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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Jan 03. 2017

평화롭고 여유롭게

일상, 네덜란드 #2. 아인트호벤의 첫인상


이 곳에서 지낸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첫인상을 적는 점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제야 슬슬 아인트호벤의 진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2주는 이 곳에서 '합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사사로운 것들로 모든 관심과 신경이 쏠렸던 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기본적인 일들이 해결이 되기 시작하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특히 아인트호벤은 참 살기 좋은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인트호벤은 박지성의 'PSV 아인트호벤' 구단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아인트호벤은 필립스(Philips)의 도시이다. 도시 곳곳에 필립스 건물(구 건물로 현재는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이 보이며, 필립스 뮤지엄까지 시내 중심에 위치해있다. 이렇게까지 필립스가 다양한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식당부터 시청과 같은 관공서까지 필립스 모니터, TV, 청소기 등등 다양한 전자제품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삼성을 보는 듯하다).


네덜란드 경제 성장의 주축인 필립스의 도시인만큼, 아인트호벤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도시적이며, 산업 도시적인 측면이 강하다. 네덜란드 특유의 운하를 따라 이어져 있는 좁고 높은 집들과 도개교는 존재하지도 않아서, 도착한 날엔 내가 네덜란드에 있는 건지 서울 종로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거리를 걸었고, 첫 출근날 내 보스도 주변 도시 여행을 추천해주기도 하였다. 아인트호벤은 유럽의 전형적인 역사의 향기가 가득한 곳보다는, 오히려 네덜란드의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에 더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던 네덜란드 풍경. 아인트호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Delft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그렇다고 이 곳이 현대적이며 신도시적인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강남과 같이 화려하고 빛이 가득한 도시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가닉 형태의 유리 벽으로 치장한 신식 건축물들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아마 위의 점들로는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이 더 비슷할 듯하다). 오히려 긴 산업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한 도시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앞서 착각했다 언급했던 종로 역시, 광화문 대로의 화려한 광장이 아닌 서울의 과도기적 근대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그 뒷면에 더 비슷하다.


집을 포함한 이 곳의 모든 것들은 산업화 이후의 현대적인 기능과 형태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최근의 것이 아니며 오래된 낡음을 함께 보유한다. 이러한 점들이 함께 묘한 위화감을 만들어내고는 하는데, 분명 재질이나 형태로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몇십 년은 사용한 듯한 낡음이 오묘한 느낌을 만들어 내곤 한다(물론 현대의 제품들이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수많은 발전을 보이지만, '제작 공정'면에서의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하늘을 가리지 않는다. 평화롭고 여유롭게. @Eindhoven


건축, 제품에서 느껴지는 신식과 낡음의 오묘함에서 시작하여, 조금 더 거시적인 측면으로 '도시' 역시 같은 오묘함을 띄고 있다. 분명 필립스 구 건물의 고층 건물과 꽤나 번화한 시내가 도시 중심이 위치해 있지만, 이를 아주 조금만 벗어나면 관리된, 혹은 전혀 관리되지 않은 자연이 나타난다. 수많은 거주 지역이 나타나며 대부분이 공원을 기점으로 사이좋게 나열되어 있다. 신축 건물인 듯 하나, 오묘한 낡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특유의 아늑함을 만들어낸다. 도시 특성상 여행자도 많지 않아, 주변 도로는 한적하게 가끔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만 지나다닐 뿐이다.  


잔잔하고 평화롭다. 여유롭고 아늑하다. 시골 마을의 평범하고 조용하며 고요한 일상을 사는 듯 하지만, 기술과 시대의 흐름 및 변화를 벗어나진 않는다. 낡음과 아늑함 속 현대적인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곳. 나에게 아인트호벤은 참 살아가기에, 그리고 일하기에 좋은 곳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인턴 생활은 나에게 일과 삶의 균형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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