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원 Dec 04. 2023

어느 건축관리자의 개인적 견해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독서 감상 겸

몇 달 전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를 건축, 도시 관련 실무자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이 책에서는 건축설계프로세스를 다루고 

돈, 권력, 성, 노동, 전쟁, 문화라는 필터를 장착해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을 바라본다.

이 책에서 작가는 대상지 발굴부터 건축물의 준공과 운영에 해당하는 프로젝트의 프로세스와 분리해 건축설계를 그저 드로잉에 국한되는 작업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건축가를 사조와 비주얼에만 천착하는 직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건축가와 건축 이론가 대다수는 건축을 돈과는 무관한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라는 위험한 문장을 구사한다. (그건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는 건축설계자에게 발작버튼입니다...!) 

모임 대부분의 멤버들이 이 책의 작가가 건축설계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반박했다. '돈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면서 설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설계자의 입장에서 프로세스를 간과하고 설계하는 사람은 없다고 반박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이 책에서 카테고리를 나눈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 여러 요소 중 ‘돈’이 목표인 건축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드로잉에 가까운 건축’, ‘상상 속 사용자의 (검증 안 된) 행복을 짐작해서 만드는 공간’ 두 개의 회로를 돌리면서 돈을 배제하고 형태에 치우친 설계를 진행하는 실무자와 여러 차례 일해보았다. 금고에 돈을 쌓아놓고 가끔 설계 회의하러 나오는 만수르적(?) 프로젝트가 아님에도 건축주의 돈으로 본인의 건축적 자아실현 또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의도와 충돌하기도 했다.  

"자본은 회사에 많으시잖아요. 이 정도 큰 규모의 건물 짓는데 신기술 신공법 한번 해보시죠!!"

"이 정도 건물이라면 공개공지를 넘어서는 공원, 공공이용이 가능한 파빌리온, 공공에서도 사용가능한 보행데크를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만들어 줘야..."

개발사업에서 많은 경우 경상이익을 제1의 목표로 한다. 제2의 목표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외재적으로는 건축물을 '상품'으로 다루는 슬로건이 필요하고 내재적으로 공공성, 도시적 맥락이라는 가치등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프로젝트 내에서 소통해야 프로젝트는 현실성이 있어진다. 도시에 지어지는 모든 건물의 목표가 돈이라면 그저 우리 도시에는 자본이 만들어낸 형태의 최적화된 구조와 상품적 가치만 내세운 건물이 있을 것이라 내가 원하는 것도 그건 아니다. 경상이익의 건축 세계에서도 프로젝트에 내재하는 건축문화를 성장시키는 목표가 생길 수 있고 디자인의 힘으로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프로젝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종 현실을 간과하고 건축적 실현만을 내세우는 소통방식에서 반감이 들 때가 있었다. 


설계자-건축주간 동상이몽의 충돌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건축과에서는 사조와 디자인이론, 설계각론을 주로 교육하는 것에 있다. 건축대학에서 자본을 가르치기에는 커리큘럼에 비집고 들어갈 부분이 없고, 실무에 뛰어든 설계자는 법규에 맞춰 그럴싸한 형태를 만드는 노하우만 쌓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발주처는 금융구도와 경상이익, 정말 내부적인 속사정에 대해 설계자에게 자세히 이야기 안 해준다. 외부적으로 알려질 듣기 좋은 슬로건을 실제적 이익과 목표를 이야기해야 할 내부회의에서까지 강조하느라 시간이 모자라기도 한다.(아니면 너무 돈, 돈 거리면 천박해 보일까봐?) 설계자는 질문을 많이 해야 하고 발주처는 프로젝트 공동의 목표와 진짜(숨은) 목적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써야 이 동상이몽은 극복가능해 보인다.

이런 건축주 - 설계자의 소통에 대한 기술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건축주의 분석과 니즈가 있다고 건축물이 그에 맞게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니즈를 품은 사람이 직접 건물을 지을 수 없고 이 니즈들을 재해석하고 통합하여 건축물로 변경해서 답을 제시하는 건 건축가의 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설계예산에 여유가 있는 프로젝트는 각자의 지향점을 놓고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는 발주처와 설계자를 연결해 주는 (주로 리서치 기반의) 컨설팅 용역을 별도로 하기도 해서 이 간극을 매우기도 한다. 설계자는 그런 용역이 무용하다며 본 설계자체에 더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건축가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일을 의뢰하지만 일종의 용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건축 실무자를 대하면서 내가 염증처럼 생각하던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많아 나는 이 책을 큰 저항감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건축실무자가 다수인 독서모임 멤버들의 반대 의견을 듣다 보니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는 설계자와 협업하는 일, 어디까지 관철시키고 어디까지 리딩 당해야 할지 를 조절하는 것도 큰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젝트를 잘 완수하기 위한 방향으로 쓰다 보니 개발업자 입장으로 치우치게 된 것 같다. 관리자의 입장을 벗은 나의 초개인적 자아는 건축은 공공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다. 민간이 개발하는 아파트 단지여도 도시의 인프라를 사용하면서 주변지역에 큰 장막을 만들어 내는 것에 반대하고,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눈뜨고 보기 힘든 파사드 디자인을 하는 것은 공공성 저해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건축프로젝트는 답안지가 없고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각각의 해답이 다르기 때문에 건축적 가치실현의 중요성을 탑재한 건축설계자 전문성에 의지하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 같다. 간혹 건축적 사조, 물리적 디자인 시그니처가 프로젝트의 목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낳은 이 책,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 가를 책 전체를 관통하는 큰 통찰(!) 같은 것을 기대하면서 읽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만들어낸 책이다. 등장하는 사례들도 낯설지 않고, 건축물을 돈으로 권력으로 문화로 공공의 이익으로 대할 때 바로 프로세스를 바꿔서 진행하는 상상을 해보는 재미도 있다. 어쩌면 건축적인 사고만 키워오다가 지금은 '돈'이라는 필터로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 프레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권력, 성, 노동, 전쟁, 문화의 프레임으로 건축을 바라보는 문을 아직 안 열어본 셈 일수도 있으니 나에게도 초보자가 되어 시작해 볼 일이 다양하게 남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타인의 독서감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감상을 지키려는 노력 또한 이 책과 토론을 통해 배웠다. 

(이 독서후기 겸 건축관리자의 견해는 연말 탐구스투디오 글방에 올릴걸 그랬나... 잠시 망설이다. 그냥 업로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 건축설계관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