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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카 알 뮤제오 (박물관에서의 일요일)

박물관에 가고 싶은 여자와 가기 싫은 남자들

by 지나

매달 첫째 주 이탈리아의 문화부가 제정한 이니셔티브 'Domenica al Museo'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박물관에서의 일요일')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들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산 지 2년 만에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아이들에게 선포했다.


“얘들아,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은 뮤지엄 데이다! 바로 내일모레가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지. 시작이다!” (둘 다 표정, 좋지 않음...)


대부분의 11, 13세 정도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박물관과 미술관은 지루한 곳이다. 우리 첫째는 미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잘하기도 해서 작년부터 레슨을 받고 있는데, 이 아이는 순수미술보다는 애니메이션, 더 구체적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더 관심이 있다.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린다. 그래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애미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거부감은 살짝 못 본 척하고 감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에밀리아 로마냐에 있는 박물관에 가려고 했으나 차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가 걸리고, 조금 더 유명한(입장료가 더 비싸고 더 알려진) 곳에 가고 싶은 욕심에 베네치아에 있는 Galleria dell’Accademia에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물론 두 곳 다 나의 결정이었다. 우리집 남자들은 내가 가기 싫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나갈 운명에 처했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이 남자 셋은 손바닥만 한 기계에 빠져 그것이 휴식인 줄 알고 일요일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라도 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것도 하루 온종일 걸리는 일정으로다가!





전날 밤, 12월의 시칠리아 여행 예약을 하느라 새벽 2시에 잤지만 7시에는 가뿐히 깰 수 있었다. 평소처럼 명상을 하고 하타요가로 몸을 깨운 후 창문을 열고, 전날 비가 온 축축한 공기를 마셨다. 햇살은 없다. 하늘을 보아하니 분명 오늘도 비가 올 것이다. 남편은 일어나서 나와 밖을 보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날씨가 안 좋네”라고 한다. 나는 “비가 왔지만 괜찮아”라고 말하고 가족들의 아침을 챙긴다.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가족들을 한 데로 묶어두기에 아주 좋은 세팅이다. 인터넷이 불안정한 것도 참 마음에 든다. 아이들은 인터넷이 잘 안 터진다며 한숨을 쉬고 좌석에 푹 눌러앉아 음악을 듣기도, 그마저도 심심하면 이야기도 한다. 나는 내 좌석에 앉아 아이들을 골똘히 쳐다본다. 분명 매일 보는 얼굴인데 또 어딘가 모르게 다른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점점 아이 티를 벗고 있는 남자애들을 이렇게 묶어두는 것이 얼마나 더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커서 이 엄마의 강제 뮤지엄 데이를 “우리 엄마도 참 못 말리는 사람이야...” 하고 날 놀리며 웃음으로 기억해 준다면 참 좋겠다.


그렇게 도착한 베네치아는 역시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 118개의 작은 섬들이 운하와 400개가 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답게, 다리의 수많은 계단들은 막내의 유모차를 두 손으로 들고 옮기는 남편의 허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보는 내가 미안하고 안쓰러워 옆에서 도와도 봤지만, 그는 혼자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미안한 이유는 뮤지엄을 보러 가자고 한 것이 나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족들에게 강제로 하자고 하고, 그것을 거역 못 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나? 세 남자는 나의 의지를 꺾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따라온 죄로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를 걷고 있는 것이다. 가고 싶지도 않은 박물관을 위하여... 남편은 10분 남짓으로 나타나는 계단을 만날 때마다 큰 유모차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야 하고, 비싼 점심도 사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미안함은 남편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있을 때만 유효하다. 박물관에 도착하여 지쳐서 예민해진 남편이 약간의 불만을 터뜨리자 이전의 나의 미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톡 쏘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제발 나만 좀 오게 해 줘. 애들 좀 맡아줘.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은 나 혼자 뮤지엄 데이 할게.”

그랬더니 자기도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나는 바로 대꾸했다.

“제발. 나가서 시간 보내고 와줘. 언제 안 된다고 했어?”

이것은 진심이다. 남편은 주말에 나가서 놀라고 해도 혼자는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IMG_3546.HEIC Galleria dell’Accademia (Venice, Italy)


박물관에 들어와 젊은 커플이 여유롭게 구경하는 모습을 본다. 옷차림도 예쁘다. 여자는 자신의 예쁜 각선미를 알고 있는 듯 미니스커트에 투명한 검정 스타킹에 가죽 롱부츠를 멋지게 입었다. 아이들을 챙기고 아침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휘리릭 똥머리를 하고, 나름 도시에 나온다고 차려입고 눈화장도 짙게 한 내가 좀 촌스러워 보인다.


나의 큰아들은 박물관에 들어온 지 5분도 안 돼서 가장자리에 있는 좌석에 널브러져 있다. 자신은 학교 trip에서 이미 다 본 것들이라고 한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반쯤 누르고 “앉아있고 싶으면 그럼 계속 앉아있어. 네가 원하면.”이라고 말하고 나 혼자 휙 가버린다. 남편은 아까 나의 톡 쏘는 말이 마음이 쓰였는지 둘째를 데리고 작품에 집중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옆의 그 커플은 계속 아름다워 보인다. 르네상스의 화가 파올로 베로네제의 그림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나와는 다른 편안하고 세련된 그들의 모습은 나를 상상에 빠지게 한다. 끝나고 비 오는 거리를 걸어 커피숍에 가겠지? 코지한 집에 돌아가 애정하는 스탠드의 불을 켜고, 와인과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집에서 입는 홈웨어도 깨끗하고 예쁠 것 같다. 여자는 머리를 살짝 꼬아 위로 올린 후 핀을 꽂고 슬리퍼를 신고 작지만 아담한 아파트의 부엌으로 간다.


부럽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뉴욕 맨해튼 업타운의 한 고층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의 20대. 집에 돌아오면 예쁜 홈웨어를 입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금요일 밤, 파티를 끝내고 집에 오면 무거웠던 힐을 벗어던지고 씻지도 않고 침대로 직행했다. 그렇게 잠깐 잠들다 눈을 뜨면 엄청난 외로움에 휩싸였다. 그때를 뼈저리게 느꼈으면서도 망상의 동물인 인간은 또 그렇게 그런 삶을 동경한다.




뮤지엄을 나와 기념사진을 찍고 카페로 향했다. 아이들은 목이 마르다고 했고, 우리는 아직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카페에 가서 다들 소다를 시키고 나는 아페롤 스프리츠를 시켰다. 실내 자리는 비좁아 다섯 가족에 유모차까지 있는 우리는 야외석에 앉았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는데, 이 카페의 야외석은 돌다리 아래에 있어서 비는 막아주었지만 축축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우리와 유리창문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 실내 자리엔 어르신 네 분이 앉아 모두 캄파리 스프리츠(Campari Spritz)를 마신다. 주황색인 나의 아페롤 스프리츠보다 더 빨간빛이 도는 식전주이다. 남편이 예전에 한 번 시켰는데, 아페롤보다 더 씁쓸하고 독특한 향에 놀랐던 적이 있다. 알코올도 더 세다고 느꼈다. 그런 식전주를 7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머리가 새하얀 어른들이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3시에 마시고 있는 모습이 카페 안쪽에서 테이블에 많은 커피 잔을 올려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의 한국인 여성들과 상당히 대비되 보였다. 내 앞의 어르신들은 둘둘씩 커플로 보였다. 하얀 머리의 두 커플이 캄파리 스프리츠와 핑거푸드를 먹는 동작은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분들이 로컬이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바로 내 앞의 할아버지가 아이폰으로 구글맵을 열어 프라다 백팩의 끈을 느릿느릿 여는 할머니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여행객으로 보인다. 베네치아 시내는 거의 관광객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저 네 분 중 한 여성분은 동양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분을 동양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셋이 너무나 백인이고 너무나 백발이었다. 이분의 체형도 그 나이대 동양인과 다르게 키가 크다. 백인들과 너무 오래, 그 일부로 함께 살아 더 그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백인들과 똑같이 머리가 하얗게 되어 더 비슷하게 보이는 걸까? 아까 박물관에서 본 젊은 커플을 보며 동반되었던 류의 상상은 없었지만, 창 너머의 네 명의 노인의 느린 모습 그리고 캄파리 스프리츠는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IMG_3575.HEIC Dolce Vita Venezia





이제 기차로 갈 시간이다.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타이밍이 매우 안 좋다. 그러나 기차 시간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보통과 다르게 나는 준비성 있게 가져온 우산 두 개를 꺼낸다. 하나는 내가 딸을 안은 채 아들 한 명과 쓰고, 하나는 남편과 또 다른 아들과 쓰려고 했으나 막내가 이상하게도 우산에 꽂혀서 잡고 안 놓는 바람에 내가 그 우산에 머리를 끼워서 같이 쓰고, 남편은 유모차를 접어 어깨에 메고 비를 맞고 걸었다.


두 아들은 한 우산을 쓰고 “너 때문에 내 어깨가 젖고 있잖아”와 같은 투닥거림을 몇 분 이어가더니, 결국 한 명이 토라졌는지 우산에서 튀어나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쫄딱 젖어 도착한 산타 루치아 역에서 베로나행 기차를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벌써 게이트가 열렸을 시간인데 비 때문인지 지체되는 것 같다. 플랫폼 번호가 전광판에 뜨자 많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만석일 모양이다. 우리도 같이 허둥지둥 들어갔는데 역시나 자리가 거의 다 차고 있었다. 남편이 유모차를 접고, 나는 막내를 안고 기다리는 동안 아들 둘에게 앉아서 네 자리 좌석을 맡아놓으라고 했는데, 어떤 두 커플이 와서 앉아버렸다. 아들들 말로는 자기네들이 이탈리아어로 “여기 자리 있다.”라고 했는데 “상관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라며 앉아버렸다고. 젖고 축축해지면 사람들이 예민해진다. 자리를 빼앗긴 후 그 뒤의 2+2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20대 초반의 남성 한 명이 자신의 캐리어를 옆자리에 놓고 네 명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아하니 바로 복도 건너 옆 자리도 동행인 친구가 똑같이 혼자 네 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남편은 “이렇게 앉을 순 없다. 우리 가족이 여기에 앉을 테니 너희 둘이 저기 같이 앉아달라.”라고 했고, 다행히도 바로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했다. 모두 상황이 해결된 후 나는 안도감을 내쉬며 막내를 무릎에 올리고 자리에 앉아, 우리 아이들이 자리가 있다고 했는데도 앉았던 30대 후반 정도의 커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는 회색톤이 도는 긴 머리의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고대 석상에 나올 듯한,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합을 가진 여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키가 작은지 의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출구 앞에 꽉 차 있었다. 아페롤 스프리츠의 영향인지 나는 졸음이 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큰 목소리에 깨게 되었다. 아까 그 20대 젊은이들의 좌석에서 화가 난 여자 목소리가 난다. 그들은 아직도 2+2 좌석에 자신들과 캐리어 두 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40~5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나머지 두 자리에 앉겠다고 캐리어를 좀 내려달라고 하는 소리였다. 비몽사몽에 이탈리아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해 젊은이가 뭐라고 핑계를 댔는지 모르겠지만, 캐리어를 좌석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자리에 앉지 못한 여성은 화를 냈다. 비꼬며 말하는 것도 들렸다. “아이고 대단하시네(bravo). 아주 축하해(complimenti).”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까 우리 아이들 앞자리를 뺏었던 그 커플의 남자가 같이 끼어들어 젊은이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그러나 젊은이는 “한 번만 이야기하라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라고 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내 자리에서 대각선 자리에 앉은 젊은이도 똑같이 백팩을 옆 좌석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 젊은이에게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왜 다들 이 젊은이에게만 뭐라고 할까? 내 대각선 자리의 젊은이는 튀지 않는다. 아마 가방을 내려달라고 하면 내려놨을 법한 얼굴이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다르다. 눈에 띈다. 지금도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조용히 읊조리던 목소리도. 나는 타깃이 된 저 젊은이가 쉽게 자리를 놓지 않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끝까지 우직하게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앞에 앉은 친구가 도저히 앉아있기 민망했는지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어, 자신은 복도에 서서 가게 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결국 드디어 자리에 앉게 된 여성은 자리에 앉아서도 그 젊은이에게 계속 뭐라고 하면서 갔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약 10분 뒤에 다음 정류장에서 많은 승객들이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그 역에 기차가 정차하자, 열린 출구 앞에서 바깥을 보고 담배를 피웠다. 그 냄새가 바람을 타고 기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난 그 젊은이가 밉지 않았다.


드디어 베로나 역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세심하게 챙겨 왔던 우산 하나가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리를 뺏겼던 이전 자리에서 의자 밑에 놓고 왔다는 그 우산.

우리가 떠날 때는 그곳도 빈자리였으나 우산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다음 달에도 도메니카 알 무제오 2탄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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