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현 Jan 31. 2023

식물이 보여주는 당신의 우주

식물과 취향_루비목걸이




식물이 좋아지면서 다른 사람이 키우는 식물 구경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어떤 식물을 선택했는지, 그 식물의 상태가 어떤지를 보면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엿볼 수 있지요.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키우는 식물에 따라 달리 보일 때도 있고 익숙한 면을 재확인할 수도 있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서로 안 하는 얘기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꼬마 때부터의 친구가 제가 식물 책을 쓰고 있는 걸 알고 은밀한 비밀을 큰 맘먹고 꺼내놓듯 “나도 사실은 식물 좋아해…”하고 수줍게 고백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웬 식물?’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무실에서 키우는 테이블 야자와 스투키 사진을 보내 주며 자랑까지 했습니다. 식물을 더 사고 싶다며 추천까지 부탁했죠. 결국 자기 멋대로 고르기는 했지만요.



©JeonghyunLee




어린 시절부터 친구지만 지금은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식물 사진을 찍는 것을 알고 자기가 키우는 식물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진을 열어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지만 서로의 식물 취향을 공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별 얘기를 다하는 저희 사이에서도 서로가 무슨 식물을 키우고 있는지는 전혀 이야깃거리가 된 적 없는 소재였죠. 결혼하고 외국으로 가서 애기 낳고 가정을 꾸린 친구는 분명히 심사숙고해서 자기 취향에 딱 맞는 식물들을 들였을 것입니다. 친구는 취향이 매우 확고하고 저는 그 대쪽 같은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취향으로 고르게 된 식물은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친구가 보내온 사진 속 식물들은 다양한 종류의 에케베리아와 산세베리아 하니, 작은 알로에, 무늬 홍콩야자, 스노우 사파이어, 유칼립투스였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친구의 식물 컬렉션 중 어떤 건 딱 제 친구 같고 어떤 건 의외였습니다. 손이 야물고 섬세한 스타일의 친구에게 선택되고 자란 식물들은 어떤 상태인지, 어떤 화분에 길렀는지도 모두 흥미진진했습니다. 특히 외국 화원에서는 어떤 식물들을 파는지, 어떤 식물들이 흔히 보이는 식물인지, 우리에게 생소한 식물은 얼마나 많은지, 똑같은 식물도 다른 모양이지는 않은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신이 난 친구는 다음 날 동네 화원에 들려 그곳에 있는 식물들 중 새로 들여오려고 고민 중인 식물들도 보여주었습니다. 저희는 ‘이게 더 이쁘네, 저게 더 낫네’ 하면서 한참 흥분했었죠. 강산을 여러 번 바꿔 치웠을 만큼 오랜 저희 둘 사이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감대가 추가된 것입니다. 



©JeonghyunLee




내친김에 대륙의 반대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에게도 너네 집에 있는 식물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호탕한 성격에 훨씬 더 더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는 의외로 수선화와 튤립과 난, 그리고 용발톱과 염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잘잘한 잎들이 풍성히 달린 나무들이 심겨있었고요. 왠지 커다란 잎을 자랑하는 키 큰 열대 식물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가짜 몬스테라 잎 한 장 밖에 없었습니다. 제 식물 사진 중에 여리여리 하기 짝이 없는 루비 목걸이의 사진을 가장 맘에 들어해서 내심 놀랐었는데, 키우는 식물들을 보니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뻔했던 친구의 진짜 취향이지요. 이렇게 가끔씩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 키우는 식물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친구들 생각을 합니다.



©JeonghyunLee



누군가가 키우고 있는 식물을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는 잘 꺼내 보이지 않았던 마음의 한 구석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은연중에 제가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는 의외의 식물을 키우는 것을 볼 때면 그 사람이 보내는 은밀한 신호를 수신한 것 같아 흐뭇하죠. 일단은 식물을 키운다는 자체로 교집합이 만들어져 좋고 같은 식물을 키우고 있기라도 하면 해외에서 동포를 만난 것 마냥 반갑습니다. 식물의 상태가 건강하면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하며 경외감이 들고 식물이 비실거리면 ‘이 사람도 나 같구나’ 싶어 살짝 위안이 되면서도 저처럼 속상한 마음이 한편에 있겠지 싶어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포기하지 말자고요.



©JeonghyunLee




식물은 어떤 면에서든 언제나 함께 사는 사람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실비실한 제 식물들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만한 어구는 아니지만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식물, 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식물에는 그 사람의 취향이 담깁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또 다른 우주를 발견하는 것이니까요. 



©JeonghyunLee








<루비 목걸이(Othonna Capensis 'Ruby Necklace') 키우기>



주렁주렁 달려 있는 동글동글한 잎들이 진주알처럼 보여서 진주 목걸이라고도 불리지만, 가을이면 고운 보라색으로 물들기 때문에 루비 목걸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립니다. 루비 네크리스 또는 루비앤네크리스라고도 불려요. 줄기는 항상 밝은 보라색입니다. 어릴 때는 잎이 동그랗다가 자라면서 길쭉해집니다. 원래 잎이 길쭉한게 정상인데 농장에서 동글동글하게 키운다는 얘기도 있고 줄기가 늘어지면서 영양이 부족해지면 잎이 길쭉해진다는 얘기도 있어요. 앙증맞은 노란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데, 온도가 높아지고 빛이 많아지는 낮에 피었다가 밤에는 다시 오므라들어요. 살짝 넓은 화분에서 키우는게 좋다고 합니다.


빛 : 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곳에서 키워 주시돼 여름철 직사광선은 피해 주세요. 평상시 햇빛을 많이 받으면 가을이 되면서 보라색으로 물듭니다.


물 : 봄과 가을에는 흙이 완전히 마르면 물을 주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물을 줄여주세요. 잎이 탱탱하지 않고 바람 빠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 주면 돼요. 건조하게 키워야 보라색 물이 더 잘 든다고 해요. 여름은 휴면기라 물을 줄여 건조하게 관리하는 게 좋고 겨울에는 단수해도 괜찮습니다.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해주고 통풍이 잘 되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온도 : 휴면기인 여름에는 잘 쉴 수 있게 서늘한 곳에 놓아 주세요. 겨울에는 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추워지면 실내로 들여주시는 게 안전합니다.





©JeonghyunLee



제가 찍은 식물 사진과 식물에 대해 쓴 글을 묶은 책 '식물 사진관'은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교보문고 등등에서 구매하실 수 있어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885704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JeonghyunLee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의 자리를 옮길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