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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Aug 13. 2024

도전과 성취의 인생은 잘 된 취업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높은 산을 오르자. 그리고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얕은 언덕이 되자.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 Lawrence Peter "Yogi" Berra(1925 ~ 2015)


다들 아실만한 저 명언.

사실, 이 해묵은 명언이야말로 매거진 연재를 종료하며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 나라만큼 수험생이라는 표현이 사회적인 공감을 크게 얻는 나라가 또 있을까? 수험생이라는 단어는 수능을 준비하는 10대 시절, 고시 등 큰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시절  “시험을 준비하는 삶 자체”에 대한 애환을 담고 있다. 수험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를 겪어내는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다들 예상하고, 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험 생활의 끝에는,

결국 ‘취업 준비’라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통과만하면 취업이 보장되어있는 시험도 있지만, 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또 다른 공부를 한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어학 증명을 위한

자기 소개 및 경력 증명을 위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취업에 성공한다

그 뒤에도 우리는 공부를 벗어날 수 없다

직무 역량 강화를 위해

직장 상사, 협력사와의 대화를 위해

소속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재테크를 위해

이직과 승진을 위해

이미 회사에 다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은 분명 생소하실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꿈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후에 느낄 “현타”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생의 간절함을 담아 수없이 입사 지원을 하고, 쟁쟁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평생 직장” 그리고 “임원”의 꿈을 바라는 분들이 꼭 한번 겪어내야할 그런 현실.


“수능만 끝나면”, “대학만 가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허무한 기대는 역시 반복된다. “좋은 회사에 취업만 하면”이라는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취업. 그 하나만을 위한 일생의 절실함은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139


이 정도까지 읽고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서문에 대해서 “아 자조적인 글을 쓰는구나”라고 느끼신다면, 조금만 더 글을 읽어주시길 부탁 드린다.


사회 생활이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는 고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부터

알아서, 스스로를 위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하게 된다. (크게 양보해서 취업까진 괜찮다.)


상술했듯이,

사회에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부를 해야하고

이전의 “텍스트”만 뚫으면 되던 공부가 “관계”를 통해 배워야하는 경우가 하나둘 생겨난다. 일 공부하기도 바쁜데, 조직 생활에 적응을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노력을 안해도 된다는 사람도 요즘은 제법 된다.

물론, 안하고도 사는 법이 있겠지만, 내가 십여년 사회 생활을 해온 것을 돌아보면 안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결국 누군가의 입과 귀를 통해 ‘무개념’이나 ‘사회 생활을 못한다’, ‘MZ다(개인적으로 난 이렇게 세대를 싸잡아 비하하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식으로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경우를 자주 봐왔으니까.


사회 생활 6년차 정도까지는 나도 회식을 거부 못했다. 얼마나 자주 있든, 언제까지 오래 지속되든. 그저 ‘내가 안가고 싶은데 후배들에게 전가하지 말자’는 다짐과 실행을 했을 뿐. 딱히 적극적으로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나도 불편을 느꼈을 정도니,
이 사회의 관계 공부가 오죽하겠는가.
모두는 각자의 빛을 낼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 있어, 사회 생활은 완벽한 개인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주진 못한다. 모두가 모이는 것이 과연 모두가 빛나는 길은 아닐텐데.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면접장에서 선언했다.

선배들을 따르며 조직과 융화되고,
적극성을 가지고 업무를 완수하겠으며,
회사의 방향을 따라 나를 맞춰가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사회를 겪으며 깨닫는 모든 어려움들에게서 도망치려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며,

부당한 것과 적응해야하는 것을 구분하며,

사회인이 되어간다.


후배를 받으며 새로운 부당함을 느끼기도 하고,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상으로 이 사회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땐 삐닥하게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조금 커보니 그것보다는 “일”이 먼저고,
“일을 잘하면서 날세우지 않는” 너그러움이
드는 지금. 여기서 “일에 대한 의지”를 놓으면
어릴때 눈찌푸리게하던 정치를 하게 되겠지


대기업 공채로 취직할 때 나는 승자였다

부족한 학벌을 대기업 간판으로 바꾸는

그 짜릿함은, 겪어봐야만 아는 승자의 쾌감이다.


트렌드도 한 몫한다.

대기업을 나올때 다들 나를 패배자라 손가락질했지만, 당시에 모든 취업 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공공기관”에 나는 보란듯이 합격했고, 대기업 취업 당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샀다.


건설 경기가 좋던 시기 건설 대기업,

공공 취업이 정점을 찍던 시기 공공기관


내게 주어진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하는 일과 인정받는 분야가 변했다. 27살의 신입과 33살의 중고 신입은 달라야한다는 “인정할건 인정하고, 전 직장에서 아쉬운 점을 여기서 찾는” 성숙함까지 겸비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저 언덕 위에 피어나는 것이 아지랑이인지 신기루인지, 기회인지. 역량만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 무겁다. 도전 없이는 고착뿐이다.


이제 난, 누구보다 날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얼마 안남았음을.


더이상 내게 뭐라할 선배들도 몇년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고, 이제는 도전보다 관리의 역할을 조금씩 부여받고 있다.


리더십으로서의 역할.

단순히 내 일만 잘하고 퇴근하는 것이 아닌.

내가 리더십 때문에 책을 읽을 줄이야.


나의 생각과 말투, 다른 부서와의 통화 하나가 우리 팀과 후배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민해야한다. 이것이 싫다면 난, 업무에 대한 도전정신도 후배와 조직에 대한 책임도 지지않는 회색 같은 사람이 된다.


나는 몇년이나 사회 생활을 더 할수 있을까?
 ‘밸류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까?


내가 회사 유튜브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도,

바로 지금껏 이야기한 “도전의 맥락” 때문이다.


내가 잘하도록 배워온 것이 무엇인가?

문서로 하는 일, 네트워킹으로 하는 일,
상대를 빛나게 하는 일, 말로써 승부를 보는 일

그리고 내 모든 키워온 역량을 집결하여,

마지막으로 도전할 수 있는 무모한 기회*를 잡는

선택을 나는 결정했다.


나이와 경험이 누적될 수록 큰 도전을 해야만,

젊은 시절의 패기보다 더 강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 혹자는 부담이라고 걱정해줬다. 나도 부담감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정도의 큰 도전이 아니면 내가 남은 인생에서, 회사 생활에서 더 크게 도전할 일은 없다는 판단이 가장 컸다. 밸류와 성취는 내 도전 그리고 치열함이 주는 정직한 답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https://brunch.co.kr/@alexkidd/125

단 한번도 열어보지 못한 문을 열었다. 누구에게도 기댈수 없다. 오직 나 자신을 믿고 나를 갈고닦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자. 이 문은 내가 열기로 결정했으니까.


아직도 내 스물일곱, 그 순간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합격 소식을 듣고 지하철에서 얼굴을 파묻고 기뻐서 펑펑 눈물을 흘린 일

그룹 연수에 가서 각지에서 모인 많은 동기들과 어울리며 밤을 새던 일

가고 싶던 인사팀에 들어가 근사하게(?) 직장인답게 야근도 하던 일

가끔 나가는 외근길에 메타세콰이어길을 걷고, 벚꽃길을 걸으며 센치해지던 일

한번도 못가본 유럽 회사덕에 출장으로 간 일

몸과 마음이 병들어 회사를 그만둔 다음날 교대역 삼성 아파트를 보며 그 이름이 주는 괴리감을 느낀 일

일년 넘는 시간 수많은 회사에 지원하며 철저히 바닥을 기었던 암흑의 시간들

마침내 생각지도 못한 공공기관에 지원하고 합격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가져온 일 등


그렇게 달리다보니 내 나이도 마흔이 됐다.

이제는 내게 업무든 고민이든 여러가지 질문을 묻고, 커피 한잔 사달라고하는 후배들을 보면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중년의 선배가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배풀 것이 있어야 한다.

젊은 세대와 감히 어울린다는 기대를 하기보단, 그들이 적어도 피하는 존재는 되지말자는, “같은 공간을 공유함에 있어” 부자연스럽지만 않자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난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새 시작을 기대하는

당신을 응원한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내 선택을 진심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닳고 닳은 사람이 아닌,

아직도 사회에서의 내 이름을 건 도전을 기대하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 아직도 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꿈을 꾸는 당신과 나는 같은 곳을 보고 있다.


기회와 꿈을 포기하는 순간, 생의 불꽃도 사그라든다.

그러나 그 불꽃은 생각보다 틔우기 쉽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는 최고의 회사에 나의 사회 첫 인생을 걸어보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불가해보이는 높은 회사에 합격을 해버리자.


그렇게 되면, 그 다음 도전은 그보다 쉬워진다. 적어도 “도전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가 느껴야만 한다.


지금껏 내가 쓴 글은 보통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경우에 비해 꽤나 많은 경우들을 겪고 정리한 것들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원대한 꿈을 위해 가슴에 뜨거움을 품기 바란다.


그리고 내 나이가 되어서,

젊은이들과 한탄을 나누는 사람이 아닌,

꿈을 나누며 가슴이 벅차는 이야기를 나누자.


누구도 아닌 당신이,

당신 주변의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건승을 빈다. 당신만을 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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