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업계 종사자의 창백한 연말
살아서 만나자
올해 여러 연말모임에서 건축, 부동산 업계 종사자들과 씁쓸하게 웃으면서 나눈 인사다. '너네 회사는 좀 어때?' 라는 안부를 묻는 시기도 지났다. 대다수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간혹 '우리 회사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아직 괜찮은 회사가 있다고?' 고개를 돌려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괜찮음의 기준을 꽤 단기로 적용하는 사람이곤 했다.
침몰하는 부동산의 배에서 마지막 법카 쓸 수 있는 기간을 끌어안고 모임비용을 지출하는 사람도 있고 회사의 사정을 고려해서 지출을 알아서 줄이거나 이럴 때 오히려 빈 땅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접대를 하기도 하면서 각자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다음을 기약하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도 호사가들은 상대방 회사의 근황을 본인의 콘텐츠로 담아 옮기는 일에 천착한다.
22년 말에도 내년에는 더 힘들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 각자 자신의 예측들을 내세웠지만 점점 더 힘들어졌다.
무력감으로 빠지는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23년 말인 현재에는 총선을 이후를 논하는 향방조차 부질없어 보인다. 나락으로 가는 시작일수도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장담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다. 회사가 망해도 사장은 굶어 죽지 않겠지만 일개 직원인 나는 2024년 이후 생존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뉴스로 다시 만난 프로젝트
이직하기 전 내가 다녔던 시행사에서는 2020년 즈음 분양시장의 초인기 상품이었던 지식산업센터를 연속으로 완판 하면서 꽤 많은 이익을 남겼다. 대한민국에 이렇게나 많은 지식산업체가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쓸 일이 있을까 싶은 쿠폰을 대량 방출하는 느낌이었다. 계약금 10프로만 자기 자본으로 가지고 있으면 대출 90프로가 나왔다. 거기에 중도금은 무이자 대출이었고 준공 후 잔금도 대출인데 그 이자는 향후 입주한 임차인이 내는 임대료로 충당하고 이익을 남기는 구조가 빈틈없이 짜여 있는(것 같은) 지식산업센터가 칸칸이 팔려나갔다. 계약금을 납입하고 중도금 시기에 '피(fee)'라고 하는 금액을 몇 천만 원씩 붙여가면서 단기 이익을 보는 거래들도 많았다. 저금리와 주택시장 투자가 어려웠던 정책적 환경을 기초 삼아 투자자들의 새로운 먹거리가 지식산업센터가 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와르르 무너지는 젠가 같은 구조였는데도 부동산 불패신화에서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때부터 구성요소의 중요한 요소인 실제 수요자는 없었던 것 같다.) 계약금 10%만 있으면 이익을 볼 수 있는 (마치 부동산의 여러 사업이 그러한 것처럼) 프로세스를 파는 일이었고 성공신화가 현실이 되고 있는 하루하루여서 당시 회사에 좀 오래 다닌 직원들만 일부 호실을 분양해 주면서 생색을 내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얼마 전 트레드밀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당시 내가 다녔던 시행사에서 만들어낸 지식산업센터가 요즘 쏟아지는 PF관련 뉴스에 한 꼭지로 다뤄져 꽤 오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분양받은 금액보다 더 저렴하게 처분하는 '마이너스피' 거래 중이거나, 10프로 납입했던 계약금을 포기하고 중도금대출 시 받았던 부가세 환급금을 토해내며 손절이 이어지고 있었다. 원만하게 해결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효용감과 가짜노동
이 산업은 개개인의 노력으로 잘되거나 망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와 맞물려 흥망성쇠 하는 것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게 한다. 흥할 때는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뭘,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려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일의 특성에서다. 내가 하는 행위가 단기에 결과를 낳는 기본적인 일의 구조가 성립하지 못하거나 와닿지 않을 때 관리자가 자주 경험하는 기분이다.
그저 구두가 많이 필요한 세상에서 구두를 밤새워 많이 만들면 돈을 많이 벌고 게을러서 적게 만들면 돈을 많이 못 버는 구조라면 조금 더 나는 효용감을 느꼈을까. 세상의 틀이 복잡해지며 세상이 나아진 것이 뭐가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꽉꽉 채워 일하면서 보내는 연말
다들 힘들고 예민한 시기다. 스스로의 역치를 시험해 볼 시기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늘 좋은 직장만 다니면서 이런 망조 견뎌본 경험이 없으면 주변사람이 나가떨어지는 장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기도 한다. 한 템포 쉬어가고 싶었던 12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날까지 꽉꽉 채워 일하는 중이라 '연말에 내가 아직도 이러고 있다니' 불평이 입에서 새어 나올 만도 한데 그냥 바쁘니까 순간적인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거시적인 흐름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주변걱정을 잊을 수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한 느낌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데) 자의든 타의든 쉬려고 마음먹으면 꽤 오래 쉬게 될 것 같은 내년을 맞으며, 그리고 창백한 연말의 장면들을 잊지 않으려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