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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건 Jan 08. 2021

사랑의 온도

새소년 <눈>과 영화 <윤희에게>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눈이 내린다. 자신만의 도시와 풍경을 가졌을 그는 겨울일 것이다. 도시는 춥고 풍경은 얼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젠가 따듯한 볕이 훔쳐간 물방울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은 그 물방울들을 다시 부른다. 처음에는 구름의 형태로, 다음에는 눈의 형태로. 과거의 물방울이 많을수록 그의 마음은 온통 눈으로 덮여 현실일랑 잊은 순수의 세계가 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현실의 실종에서 그는 무엇을 할까. 딸에게 말하지 못한 사랑을 다시 만나러 가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영화 <윤희에게>의 서사다. 이 영화를 뮤직비디오로 사용한 음악이 있다. 새소년 두 번째 EP [비적응]의 4번째 트랙 <눈>이다. 어째서 제목은 ‘눈’이고 영어로 ‘winter’라고 적힐까?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가사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눈’을 사랑으로 은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뮤직비디오는 영화의 서사를 편집해 훑는다. 따라서 <윤희에게>를 보는 일이 <눈>을 듣는 일이 될 수 있겠다.


나는 꼭 겨울 같아 / 하얗고 차가웁게

너의 마음을 보네 / 사랑

내 마음 흰 눈같이 / 네가 지나간 걸음 걸음

찍힌 발자국 여기에 / 여기에 깊게

겨울은 또 봄을 외면해 버린 / 너무 많이 쌓인 눈


-새소년 <눈> 부분


영화 <윤희에게>를 축약하자면 서로 떨어져 살아가던 (구) 연인인 ‘윤희’와 ‘쥰’이 각자 지인의 노력을 통해 재회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윤희의 이야기다. 제목인 ‘윤희에게’는 윤희에게 편지를 쓰는 쥰의 공간을 비워둔 채 암시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이미 제목에 적시된 윤희라는 것이다. 이 오묘한 아이러니가 서사에도 있다. 우선 관객은 보이는 것을 본다. 한국에서의 윤희와 새봄의 삶이 그것이다. 곧이어 윤희에게 한국의 삶이란 ‘쥰’이 부재하는 삶이라는 것을 안다. 그로부터는 쥰과 윤희의 재회를 기다리며 본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재회가 아니다. 재회 후 한국에 돌아와 도시를 벗어난 윤희와 새봄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윤희에게>는 눈물 담긴 ‘재회’를 향해 달려온 영화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이력서를 적어 막 취직을 시도하려는 윤희의 모습을, 대문 앞에서 이력서를 들고 망설이는 그 모습을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렇다면 어째서 윤희는,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해 일본에 가야 했으며 쥰을 만나야 했던 것일까. 왜 그렇지 않고서는 새봄과 함께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극 초반 새봄이 도시를 벗어날 것이며 서울에 가면 도시를 방문할 일이 드물다고 말할 때 윤희는 서운하다고 답한다.). 단순하게 답하면 이렇다. 윤희가 겨울을 살기 때문이다.


윤희가 겨울을 사는 까닭은 여럿 있을 테다. 쥰과 헤어진 이후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을 다녀와야 했던 것도, 오빠의 소개로 만난 남성과 결혼해야 했던 것도, 고된 노동으로 딸 새봄을 키워야 했던 것도 그 까닭이 된다. 이밖에도 영화가 비추지 않은 윤희의 그림자는 더 넓을 것이다. 그래서 윤희의 겨울, 그러니까 윤희가 사는 한국의 겨울은 눈이 전혀 내리지 않고 매정하게 춥다.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리고 구름이 온다. 쥰이 윤희에게 쓴, 쥰의 고모가 부치고 새봄이 먼저 읽은 그 편지가 부른 구름이다. 편지에는 윤희가 ‘사랑할 수 있었던’ 과거의 시간이 담겼다. 이는 으레 눈물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윤희는 겨울을 살고 있으므로, 마음에 눈이 내린다. 윤희가 편지를 담담하게 읽은 이유도(설령 울었대도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연차가 반려된 후 상사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라며 해고를 자처한 이유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제 음악의 비밀이 풀렸다. “나는 꼭 겨울 같아”, “내 마음 흰 눈같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 중 하나는 윤희의 것이다. 이 마음의 눈을 윤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윤희는 현명하게도, 눈을 녹이기 위해 쥰이 사는 일본으로 떠난다.


쥰의 도시는 기후상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윤희에게 있어서 ‘꿈’과 같은 장소고 꿈과 같은 눈이다. 현실은 지워지고 온통 백색으로 덮였다. 영화 말미 윤희의 대사 “나도 네 꿈을 꿔”를 복기해보면 특히 그렇다. 쥰이 사는 도시는 꿈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 도시를 가득 채운 눈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러나 이 눈이 일순 들뜬 마음을 선사할지라도, 어서 녹여야 한다. 눈이 녹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으며 윤희는 현실을 살 수 없다. “겨울은 또 봄을 외면”하는 계절이고, “너무 많이 쌓인 눈”은 세상을 가린다. 직장을 포기하고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오는 것은 짧은 도피에 불과하다. 짧은 도피보다 더 길게 삶은 향유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윤희는 여전히 겨울이었을 테고 눈은 녹지 않았으리라. 그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다시 따듯해지는 수밖에. 윤희는 시도하고 실패하고 확신한다. 쥰이 사는 집 근처에서 쥰과 엇갈리는(윤희가 의도적으로 피하는) 장면을 통해 쥰을 만나는 일만이 자신의 눈을 녹일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윤희는 조금 운다.). 그래서 윤희는 딸의 치기 어린 계획에 몰래 동참한다. 새봄과 약속한 장소에서 쥰을 마주했을 때 윤희는 차근히 걷고 조용히 멈춘다. 이윽고 쥰을 돌아보는 윤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그것은 눈이 녹은 것이다. 눈(snow)과 눈(eye)이 단어를 공유하는 까닭은 어쩌면 마음의 눈(snow)이 녹을 때 눈(eye)도 녹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둘이 재회하는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지만 쌓이지 않는다. 새로운 봄이 오고 있으므로. 이때 우리는 무언가 깨닫는다. 우리에게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은 사실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 혹은 그러한 사랑에 뛰어들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대신 눈을 녹일 수 있는 36.5도, 그러니까 사람의 온도가 사랑의 온도이기 충분하다는 것.


윤희와 새봄은 돌아온다. 그리고 도시를 떠난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탈피다. 속박된 삶과 억압, 차별을 벗어나는 일이다. 어떤 사랑은,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마음을 온전히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거대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영화 <윤희에게>는 사람 간의 사랑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결론은 아주 단순하고 아름답다. ‘사람의 사랑은 더 나은 삶이다.’ “나도 네 꿈을 꿔”라고 발음하는 김희애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설득된다.


그렇다면 음악은 무엇을 했을까. 영화가 ‘윤희’가 사는 삶의 독자성을 치밀하게 추구하여 보여주었다면, 음악은 ‘나’와 ‘너’라는 대명사에 기대어 이름을 지웠다. 다시 말해 음악은 ‘윤희’의 감정을 대변하는 ‘주제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넓다. 뮤직비디오에서 음악이 흐르는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음악이 곧 목소리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삶에서 <눈>이 흐른다면 음악은 그의 목소리와 같다. 대명사에는 누구든 들어갈 수 있으니. 조금 과하게 들려도 좋다. 이 음악이 당신의 겨울에 흐른다면 당신의 삶은 곧 영화가 된다. <눈>을 winter로 번역하는 까닭은 그 영화의 제목이 ‘겨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당신이다.



<눈>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vP4-JvABTK4

새소년 <눈>

영화 <윤희에게>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2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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