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아준 이유
번아웃을 앓은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번아웃은 의학적으로 병도 아니요, 대부분의 경우 신체적으로 기능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 심리적 현상이다. 다행히도 벨기에에서는 번아웃을 심각하게 다뤄 국가적 시스템이나 회사의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 혜택을 받고 치료에 전염하는 나는 이 것을 아주 하찮게 생각했다. 오히려 병가나 보험 등 다양한 지원으로 정말 심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것을 악용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내가 지금 그런 사람 중 하나이 지는 않나 매일매일 자기 검열을 했다. 그냥 의지박약 하고 게으른 내가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가시질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내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도대체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는 글로 생각을 내뱉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번아웃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더욱 답답함이 더해지는 듯했다. 무언가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계속 빙빙 둘러 그냥 글자수만 늘려가는 기분이랄까. 나는 이제껏 아주 솔직한 내 마음을 글에 녹여냈는데, 번아웃이 오고 나서 오히려 말을 가려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너무 우울하지 않게, 듣는 사람이 거북하지 않도록.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고 슬퍼하지 않도록.
작년 여름, 보험사에서 지정해 준 정신과의사와의 면담이 있었다. 초여름날의 오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의사를 만나러 갔다. 대기실 벽에 걸려있던 뜨개실로 만들어진 커다란 그림을 보며, 의사가 꽤나 예술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진료실 안에는 안락한 의자와 환자를 위한 듯한 티슈 박스가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그 아늑한 진료실에서, 프랑스풍 영어를 구사하던 고상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내 인생 처음 내 안의 아주 어두운 곳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디가 아파서 병가를 냈나요?"
"번아웃이요."
"왜 번아웃이 왔는지 아나요?"
"네, 회사업무 강도도 높고 제가 워킹맘이라 애들을 돌보며 제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 것 같아요. 사실 아직도 정확히 왜 어떤 사건으로 번아웃이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아, 그 정도로 됐어요. 혹시 의사는 누구예요? 상담은 누구에게 받고 있지요? 약은 먹고 있나요?"
내가 하는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 자기 손에 들린 두꺼운 서류의 질문을 얼른 해치우고 싶다는 태도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아... 상담은 정신과의사가 아니고 심리상담사와 하고 있어요. 처방은 따로 주치의에게 받고 있고요."
"아, 의사가 아니란 말씀이죠. 그럼 안 되죠. 약을 쓸 수가 없잖아요. 잘못하고 있네요."
"아, 네."
보험사에서 고용한 의사이니, 보험사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묻는 말에 하나하나 대답을 이어가던 내게 의사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가족들 중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혹시 자살을 한 사람은요?"
의외의 질문에 잠시 멍해진 나는 찬찬히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랫동안 술에 의지하던 아빠에게 우울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뜩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음... 제가 만난 적은 없는데, 할머니와 큰아버지께서 오래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들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본인 또한 우울증을 앓을 수도 있겠네요.
"..."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
어쩌면 유전적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네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한 사람이 있으니, 너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정신과 의사라니. 아주 좋은 의도로 나에게 위험요소를 인지시켜주기 위함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는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 내 불편한 표정은 상관없이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본인이 가치가 없다고 느끼시나요?"
"아... 그게... 네."
이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느냐는 질문. 나는 한 시간 내내 건조한 질문에 건조하게 대답했지만, 이 질문에서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지금껏 힘들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구나. 이 의사는 나에게 즉시 정신과 의사를 찾아 상담을 받을 것도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것을 권하고 눈물을 흘리는 내게 휴지 한 장 권하지 않고 나를 출구로 안내했다.
그 여름날 이후, 나는 아주 지독한 우울에 시달렸다.
'죽음도 나쁘지 않겠는데?'
매일매일 아주 가볍게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 배에서 나온 생때같은 자식들이 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죽음 이후에는 고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때때로 좋은 집에 좋은 음식에 행복한 가족에,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은 자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죽음이 어쩌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면 다들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무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의사와의 면담 때문인지, 나는 유난히도 힘든 여름을 보냈다. 그 사이 벨기에에서 독일로 이사하며 스트레스 요소들이 쌓여갔고, 남편과 나는 매일매일 말싸움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나 좀 그냥 놔둬.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내 목소리가 처절한 절규처럼 들렸다. 꼭 뱉어냈어야만 하는 말이 그제야 나온 느낌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함께 울었다.
그렇게 내 어두운 생각을 뱉고 난 이후, 나는 진료를 늘리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다행히 우울감이 점차 줄어 처방받은 약은 열지 않은 채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지만, 약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은 내 생일날이었다. 번아웃 이후 한국 가족들에게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생일이니 적어도 엄마께는 연락을 드려야할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우리 딸 잘 지내지? 생일 축하해."
두 아이를 내 품에 안고 태블릿 안에 있는 엄마가 건네는 이 평범한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가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강하니까, 그리고 남편이 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서 내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잃는 아픔보다 내 아이를 잃는 아픔이 더 클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 아픔을 우리 엄마에게 주려고 했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아파왔다. 눈물이 왈칵 나려는 것을 참고 웃으며 영상통화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로 극단적인 생각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국가도 바보가 아니다. 내 가족들과 친구들도 바보가 아니다. 내가 하찮게 봤던 번아웃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아주 쉽게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정신병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번아웃을 처음 진단받을 때부터 나는 '나는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금방 나을 거야.'라는 생각을 해왔다. 스스로 끊임없이 이건 그냥 '감기같이 가볍고 쉽게 지나가는 것'이라고 암시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번아웃의 심각성을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시간을 주고, 도움을 주고, 관심을 줬다. 가끔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혼자 숨어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내가 괜찮은지 물어봐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위험한 길을 가지 않았다. 언젠가 또 이런 극단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 마흔이 되던 해의 생일날을 기억해 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