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입니다.
어제저녁 마라탕이 너무 먹고 싶다는 아이와 함께 마라탕을 마시고, 뭔가 달콤한 후식이 먹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와X대학을 갔습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았는데, 제 옆에는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 다섯 분이 자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이와 사이좋게 와플을 주문하고 자리에서 기다리는데, 눈은 아이를 향해 있지만 귀는 자꾸 옆에 있는 어르신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터져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뭐 이런 것을 먹으러 오냐. 우린 이제 다방 가서 다방커피 마실 나이 아니야?"
"**이 대학 물 못 먹은 게 한이잖아. 여기서 대학 빵이라도 좀 먹여보자."
"그렇지. 여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문 대학이지. 야 **이 쟤는 와플 두 개 먹여라."
1차에서 얼큰하게 한 잔 하고 오신 듯한 어르신들은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제 자리가 바로 옆이었기에 그분들의 대화를 마치 한 테이블에 앉아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초반에는 당연히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 (한 목소리로 '사필귀정'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때 한 어르신이 요즘 무릎이 안 좋으시다며 손수 바지를 걷고 무릎을 보여주며 친구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 얼마 전까지는 계단 오를 때나 조금 쑤셨는데, 이제 걷기만 해도 아프다니까."
그 말씀을 들은 어르신들은 동네 병원 몇 곳을 이야기하시며 여기 가봐라. 저기 가봐라 병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신 무릎이 아프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너는 젊어서부터 꾸준히 운동 많이 했잖아. 건강해서 좋겠어."
그 말을 들으신 젊어서부터 꾸준히 운동을 열심히 하셨다는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은 개뿔.. 나도 운동하면 이 나이 먹어서도 건강할 줄 알았는데, 몸만 더 등신 됐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까 온 몸이 쑤신다. 젊었을 때 운동 다 필요 없어. 내가 젊었을 때 왜 술 안 처먹고 왜 안 놀았는지 후회된다. 옛말 어르신들 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다니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젊어서 운동하면 그건 시간 낭비야. 그 시간에 술이나 마시라고 그래."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제 건너편 자리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입에서 와플의 생크림을 뿜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웃음을 억제하느라 와플 조각들이 역류하는 것을 참았습니다.
그 후 어르신들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농담 섞어가며 나누셨습니다. 그때 한 할아버지께서 저를 바라보시더니 말을 거셨습니다.
"저기 애 아버지. 제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 단체 사진 하나 찍어주면 안 될까요?"
저는 이 어르신께서 지금의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사진 촬영을 부탁하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저는 흔쾌히 찍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친구 분들은 "야! 이 나이에 부끄럽게 무슨 단체 사진이냐."라고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사진 촬영을 부탁하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닥쳐. 마누라가 2 차가면 어디로 갔는지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했어."
껄껄대며 대화를 나누던 어르신들도 그리고 어르신의 휴대폰을 들고 있던 저도, 와플을 우걱우걱 삼키던 건너편의 고등학생도, 와플을 열심히 굽던 아르바이트 청년까지 저희 아들을 제외한 이 매장에 있는 모든 남성들은 숙연해졌습니다.
"그래? 그러면 찍어야지. 잠깐 우리 자리 바꿔서 **이 가운데 앉히자."
해맑게 미소 지으시는 어르신들의 사진을 두 번 찍어 드렸을 때 다른 어르신도 말씀하셨습니다.
"저 미안한데, 나도 한 장만..."
그리고 자리 이동의 시간... 저는 괜찮다며 흔쾌히 또 사진을 찍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다섯 분은 한 번씩 자리를 이동하며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모두 사랑하는 와이프 분들에게 전송되었고요.
어르신들 덕분에 오래간만에 진심으로 크게 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어르신들을 보니 그동안 서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젊었을 때는 세트 상품처럼 항상 꼭 붙어 다녔는데, 먹고사는 게 뭔지.... 오늘은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전화 한 통씩..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르신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웃으며 만나 옛일을 회상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들과 와플을 먹으며 내년 캠핑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므로 이 글은 캠핑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밝힙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