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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ug 20. 2020

낯가리는 사람을 위한 식물

위로를 주는 식물 - 펜덴스







절벽 바위 틈새에서 자라던 펜덴스는 환경이 못마땅하면 알갱이 같은 잎을 후드득 떨어뜨려 버립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줬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까칠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적응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요. 어찌 보면 금방 싫은 티를 내서 바로 대처할 수 있게 해주니 장점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건조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주면 금세 통통한 잎이 자란다고 해요. 아래로 늘어지면서 자라기 때문에 화분을 매달아 놓고 키워도 좋습니다.



©JeonghyunLee




저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인데, 상황에 따라 전혀 낯을 안 가리는 척하기도 해서 제가 낯을 가린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기가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신도 낯을 가린다며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펜덴스같은 사람이 은근히 많은 거죠.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알게 되는 일이 쉽게 느껴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즐거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쪽이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굳이 밖으로 나와 자꾸 사람들을 만나라고 강요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뼛속까지 옹골차게 집순이인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지요. 그렇지만 저도 모든 사람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친구가 꼭 많아야 할 필요도, 그 친구가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믿습니다.




©JeonghyunLee




그런 면에서 식물은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낯을 가리지만 그래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지쳐 있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소중하다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최고의 호사라고 생각한다면, 식물과 절친이 될 준비가 된 겁니다. 식물은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먼저 신상을 캐묻고 들어온다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도 않습니다. 제 못난 모습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지요. 물론 식물 킬러의 정체는 금방 눈치채겠지만요.


언젠가 ‘무교류 동호회’라는 곳을 소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서 함께 취미 활동을 하지만 자기소개나 뒤풀이 등 친목을 위한 교류는 하지 않는 모임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호회에 가입하는 회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매우 공감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럴 거면 왜 만나냐며 이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한 생각은 그 동호회의 회원이라면 대부분 식물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 없이,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 없이, 그러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식물과의 관계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나름 훌륭한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 중에 손주 사진 다음으로 식물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친구에게 집에 있는 식물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자 “이런 거 찍고 있으니까 우리 엄마가 된 기분이야”라고 합니다. 산이나 들에서 어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들풀이며 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름을 묻고 사진을 찍는 것이 예전에는 참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 조금씩 공감이 갑니다. 저도 언제부턴가 계절 따라 피고 지며 모양과 색이 바뀌는 식물의 모습에 감격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식물은 시간의 흐름이 서글픈 것만이 아닌, 자연스럽고 고마운 것으로 느끼게끔 해 주는 듯합니다. 아무리 작은 식물도 자신이 있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관찰하면 생각보다 역동적이지만 결코 피곤할 정도로 요란을 떠는 법은 없지요. 서로의 진을 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채워 주는 관계에 대해서 알려 줍니다. 이런 식물이 주는 위로는 사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요.





<펜덴스 키우기>


빛 : 햇빛을 충분히 받게 해 주세요. 빛을 충분히 받고 일교차가 커지면 빨간색 테두리가 진해져요. 

 : 잎이 쪼글쪼글하다 싶을 때 물을 주세요. 건조하게 키워야 합니다.

온도 : 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해 주세요.





"식물 사진과 글을 담은 책이 곧 출간 예정이에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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