있는 거. 같은 것을 보고 슬퍼하기. 그리고 같은 것을 보고 웃고 즐기기. 잘 맞는 개그 코드. 대충 그런 것들이랄까.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고, 정말 많은 걸 포괄할 수 있는 것 같아. 공감능력, 상식, 개그코드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치해야 하겠지. 물론 절대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희로애락 중 만약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 관계는 어렵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야.


이런 게 가치관일까, 싶다가도 또 조금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 뭇사람들은 함께 살려면 가치관이 같은 게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잖아. 난 그래서 결혼 전에 남편과 내가 과연 같은 가치관을 지녔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 같거든. 결론은 '교집합이 여집합보다 크다' 정도였던 것 같아. 그런데 사실 20대에 가진 가치관이 뭐 얼마나 확고하겠어. 적어도 나는 긴가민가의 연속이었거든. 나의 목소리보다는 세상의 목소리를 듣는데 더 익숙했던 것 같아. 물론 지금도 그렇지. 그래서 결국 나와 남편은 같이 살아가면서 점차 제법 그럴싸한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따지면 누굴 만나냐가 정말로 내 인생을 결판낼 수도 있겠다. 나는 팔랑귀에, 상대에 나를 최대한 맞추고파 하는 유약한 면도 있는 인간이니 더더욱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동거인의 조건은 무엇이니? 다시 너에게 서브를 넣는다! 짝꿍과 동거를 결심하고, '그래 이 사람이라면'하고 생각했던 면이 있다면, 고민되었던 것들이 있다면 어떤 건지 궁금하다.


모쪼록 건강 최우선으로 챙기고, 건강한 모습으로 곧 또 보자구~ 답장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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