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에서 건축물의 정체성은 사조를 지우는 일인가.
들을 때마다 부담스러운 '정체성' 압박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너 꿈이 뭐야? 커서 뭐 될래?' 재촉하듯 질문했던 건 빨리 스스로 자신의 정의를 내리게 한 다음에 그에 맞는 행동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너 경찰관 된다는 애가 친구들 괴롭히고 그럼 되겠어?'라고 하는 것이 '친구들 괴롭히지 마!'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유효하니까. 요즘에는 '어떤 인물이 또는 직업이 되겠다.'라는 장래희망 보다 개인적으로 쾌적화된 삶을 사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많은 희망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다원화된 세상에서 사회전체를 이끄는 담론이 부재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각자 자기만의 생존 싸움을 하는 것이 개개인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중흥의 사명을 개개인이 마음에 품고 각자 국가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정신이 과거 부모님 세대를 나아가게 했다면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개인의 행복이다. 행복은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유리하고 편안한 위치에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이익을 보는 일이고 그에 반대될 수 록 루저라고 해석해버리기도 한다. 직장인들에게 행복은 워라밸을 지키면서 고액 연봉받는 것이 더 구체적인 설명이다.
어떤 표어가 있을 때, 뾰족한 달성 목표가 있을 때, 예를 들면 주택 n만호 달성, n 년도 실적 n% 달성 이런 것은 사람을 나아가게 하기도 하는데 개인에게 적용하게 되면 그 표어는 정체성 정의다. 만약 스스로의 정체성을 워라밸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거나, 성장하는 사람(요즘 이거 유행?), 읽고 기록하는 사람, 큰 목표는 없고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이건 내 정체성)라고 정의하면 뭐랄까 '급진적인 중도' 라든가 '따뜻한 프라푸치노' 같은 성립되지 않는 표어라 미약한 추진력이 되어버린다.
아무튼 정체성은 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연구에서 정체성에 대한 미세한 조작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 보다 거짓말쟁이가 되지 마세요” 가라는 안내를 받은 사람들이 더 적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내용참고 : 동아비즈니스리뷰 389호) 나를 정의하는 것이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맞고요.
건축의 정체성 - 현시대를 보기 위해 과거를 떠올려 본다
건축도 그러하다. 이제까지의 근현대 건축은 미미하게나마 유명 건축가 계보가 있었고 그것이 그 시대의 담론을 형성하고 후대에 사조라 일컬어지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건축물이 지어질 때의 그 건축물의 컨셉, 더 나아가서는 컨텍스트(건물이 놓이는 부분의 총체적 맥락) 안에서 읽히는 그 건물의 정체성이 그 건축물을 의미 있게 해 왔다. 그것은 형태로 드러나는 건축가의 작가주의적 성향이 될 수도 있겠고 미약하지만 건축적인 언어들(연결, 조화, 랜드스케이프등의)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국은 조선시대에서 급격하게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며 해외 모더니즘 사조가 그다지 통찰력 있게 해석되지 않은 일제에 의해, 그리고 그들이 통치하기 편리하게(?) 근대건축(modern architecture)이라 부르기 애매하게 발생하했다. 사유와 현실이 삐그덕 대면서 유입되었고 이미 서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가 만들어질 때 우왕좌왕 하며 모더니즘을 더듬었다. 한민족의 정통을 경쟁하는 박정희와 김일성 사이에서 한국성을 논하며 조선시대의 목조건축물을 형상화한 콘크리트 건물 같은 지금 보기에는 약간은 민망한 건물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참고 : 한국 근현대건축, 다이어그램으로서의 역사 - 정인하)
현재 한국의 건축정체성은
이런 시대의 정체성들은 그 시대보다 몇 십 년 뒤에 평가되어 정립되는데 현시대의 건축은 어디에 속하며, 후대에 어떤 담론과 계보로 판단될까 생각해 본다.
사조를 들먹일때 거론되는 건물들은 이제까지 우리의 살림집보다는 건축가의 강한 오브제, 대형 건축물, 주요 공공청사 등으로 읽혔다.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현재 가장 덩어리가 큰 건물들은 아파트다. 아파트는 집이라기보다 재화가치라고 제외시킨다면 현재의 대형 건축물들은 부동산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나 역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사까지 따고 하고 있는 있을 부동산 개발업에서 건축물을 다루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나의 정체성은 뭐다? 외재적으로는 경상이익을 많이 남기는 일이다. 내재적으로는 건축물의 컨텍스트를 사수하는 일이라고 내심 자부했지만 이젠 개인의 생존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내가 하는 프로젝트의 경상이익이 제일 중요해졌다. 담론? 필요 없다. 외재적 요소에 잠식된 개인일 뿐이었다.) 개발사업에서 건축물의 정체성은 상품이다. 또는 펀드자산으로 분류된다.
건축물의 정체성 1순위가 자산일 때
정체성의 우선순위가 자산일 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범용성'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불특정 다수가 사고팔기에도 부담 없는 건축물, 그리고 최적화 - 공사비, 공기, 군더더기 삭제, 마케팅 요소가 될만한 부분 (돈 안 들고 티 많이 나는 요소) 남기기 등이다. 지구보다 더 오래갈 거라는 자본주의 건축물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 역시 범용성이 기본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다음스텝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생소한 평면이나 유니크한 입면(호불호가 갈리는), 최적화를 넘어선 사용자가 과도하게 고려된(?) 건축물 앞에서 갸웃거릴 투자자가 떠오르기 때문에 그런 시행착오와 설득의 과정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형태와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시스템 만이 유효하다.
건축설계의 기본 구조 건축가와 건축주가 만나서 전문성과 건축세계에 대해 설명 듣고 설득되고 티키타카를 이어가며 탄생해야 하는 기본구조가 건축가 - 임시건축주(시행사 + 여러 이해관계자 집단) - 최종사용자(임시적일 수 있거나, 주인 아니고 임차인일 가능성 높음)로 연결되다 보니 주인 없는, 정체성 없는 건물들이 난무할 뿐이다.
개발업 일편인 요즘 건축업계에서 범용성을 지키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축사 사무소는 순간적으로 한 두 개 회사가 떠오른다. 서울 주요 지역에 연속적으로 그들의 시그니처를 지키면서 매각, 임대 건물 (물론 워낙 토지비가 높은 지역에 주로 설계 시공하기 때문에 설계비와 공사비 버퍼가 느껴지는)을 잘 만들어 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건축물 너 뭐 될래...
너 다 지어지면 뭐 될래
응?
응?
왜 대답을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