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그리스 테살로니키 여행

by 준비된 여행

그리스 테살로니키...

현대 그리스 제2의 도시, 고대 마케도니아의 수도였으며, 비잔틴(동로마) 제국 제2의 도시였던 곳이다.

신화의 바다 에게해를 바라보는 테살로니키는 성경 속에도 등장하는 도시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곳으로 데살로니카 전, 후서로 성경 속에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20171028_185208.jpg 로마황제 갈레리우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하고 세운 개선문 (303년 건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방대한 영토를 남긴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그의 부하들에 의해 거대한 영토는 4개의 왕국으로 분할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중 한 명인 카산드로스가 4개 왕국 중 마케도니아 왕국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는 알렉산더의 이복 누이와 결혼하는데 그녀의 이름이 바로 데살로니카였다. 카산드로스는 자신 부인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명명했다.


테살로니키를 여행하기 앞서,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존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위대한 정복자이자 군주였다. 하지만,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을 수 있다.

어려서부터 철학, 과학, 의학 등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생 대부분이었던 전쟁 기간 중에도 독서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도 일면 비슷한 면이 있는 군주란 생각이 든다.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상 많은 영웅 중 알렉산드로스만큼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20171028_153917.jpg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에서 발견한 알렉산더의 모습


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은 군인이나 전략가, 정복자로서의 면모보다 그가 생전에 보여주었던 세계관과 사상이었다.


그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당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고대 그리스인에게 있어 그리스 이외의 문명은 야만적이고 비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부터 그의 세계관은 더욱 확고해진다.

그는 그리스인이 야만이라 여겼던 페르시아가 이룩한 문화에 감탄하였고, 페르시아 복장과 풍습을 따르기까지 한다. 그는 정복하는 곳마다(엄청난 저항이 있는 곳은 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곳의 관리를 기용하고 풍습을 인정한다. 더욱 나아가 그곳에 그리스의 문화를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그가 정복한 많은 곳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그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지금 이집트의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도 그 당시 처음 만들어진 도시이다.

(술을 좋아했던 그는 술에 취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물론 다음날 깨어난 후, 큰 실수에 후회를 하지만...)

20171028_154559.jpg

한 위대한 영웅에 의해 세계사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을 이해하고, 그리스 문명과 혼합시키며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해 나간 것이다.

현대의 중요한 가치이기도 한 다양성과 융합을 통한 신문명을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가 시작을 했을 뿐, 헬레니즘은 그의 사후에 본격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그가 곳곳에 건설한 헬레니즘 도시는 문화, 인종, 기술이 융합하여 완성되어가며 세계사적 흐름을 바꾸어 놓게 된다. 예를 들어, 미술사에서 보이는 대표적인 헬레니즘 문화중 하나가 인도의 불교미술인 간다라이다.


엄밀히 따지면, 헬레니즘이 융합된 문화이긴 하지만 아테네에서 만들어진 사상에 기반한다. 당연히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사람이었으므로 그리스 기반의 도시계획, 교육, 예술을 정복지에 융합하여 창조적으로 재탄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지녔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창의성이 헬레니즘을 탄생시켰다.

헬레니즘은 여러 알렉산드리아마다 똑같은 문화가 아니었다. 그리스보다 앞서 있던 페르시아의 경제, 관료제도를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여기에 그리스의 언어, 예술을 더하고 각 지역의 고유한 관습과 문화를 흡수하여 만들어낸 창의적인 문화였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정복한 거대한 제국을 헬레니즘이란 융합문화를 통해 통치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고대 로마도 사산왕조(지금 이란 지역) 페르시아(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함)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대 유럽에서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한 최초이자 마지막 인물이었다.

이후 고대 로마도 독자적 문명을 이룩하였으나, 동방인 페르시아와의 문화적 융합은 실현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동서양의 하이브리드 문화는 헬레니즘이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도 어울리는 세계관과 창의성을 위대한 고대 마케도니아인을 통해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헬레니즘은 15세기 중반까지 비잔틴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 그 명맥이 유지된다. 테살로니키는 고대 로마시대뿐 아니라, 비잔틴 시대(동로마제국)에도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다음으로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20171028_151218.jpg


테살로니키가 간직한 보물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다음 글에 이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테레사 수녀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