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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저씨들은 동네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실까?

아저씨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알렉스키드

한참 돈을 벌기 시작하던 20대 후반,

우리는 서로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듣던

(지금은 어떤 노래가 있는지 알려줘도 못듣지만)

다듀의 노래처럼 “일 끝나서 친구들과 한잔”하자며,

대학시절부터 가던 동네 술집들을 떠나

강남, 신사, 청담, 이태원의 화려한 곳을 향했다


소주를 마시던 우리가 어느날부턴 예거밤을 마셨고,

쿠폰을 모아 J&B 작은 병을 마셨던 대학생때와 달리,

당시 보드카 유행을 따라 그레이 구스, 스베드카 등

보트카를 두세병씩 가볍게 마시고,

새벽까지 다트를 던지며 내기를 하고 놀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발베니, 맥캘란을 찾듯이


어떻게든 금요일 밤은 가장 화려한 곳에서
가장 오래 끝까지 남아 놀아야 했다
그래야 4050 꼰대들에게 빨린 청춘의 기를
되찾아온다는 그런 열정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청춘을 보낸지 십여년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은 이제 모두 결혼했고,

다들 애 아빠가 되었다


왜 루즈하게 동네에서 술을 먹냐고

다들 볼멘소리하던 우리들은,

이제는 분기에 한번 겨우 친구들과 몇시간

만나는 사이가 되어, 우리가 대학생 시절 자주가던

동네의 술집을 다시 찾게 되었다


뭐랄까

오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온 기분으로,

그저 그때만큼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가장 꾸밈없는 모습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나는 기분을 은은하게 나누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 욕을 하면,

다른 회사 쿨하게 원서쓰라고 신나게 떠들던 우리는,

이번에 사표 내면 어디로 이직할지 정하고 가라는 둥

어느 업계가 좋다는 현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건내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서로 위로를 건내주는
든든한 40대 아저씨들이 되었다


예전에 생일 케익을 가위바위보로 사던 것처럼,

커피빈 커피를 가위바위보 내기로 몰아서 사고,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10시 되기전에

각자의 집으로 아쉬운 인사를 건내며 헤어졌다


나도 그 때의 나처럼 본가로 걸어오면서,

뭉근하니 더운 바람을 맞으며,

20대 30대 시절 친구들과 다음주에 보자며 흩어지던

어느 여름을 떠올리면서


이 골목을 돌아서면 그 시절 우리가 있을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꿈을 꾸던 소년시절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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