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 완전체가 여행이나 멀리 떠나는 날 항상 비 또는 눈이 내렸습니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도 어렵게 캠핑장 한 곳을 예약했는데, 역시나 비 소식이 들립니다. 예전 같으면 캠핑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워낙 비에 익숙한 가족이라 비소식에도 '비 내리면 비 맞는 거지.' 하며 와이프도 아이도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뭐.. 결국 이번 연휴 때 비가 내려도 가는 겁니다.
오랜만에 와이프까지 캠핑을 간다고 하니 저도 살짝 설레기는 합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 오붓하게 막걸리나 한 잔 비워야겠습니다.
그래도 비 내리는 날 캠핑을 가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니 상황에 따라 신중히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아는 분이 가족에 대해 글을 하나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버지...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추억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어린 시절 잠시 아버지와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철이 들면서부터는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눈물의 여왕도 아닌데 눈물도 많아 학교에서도 울고, 집에서도 우는 소위 말하는 울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제 모습이 답답하셨나 봅니다. 다른 아이처럼 사고 쳐도 좋으니 밖에서 열심히 뛰어놀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어머니 뒤에 숨어서 울지 않는 씩씩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셨습니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모습을 싫어하셨던 것 같은데, 반에서 꼴등 했을 때보다 우는 모습을 보면 단호하고 무섭게 혼내셨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눈물이 말라버린...)
많은 남자아이들이 그러듯 성장하며 아버지와의 대화의 시간은 자연스레 점점 줄어들고, 집에서 떨어진 먼 곳에서 혼자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다 보니 아버지와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졸업, 취직, 결혼을 하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버지와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더 소홀해지고 멀어졌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가끔 할아버지를 보는 제 아들이 아버지와 더 가깝게 지내는 정도였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 아버지와 저의 관계가 가까워진 계기는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시면서부터였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라고 여겼던 아버지는 암에 걸리신 이후 몸과 마음이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수술 이후 통증으로 제대로 누워 주무시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암은 빠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제가 없으면 거동이 힘든 상황까지 왔습니다.
걸으시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하시길래 업어 드린다고 했는데 '너 힘들어서 안 돼.'라며 거절하셨지만,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아버지를 업어드렸을 때 문득 그동안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저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퇴근하실 무렵이면 골목길 입구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업혀 집까지 왔는데, 그때 아버지 등에 얼굴을 기대었을 때 아버지 등의 땀 향기를 저는 좋아했습니다.
그날 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가며 너무 가벼워진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아버지와 좋았던 기억들을 잊고 지낸 못된 아들이었다는 죄책감에 집에 돌아와 어린 시절 울보의 모습으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다 소파에 앉아 콧구멍 판 손으로 바나나를 먹고 있는 아들을 보며, '나는 과연 저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에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과 캠핑이 너무도 좋은 저 아이도 몇 년 후면 혼자만의 시간과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재미있는 때가 오겠죠. 그러다 여자 친구 생기면,... 하..
저 아이가 나중에 저를 기억할 때 좋은 아빠보다 그냥 친구 같은 아빠로 저를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