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식물 - 코르딜리네 레드스타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 은근히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길에서 만나는 식물이 모두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식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시골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서도 가로수를 비롯하여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의 화단이나 건물 사이 공터에 사는 다양한 나무와 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코르딜리네 레드스타(Cordyline australis ‘Red Star’) 는 건물 로비 화단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이 식물의 색에 한 번 반한 이후로 길거리의 풀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뜻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같은 모습이지만 검붉은 버건디색의 잎은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지요. 진득한 색과 함께 양옆으로 우아하게 펼쳐지는 모양새도 남다릅니다. 코르딜리네는 드라세나와 매우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지만, 오랜 시간 식물 족보상의 자리를 옮겨 다닌 끝에 서로 다른 속에 속하는 식물로 정리가 됐습니다.
길 위의 식물들을 눈여겨보다 보면 의외로 누군가가 키우고 있는 화분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에 놓인 화분들이 어느 날부터 이름을 아는 식물이 되면 그 골목이 좋아지고 지나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됩니다. 화분 주인을 찾아 관리법과 애로 사항부터 어떻게 이 식물을 만나게 되었는지까지 묻고 싶은 마음마저 듭니다.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면 비결을 묻고 아파 보이면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물론 왕초보인 데다 낯까지 가리는 처지라 실제로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도 계산대 옆의 식물을 유심히 봅니다. 각자 사연이 있어 보이는 식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계산을 마치고도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식당 열 곳 중 아홉 곳에는 돈나무라고도 불려 개업 선물로 명성이 높은 금전수가 꼭 있어서 가는 식당마다 금전수를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운동하러 가는 길에 오가는 좁은 골목은 처음에는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뛰어가거나 운동이 끝난 후 땅기는 허벅지를 잡고 힘겹게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목의 식물들이 눈에 띄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골목 초입의 국밥집은 주인아주머니가 탁월한 식물 금손인 동시에 손도 크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국밥집의 식물 컬렉션은 식당 앞을 따라 기역 자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계절마다 한 식물에만 집중해 스티로폼 화분에 꽉 차게 심어 늘어놓습니다. 봄이면 보라색 나비 같은 사랑초가 가득히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천일홍이 수북이 자리해 골목이 아니라 꽃밭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천일홍은 이름에 맞게 더운 여름을 너끈히 이겨 내고 가을까지 쭉 꽃을 피우고 있어 더욱 좋지요. 5층 빌라의 주차장 앞 화단에 화사하게 핀 국화는 제법 바람이 쌀쌀해지고 나서야 피어 누가 조화를 꽂아 놓았나 하고 여러 번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골목 끝의 생선구이집 앞에는 꽤 다양한 식물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키가 큰 꽃기린이 눈에 띕니다. 겨울에도 아주 추워지기 전까지는 새빨간 꽃을 줄줄이 달고 있는데, 주인도 화분을 들여놓을 생각을 안 해서 초보에 쫄보이기까지 한 저에게는 엄청난 고수들의 기싸움처럼 보입니다. 꽃기린의 훤칠한 키와 굵고 단단한 줄기를 보면, 주인은 이미 꽃기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여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콩국수 가게로 가는 길에는 로또 파는 집이 있습니다. 1등 당첨자가 두 번이나 배출되었다는 현수막이 붙은 전통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 눈에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앞에 놓인 엄청난 다육식물 컬렉션입니다. 가게 앞 바닥에도 잔뜩, 3층짜리 트레이들에도 잔뜩, 백 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다육이 빼곡합니다. 그중 샛노란 색의 살구미인금은 제가 지금까지 본 다육식물 중에 가장 강렬한 노란색을 보여줬죠.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식물은 하나도 없고, 모두 알록달록한 도자기 화분에 정성껏 심겨 있습니다. 상태도 무척 좋아 보이지만 저를 더 감동하게 한 것은 일일이 꽂아 놓은 이름표입니다. 작은 명패에는 이름과 함께 연월일까지 꼼꼼히 적혀 있습니다. 아마 식물을 데려온 날짜이거나 분갈이한 날짜일 수도 있겠죠. 하나하나 이름표를 꽂아 주는 것은 네가 어떤 식물인지 잊지 않겠다는, 또 너를 여러 식물 중 하나로 취급하지 않고 특별히 대해 주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 이름표를 꽂고 햇빛을 받는 다육들은 로또 1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5만 원 이상은 당첨된 사람처럼 행복해 보입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콩국수를 먹으러 갈 때 한 번, 오면서 또 한 번 로또 가게 앞에 멈추게 됩니다.
식물 구경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 조카가 아직 꼬맹이였을 때 함께 동네 빵집에 가던 게 생각납니다. 가는 길에 보이는 그네는 다 타 보고 문방구에 걸린 장난감도 한참 점검하고 지나가는 형아들한테도 참견하며 가느라 코앞의 빵집까지 가는 데도 30~40분씩 걸렸지요. 그때 조카의 마음을 이제는 좀 알겠습니다. 하나도 똑같은 게 없고 어제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궁금하니 들여다보는 수밖에요. 어딜 가든 눈에 보이는 식물을 실컷 구경하며 가려면 조카를 데리고 나갈 때처럼 시간을 좀 넉넉히 잡고 출발해야겠습니다.
<코르딜리네 레드스타 키우기>
빛 간접광이 충분히 들어오는 반양지에서 키워 주세요. 직사광선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물 물이 부족하면 잎이 쉽게 마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겉흙이 마르면 물을 충분히 주세요. 하지만 흙이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이 주면 안 돼요. 물을 준 후에는 꼭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중에 자주 물을 뿌려 줘도 좋습니다. 겨울에는 속흙까지 말랐을 때 물을 주세요.
온도 높은 기온을 좋아하니 20도 이상으로 따뜻하게 유지해 주세요. 추위에는 약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실내로 들이는 게 좋습니다. 겨울에도 10도 이상 되는 곳에서 키워 주세요.
제가 찍은 식물 사진과 식물에 대해 쓴 글을 묶은 책 '식물 사진관'이 출간되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88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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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