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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Nov 18. 2024

도시의 생얼 3

해외설계사와 일하는 발주처 썰

최근 나는 미국설계사와 국내에 생길 대형 상업시설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설계사의 입장으로 해외 설계사와 협업할 때는

‘그거 다 내가 했던 거야… 뭘 멀리서 오셔서 우리랑 비슷한 걸 하고 계셔…’

아니면

‘실시설계 생각해서 적당히 해라…’정도의 마음,

아무튼 뭘 해도 아니꼬웠다.


해외설계사를 발주처의 입장으로 만나는 입장은 좀 복잡하다.


해외설계사를 고용하는 한국 설계판의 못난 모습(해외사 명성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대기업 사장님 또는 공공건축 발주처)에

‘이봐, 자신감을 가져, 한국도 잘할 수 있어.’

라며 어깨동무를 빙자한 헤드락을 걸며 말을 건네고 싶다. 고 쓰려는 건 아니고(굳이 나까지) 이 또한 도시의 생얼을 구성하는 요소이기에 기록해 둔다.



버튼이 눌린건 요새 핫하디 핫한 헤더윅의 오늘자 롱블랙 인터뷰를 보면 한국 발주처를 향해서 속삭이는 말처럼 들리는 아래의 문장 때문이었다.


“서울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이곳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한 도시’라는 겁니다.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과 호기심이 넘치죠. 이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단순히 미국이나 유럽을 따라 하지 않고, 한국만의 독창성을 키워나가는 일에 제가 함께 하고 싶어요.”

_토마스 헤더윅, 롱블랙 인터뷰에서 (오늘 날짜)


위 문장을 해석해 보면

헤더윅은 한국만의 독창성을 키워나가는 일에 함께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 한국인은 자신감과 호기심이 넘치는 것에 비해 건축에는 독창성이 없다고 정의하고 있다는 말 같고


한국건축가들이 유럽건축에 비해 사조와 맥락 없음에 약간 주눅 들어있는 사실을 살살 건드리면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 같다. (나만 기분나쁘니 혹쉬)


기회를 제대로 잡은 건축가가 쿠션어를 좀 곁들여 냉소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을 따라 하지 않는 한국만의 독창성을 왜 영국사람이랑 함께 해…

저 문장 역시 건축물에 더이상의 독창성이라는게 존재할 수 있다면, 아니면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유효하겠지만 말이다.


욱하는 마음에

-독창성이 없는 것

-자신감과 호기심이 넘쳐서 도시의 모습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막 지어대는 것

이 우리의 독창성이다…

그래서 이 모양의 서울이다라고 응답하고 싶다.

-독창성을 헤더윅과 키웠다간 그나마 더듬어 찾는중인 우리의 독창성에 더 손상이 생길 거 같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우리나라는 해외 설계사에게 먹거리가 가득하고 설계비, 일정 등 모든 것이 국내 설계사에 비해 해외건축가들에게 관대하다.

그러다 보니 미국, 유럽의 건축가들이 한번 신명 나게 놀아보고 싶은 판이 맞고요

한국 건축의 호기심, 갈증에 대해

나 불렀지? 하고 헤더윅이 대답한 거 같아 잠시 무서워졌다.





생각해 보면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

그 개발사업이야 말로 이런판을 키우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누가 누굴 탓하겠냐…)


다시 해외사를 고용한 발주처 썰로 돌아와 요즘 회의루틴을 옮겨본다.

매주 화상회의를 한다.

일방적으로 디자인 보고를 받고 리뷰를 모아서 번역해서 전달하는 방식이다.

2.5개월의 컨셉설계 기간 동안 디자인 3가지를 완성시키고 그중에 한 가지를 골라 2.5개월의 기간 동안 발전시키는 5개월의 과정이다.

지지난주는 굵은 선으로 그린 덩어리와 평면스케치를 가지고 회의를 했고, 지난주는 약간 얇고 디테일한 손놀림으로 그려진 스케치였고, 이번주는 3D모델링으로 발전시킨 대안 3가를 가지고 회의를 했다. 다음 주에는 모델링에 재료를 입혀서 올 것이다.

매주 모든 디자인 옵션들에는 레퍼런스 이미지가 따라붙는데 이건 또 볼수록 골 때린다.


(스케치) + 사례이미지

(약간 디테일한 스케치) + 사례이미지

(3D모델링) + 사례이미지


발전되는 과정마다 사례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괄호 안의 결과물은 계속 바뀌는데 사례이미지는 고정이다. 사실 내가 한 십 년 전 대형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할 때 자주 하던 방식이긴 하다. 점점 디자인이 구체화되면서 사례 이미지와 비슷하게 되어가는 중이다.

물론 우리 대지와 목적하는 용도에 맞게 구기고 오려 용도와 면적은 사례이미지의 건물과 다르지만  보기에는 사례이미지와 최대한 유사해지는 길을 향해 다 같이 바보스런 표정을 하며 걸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걸어가는 우리 모두 지금 설계중인 건물이 준공될 때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핀터레스트 + 보정된 이미지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건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들 알고 있잖아.)

사실 홍보나 비용대비 별거없는 이 과정을 직접 진행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A회사에서 하는 설계를 무사히 완성, 홍보 해야 하기 때문에 살짝 흐린눈을 하고있다.

국내설계사가 했어도 잘할 것을, 그나마 장점을 찾아보자면 한국법규를 잘몰라서 디자인이 좀 해맑다.

(아니지, 그건 한국신입사원도 마찬가지…)


요즘 점점 회의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동태눈깔을 하고 앉아있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회의진행을 영어로 해서 그렇기도 하다. (그나저나 왜 서비스를 누리는 입장에서 번 역을 우리가 해줘야 하는지 이것 또한 아이러니.) 여러 명이 모여 그림 빨리 예쁘게 그리는 애이아이 툴 같은 해외설계사에게 이것저것을 입력하고 있는 기분이라 좀 아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시 에이아이 창을 열어 ‘자하하디드가 설계한 것 같은 교촌치킨 매장 디자인 3가지 그려줘’라고 입력해 봤다. 몇 개의 조건 없이 교촌치킨과 자하하디드만 입력했는데 1분도 안되어 이미지가 쏟아진다. (눈앞에 교촌치킨이 있어서 써본 거다. 지금하는 프로젝트는 교촌치킨과 아무 관계없음)


헤더윅이 디자인한 쇼핑몰 8층짜리 한층 바닥면적은 3,000평짜리 디자인 3개만 해줘도 입력해 봤다.



계속

조합

조립하고

빼라고 하는 것을 빼고

넣으라는 것을 넣는

인간 에이아이에게

어렵게 어렵게

억지 억지

영어로

원하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을 전달하며

계속 진행 예정이다.


이 해외설계사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 좀 추적해 봤는데 이 회사의 R디자이너가 준비해 오는 자료가 마치 한국설계사가 발표할때처럼 방대한 자료의 양, 그리도 해달라는 대로 많이 해주고, CG컷도 제한이 없이 많이 뽑.. 아 준다라는… 쫫씨 해외사 선정기준도 질보다 양이었다니


내가 취하고 있는 외재적인 태도는

이왕 핀터레스트 배틀에 참여했고 해외설계사 이름팔이에 돈을 썼다면 더 극적으로 해보자며 팔을 걷고 나서는 것이다.

“일단 국내사에서 허가와 시공이 가능하도록 정리한다치고 더 날아다니는 걸 보여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보고 드릴 때 할 말이… 있…“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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