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Aug 20. 2021

우리가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

야외가 싫은 집순이와 대형견의 상성

30대가 넘어서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것은 생각이 아니라 진실일 것이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사귄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사회에 나와서 새로 사귀는 친구들은 적어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학교라는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생긴 옛 친구들은 줄어드는데 새 친구는 생기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총량이 적어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예전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고, 서로 각자의 삶에 대한 비중도 커지면서 헐거운 연결고리는 하나씩 끊어져 나가게 되었다. 


아마 개인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주변에서도 30대가 되면서 새로운 무리에 들어가기보다 익숙한 일과 만남을 반복하는 게 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데 물리적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 유대감을 지속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다.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서로의 마음 깊이 말랑한 곳까지 닿으려면 만나서도 꽤 오래 변죽을 울리고 제법 여러 잔의 술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점차 깨닫는 건 당연한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한번 맺어진 인연이라고 해도 멀어질 수 있고, 심지어 평생을 함께한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하기야 마음을 열고 나의 일부를 꺼내어 주고받는 일이라는 게, 상처도 받을 대로 받아본 성인들끼리 쉬울 리 없다. 지속적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으면, 아무리 친했던 관계라도 어느샌가 할 말이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사람과 사람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되려면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럴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의욕을 불러내는 인연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 수 있게 될까.


사람과의 관계에 지친 이들이 반려동물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경우도 많은데, 나 역시 고양이와 친해지는 과정에서는 긴장감이나 스트레스보다 오히려 충만한 기쁨과 애정을 느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곤 했다.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그 앞에서 서슴없이 마음을 여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대체로 동물들은 그 마음을 좀처럼 외면하지 않는다. 특히 길고양이와 유기묘 세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경계심 높은 고양이가 천천히 내 존재에 익숙해져 조금씩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내 손길에 스르르 눈을 감으며 골골대기까지의 과정을 감동하고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고양이는 예민해서 친해지는 데에 꽤 시간이 걸리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나는 그 과정이 그리 길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 위에서, 보호소에서 생활하다가 우리 집에 온 고양이들은 처음 며칠은 침대 밑에 들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려 있기 마련이었다. 걱정되어 자꾸 들여다보거나 손을 뻗어 억지로 끄집어내 토닥여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이제부터 주어진 시간이 아주 많고, 나는 마음의 준비 없이 빠르게 무엇이 진행되는 것보다 차라리 느린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기다리는 것은 쉬웠다. 며칠이 지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고양이들이 침대 밑에서 절반쯤 몸을 내밀고 나온다. 차차 경계하는 눈으로 간식을 받아 먹는다. 나는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 그러면 먼저 다가오는 건 고양이 쪽이다. 결코 알 수 없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이 동물들은 결국 또 마음을 열고 서서히 곁을 내준다. 나는 그 느릿한 신뢰를 이해할 수 있었고, 느긋한 기적이 기뻤다.  


그런데 리트리버 여름이를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건 그전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에게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이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학창시절에 만나 벌써 17년을 친구로 지냈는데도 서로가 이렇게 다르다는 데에 아직도 놀란다. 아마 성인이 되어 만났으면 이렇게 가까워졌을 리 없다고 서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며, 리액션이 좋고, 기본적으로 나의 세 배 정도 텐션이 높은 사람. 흔히 말하는 ‘인싸’나 ‘ENFP’ 유형의 밝고 활달한 성격은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기를 쪽쪽 빨아먹는다. 뭐랄까, 여름이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당연히 여름이와 친해지는 과정은 고양이와는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고양이에 비하면 여름이에게는 애초에 거리라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여름이는 금방 우리 부부를 기껍게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 껌딱지처럼 따라다녔고 손만 닿으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이것은 과장법이 아니다. 관심에 대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우리는 한 달 동안 훈련소에 다녔다.) 게다가 생후 8개월에 23kg로 우리 집에 온 여름이의 존재감은 몸집 작은 고양이나 소형견에 비할 게 아니었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내가 이 개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는 나와 세 고양이, 그리고 여름이가 남는다. 고양이들은 아침밥을 아작아작 먹고 만족하고 나면 각기 좋아하는 자리에 누워 낮잠을 자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과 쿵짝이 잘 맞는 여름이는 그가 없으면 꿩 대신 닭이라도 필요한 듯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가까이 다가와 내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놓거나 했다. 내가 잘 움직이지 않으니 여름이는 집에 사람이 있어도 심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집념은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나는 큰 개가 바닥에 엎드려 나를 올려다보는 바라는 것이 역력한 눈빛에 한동안 어쩔 줄을 몰랐다. 도저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는 순진무구한 눈빛은 끈기 있게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고양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여름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도 텐션이 낮은 나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여름이를 즐겁게 해주고 몸으로 뛰면서 놀아주는 데 최적화된 인간이 아닌데, 여름이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여름이와 함께 다녔던 훈련소에서 훈련사님은 계속 나에게 목소리를 더 높게, 더 크게! 하고 요구하셨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오전에 할 일을 마치고 오후가 되면 여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다녀오면 여름이는 또 심심한 얼굴로 드러누웠다.    



남편은 내가 여름이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는 한동안 여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다. 여름이가 싫지 않았지만 표현 방식부터 거리감 없이 쏟아지는 애정까지 모든 게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강아지도 키워보고 고양이도 키워봤는데 대형견이 이렇게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의 존재처럼 느껴질 줄이야. 반려동물은 흔히들 첫눈에 간택받았다든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든가 하는 식으로 많이 표현하는데, 어쩌면 사랑과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별개가 아닐까. 낯선 동물과 우리가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생활 습관을 맞춰간다는 건 그 나름대로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무턱대고 깊은 관계부터 맺은 뒤에 우리가 잘 맞는지, 앞으로 어떻게 맞춰갈지 조율해 가는 그런 이상하고도 놀라운 관계도 세상에는 있는 모양이다.


막상 함께 살다보면 상성이 잘 맞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동물을 입양할 때 우리에게는 사전에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성격인지, 무엇은 싫어하지만 무엇은 좋아하는지, 입맛이 어떻고 주로 어떤 성향의 상대를 덜 불편해 하는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천천히 발견해간다. 사실 반려동물 입양이 더욱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살아보니 내 뜻대로 맞춰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가족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우리의 개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마음 사리는 법 없이 선뜻 우리에게 온 사랑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감당이 안 될 만큼 밝고 해맑은 개와 살게 되었지만, 다행히 여름이와 함께 산 지 2년이 넘은 지금은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여름이는 처음에 비하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습득했고, 나는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여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야외 운동장을 찾는다. 야외 활동이라고 할 만한 건 ‘실내에 도달하기 위한 이동’밖에 하지 않던 나로서는 나름 커다란 변화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우리에게는 서로를 알아갈 단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고양이들을 기다려주었듯이, 이번에는 여름이가 나를 기다려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크다고 느껴지는 반려동물의 사랑을 이렇게 또 배우게 된다.





여름이와 세 고양이의 일상을 유튜브에도 기록하고 있답니다. 놀러오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B37aSTZx4uAwR7krhFunGw 



매거진의 이전글 대형견이 없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