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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Nov 16. 2023

솔로 캠핑을 가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

"나는 솔로"도 즐겨 보고, 술도 혼자 마시는 것이 편하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도 바로 스타워즈의 "한 솔로" 선장님인 저는 꿈이 캠핑장에서 "자고 나니 홀로, 일어나니 솔로"인 솔캠을 격렬하게 싶어 하는 아저씨입니다.


지금까지 몇 년의 캠핑을 다니며 딱! 한 번 의도하지 않은 솔로캠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그 혼자만의 '일탈의 시간'은 참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평일이어 그런지 캠핑장에 저 혼자 밖에 없었는데, 혼자라는 두려움과 무서움보다 씻지 않고 2박 3일 동안 이너에서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고, 술 생각나면 술 한잔 마시고 그러다 심심하면 주변 산책하며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 일탈의 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솔로 캠핑을 계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 사전 허락을 받고 아이가 잠든 시간 짐을 혼자 꾸린 뒤 아이가 일어나기 전 몰래 나가려고 하면 저만큼이나 캠핑을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빠 어디 가? 캠핑 가? 나도 가야지." 라며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따라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평소 등교할 때는 5분만 이러며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가 이상하게 제가 혼자 캠핑을 가는 날이면, 기상나팔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이등병처럼 벌떡 일어나는지 참 미스터리합니다. 


사실 최근 1년간 미친 듯 "캠핑의 미니멀화"를 시도한 이유는 승용캠퍼의 수납과 부피 때문이 아닌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간편하게 솔캠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솔캠에 대한 의지는 스타크래프트 리버 같이 생겨 꿈틀거리며 전자포를 쏠 것만 같은 위상의 거대한 텐트 알베르게를 처단 아니 처분했고, 애증의 웅장한 도킹 쉘터 산토리니 2 역시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장만한 텐트와 쉘터는 작고 앙증맞은 5미터도 안 되는 미니미한 그로토와 320 쉘터입니다. 


그로토와 320 쉘터를 캠핑장에서 설치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솔캠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는 합니다.


이너텐트 자리에는 제가 아끼는 캠핑 아이템인 성인 남성 혼자만 잠들 수 있는 사이즈의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침대에서 성별을 불가하고 동침은 절대 불가하다!"라는 메시지를 자녀에게 던지는 엄격한 아버지 같은 솔로에게 최적화된 아이템인 미니멀웍스 코트앤드 야전침대를 놓고 혼자 숙면을 취하고, 한쪽 벽 쉘프에는 비록 마시지는 못하지만(저는 양주를 못 마십니다. 머리 아프고 속도 안 좋고..) 관상용으로 몇 년 전 선물 받아 집에 먼지가 쌓인 채 장식되어 있는 병목을 잡고 사람에게 휘두르면 치명상을 안길 것 같은 푸른색의 로얄 살루트 21년 산을 진열해 놓아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화로대에 불을 피우고 작은 테이블에 맥주 한 캔을 놓고 불을 바라보며 불멍도 하고, 평소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소설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것이 책인데, 나무에게 죄송한 책을 가끔 만들다 보니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혼자 캠핑 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여유 있게 맥주를 마시며 예전에 존경하고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어제도 치밀하게 솔로 캠핑을 위한 아이템을 몰래 장만했는데, 바로 1인용 탄소매트입니다. 캠핑 장비를 인터넷으로 구매하시는 분들이라면 가장 설레는 단어 "오늘 도착 예정". 아내에게는 요즘 나이가 들었는지 삭신이 쑤셔 몸을 지지고 싶은데, 나 혼자 지지고 볶겠다고 보일러를 틀기는 그래서 하나 샀다고는 했지만, 사실 앞으로 솔로 캠핑을 위한 큰 그림이었습니다. 


이번 주는 김장이라는 집안의 이벤트가 있어 캠핑을 가지 못하지만, 다음 주에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주말 동안 가장의 빈자리를 너와 삼삼이가 느껴봤으면 한다."라고 말하며 저의 공백의 시간 동안 가장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줄 솔로 캠핑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적어도 2023년이 가기 전 한 번 꼭 솔로 캠핑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저의 솔로캠핑 버킷리스트입니다.

1. 오후 2시 화로대에 불 피우고 맥주 마시며 책 읽기

2. 삼겹살을 마시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고 육즙과 육향을 즐기며 먹기

3. 야전침대에 누워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누워 있기

4. 먼 산을 멍하니 1시간 17분 동안 바라보고 있기

5. 처녀 귀신과의 깜짝 소개팅 (저승사자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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