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안녕 아가야 :)
너에게 본격적인 인사를 건네기 전에, 오늘 엄마가 너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잠시 설명할게.
엄마는 원래 생리주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몸이 아파오는 걸 느끼고 나서야, '아, 때가 왔나 보다'하고 생각해. 그런데 이번에는 온갖 증상이 다 나타나고 나서 몇 주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더라고. 그래서 2주 전 즈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있던 임신 테스트기로 검사를 해 봤는데, 결과가 나타나는 첫 번째 칸이 별 반응 없이 지나가고 두 번째 칸에만 빨간 줄이 생겼어. 결과는 비임신이었지. 어차피 임신 일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해 본 검사라, 그러려니 하며 흘려보냈어.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감기몸살처럼 몸은 더 아파오는데 아직도 생리 소식이 없어, '혹시나 모르니까 한 번 더 검사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다시 테스트기를 꺼내어 화장실로 갔어. 아무런 기대 없이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는데, 두둥! 1초도 지나지 않아 비어있던 두 칸이 모두 빨간색 선으로 선명해졌지 뭐야. 기쁘면서도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잠시 머릿속이 멈추는 느낌이었어. 네 오빠를 만났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너무 기뻐하지 말고 얼른 의사 선생님을 만나 확인부터 받자'는 생각부터 들었다는 것이었지. 그래도 아빠한테는 말해야 하니까, 오빠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간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창문 앞에 서 있었어.
엄마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며 아빠를 맞이했어. 아빠는 어리둥절하며 창문 앞에 서서 엄마를 쳐다봤지. 엄마가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들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더 가까이 다가왔어. 아빠는 본인의 눈으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서도 '에이~ 설마, 진짜야?' 하며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어. 엄마가 장난을 치는 줄만 알았던 아빠는, 현관으로 들어오며 '진짜야?'라는 말부터 던졌어. 그리고는 장난이 아니라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엄마를 와락 안으며 말했어.
"우선 의사 선생님부터 만나보자."
역시 두 번째라 엄마 아빠 모두 이 상황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금세 알 수 있었어. 엄마는 구글맵을 뒤져 오늘 바로 방문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았어. 그리고 곱슬머리의 아랍계 이름을 가진 착한 산부인과 선생님의 입에서 '임신이네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지. 아빠랑 오빠도 같이 갔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중이라, 엄마 혼자 마스크를 쓰고 선생님을 뵈러 가야 했어. 콩알만 한 너의 초음파 사진과 우렁찬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었는데, 그 감격적인 순간을 아빠와 나눌 수 없어 너무 아쉬웠지 뭐야.
솔직히 고백하자면, 엄마가 너한테 미안한 게 있어. 사실 네가 보여준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본 후로 엄마 머리가 점점 복잡해졌어. 올해는 오빠 낳은 이후로 쉬어왔던 일을 꼭 다시 시작하고 싶었거든, 이미 합격 통지를 받은 회사도 있고, 다음 주에 최종 면접을 남겨둔 회사도 있는데, 사실 입사하고 3~4개월 만에 너를 낳는다면 엄마 상황이 좀 곤란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정말 나쁜 생각이지만, 네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충분히 즐기기도 아까운 시간에, 엄마는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엄마 욕심을 채울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 정말 미안해. 그런데 말이야, 조금 전 네가 들려준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으니까, 금방 알겠더라. 엄마의 직장과 너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야. 너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거든. 엄마는 어떻게든 엄마 스스로 행복해질 방법을 찾을게. 그리고 우선 10달 동안 너를 최고로 안전하고 행복한 곳에서 쑥쑥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필게. 너는 그냥 건강하기만 하렴!
다시 한번, 반갑고, 고맙고... 사랑해 아가야 :D
2020.5.13 평범한 수요일 오후 8시 55분
아빠랑 오빠가 자러 간 시간에,
워터루라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