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원 Nov 24. 2023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 건축설계관점

별 답은 없는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


경력 개발의 길을 확장하기 위해선 우선 부서 제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오래된 기업에 가 보면 팀장을 10년 이상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임원 승진은 안 되고, 퇴사 처리는 어려우니 계속 직함만 유지하는 것이다… 부서를 고정으로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역할’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선배 또는 팀장이 실력 없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오래 다녀서 연봉만 높다는 후배 직원의 불만을 상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78호 김진영 커넥팅더닷츠대표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는 조직생활에서 자주 생각하는 문제지만 조직구성원의 입장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푸념일 뿐 해결책은 없어 하나 마나 한 소리로 치부하던 사항을 천착해 연재하기도 한다. 이런 글들은 조직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DBR378호의 위 문장 전후의 글들을 읽으며 내가 경험한 건축설계사무소에 대입해서 생각해 봤다.



1. 완만해지는 성장곡선

설계사무소에서 일정 연차가 지나면 경험에 의해 조금 더 위기나 복잡한 상황에서 해결책을 몇 가지 더 가지고 있을 뿐 가파르게 오르던 설계 실력 성장곡선은 완만해진다. 연차별 경험치가 정비례하지 않기도 하고 5년 차나 10년 차나 공간을 계획하는 것이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유사한 난이도의 일을 맡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민첩한 편에 속하는 5년 차는 10년 차 이상의 직급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그저 버티는 사람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봉만 많이 받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은 육성이 되어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어차피 조직은 실력대로 연봉이 책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이해해야 하는 푸념으로 연결된다. 



2. 원하지 않아도 팀장이 된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 신입이 되면 건축설계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연마하게 된다. 생산성에 직결되는 디자인 업무 위주로 연차를 쌓아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팀장이 된 자신에 소스라 치게 놀라게 된다. 도면을 그리는 캐드와, 건물을 형상화하는 3D툴(스케치업 캐드등)을 손에서 놓는 순간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감정에 매몰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어깨너머 배운 팀장스킬로 다양한 일과 사람을 핸들링하면서 제너럴리스트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은 알아채기 쉽지만 관리가 잘 되었을 때의 결과는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관리자의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 현타가 오기도 하는데 설거지를 다 해놓으면 당연한 거고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눈에 띄듯이 관리자가 하는 일은 설거지와 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설거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 어느 순간부터 그저 버티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내가 우리 팀장을 보고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신입 직원들이 '저 사람은 그저 경력이 많다고 일은 별로 안 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월급만 많이 가져가네'라고 생각하기 쉬운 존재가 된다. 

그제야 아. 그때의 그 팀장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조금 이해를 해보려다가 아니야 설득되지 말자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게 되기도 한다. 

설계사무소 조직 내의 이런 관리자로 경력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연차가 꽤 오래 지속된 시니어들을 회사 내에서 씨엠이나 품질관리 본부로 보직을 변경시키기도 하고 스스로 지원하여 이동하기도 한다. 관련 기술 자격증을 따거나 건축 경력을 기반으로 건물관리, 시행사, 자산운용사, 시공사의 설계 관리직 등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3. 스페셜리스트가 운명인 사람

어떤 사람은 컨셉을 생각해 내고 유니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스페셜리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런 사람들은 개인 사무소를 개업해서 본인의 작품세계를 이어간다. (서포트할 제너럴리스트가 곁에 있다는 전제하에 지속 가능하다.) 대형 설계사무소 내에서도 현상설계팀에서 디자인파트만 전담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도 있다. 신입시절에는 다들 디자인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면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역량이 뛰어나거나 오래 지속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것 같다. 본인이 스페셜리스트이지만 관리자의 연차가 되었으니 순응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수 있다.

이런 스페셜리스트들은 가끔 건축사를 왜 따냐고 말하기도 한다.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뭔가 큰 레벨 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조직 내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들 중 건축사를 안 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설계 실력으로 승부하는 느낌이랄까. (거참 얄밉네) 


 

4. 나는 제너럴리스트인 것 같다.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인 걸 좀 빨리 알아채고 좀 늦게 인정한 것 같다. (아는 것과 정말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계속 엄중한 디자인을 한답시고 미간에 주름을 잡고 스케치를 하곤 했으니...)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나 스스로는 뭔가를 멋지게 쫜!하고 만드는 것보다 복잡하게 얽힌 일을 해결하는 데서 더 효용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을 그럴싸하게 못하니까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설계, 시공, 분양, 운영 등 각 이해관계의 니즈와 각종 계약관계가 얽혀있는 어느 준공 앞둔 현장을 인계받게 되었는데 복잡한 것이 복잡하게 정리되어 있는 과거의 자료들을 그러모으며 단순하게 질서를 만드는데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5.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면

제너럴 리스트나 스페셜리스트 뭐하나라도 되어서 소위 말하는 'I'형 인간, 'ㅡ'형인간, 더 나아가 회사에서 좋아하는 'T'형인간 까지 되면 자신의 화살표를 만들어 갈수 있다. 논의되지 않은 사례 중 '스페셜리스트로 연마하다 성장은 멈추고 관리자 역량으로 갈아타지 못한 팀원'에 대한 해결책이 뭐가 있나 DBR에서 다른 글을 더 찾아봤는데 <중간관리자 레벨에서 전문성 활용이 필요하거나 관리자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이동시켜 배치하여 그들에게는 ‘시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과제;’를 부여한다>는 솔루션을 내놓았다.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언급되어 있다.



6. HR은 인간계의 일이 아닌가 

이런 류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고, (사실 요즘에 또 나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어 놀란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에도 여러 프로젝트와 함께 보낼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역량을 판단하는 건 인간계의 일이 아닌 건가. HR은 다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HR 보내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