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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Mar 27. 2023

화이트 데이에
사탕 안 먹어 본 사람 없지? 1

신고합니다. 이제 스무살입니다.


대학 2학년... 3월 학기가 시작되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살포시 얼굴을 스치고,

오후 햇살이 따뜻해서 하루가 뽀사시...

포근한 날이다.


그래도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다.

가지 사이 벚꽃의 순이 불뚝하게 파르르 불거져 보이니,

사뭇 진지한 봄을 기다리고 싶어진다.


이제 막 석양의 해는 지고,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나는 서 있다.

몇 분 후에..




그가 제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이 낯설지만,

왠지 늠름해 보인다. 

그에 대한 없었던  믿음도 생길 만큼, 

믿음직스러운 느낌이 내 마음 속에 겁없이 생겨버렸다.

그의 남성스러움이 돋보이는 제복 때문이었는지...

그가 멋있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이래서 여자들은 제복입은 남성에 대한 로망이 아련하게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가 버스에서 내렸던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나 어때?"

"응, 오빠 보기 좋네~ 제복이 잘 어울리는데?"

라고 말하고, 그의 표정을 힐끗 봤는데,

그는 환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중이다.

"학군단(R.O.T.C.)은 할 만하고요?"

내 말이 허공에 띄워지기가 무섭게

그는 학교생활의 일부터 십까지 관련된 모든 일상을 

내게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듯 조잘대기 시작한다.

선배들에게 어떻게 인사하고, 훈련시간의 일들이며,

학업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미래 등 을 주저없이 하고 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왔다.

어쩌면 그가 나를 위한 배려였겠지.

평소에도 발그레해진 빨간볼 소유자였는데,

여전히 그날도 여느때 처럼 그의 볼은 홍당무처럼

빨갰다.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선배의 볼이 왠지 어리숙해 보여서랄까? 


내 눈에 비췬 한 살 위의 선배가 마냥 어려보이게 보이는 지점이었다. 


그의 빠알간 볼을 볼 때면, 

꽃망울을 머금은 벚꽃이 어느날 갑자기 터지 듯

웃음이 금새 터질 것 같았지만 미소로 바꾼 채,

나는 자연스러운 눈웃음 만 보여주는 

신공을 가끔 보여주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 하나다. 

 (이게 또 나만의 특유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저녁 먹어야지? 너 뭐 먹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걸로 먹자!"

"아, 좋아~~그럼 떡볶이랑 김밥 먹자"

"어어.. 그래"

내가 사는 동네로 놀러 온 오빠에게 분식을 먹자고 했다.


그는 어렴풋이 실망한 듯 했다.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함께 먹으려 했을까?

(그건 지금도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도 그는 나의 의사를 존중했거나, 

혹은 정말 나의 취향을 배려했는지 

내가 먹자고 한 분식집에 별탈 없이 들어갔고,

아주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인근에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 학생들에게 제법 유명한 맛집이었다.

집에서 간식을 먹고 나온 나는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분식을 먹을 수 있는

뱃 속은 비워둔 셈이다.

그날 나는 오빠를 잠깐 볼 거라 생각했기에...

데이트라고 조차 생각하지 않고 나온 것 자체가 그날 나의 착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전 오빠가 내게 만나자고 할 때 만 해도,

동아리 모임 회장이던 그에게서 같은 임원으로 활동 중인 

내게 협조할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잡은 약속인지라,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우리집 근처로 와서 이야기한다고 하길래, 

나는 어떤 사심도 들어가지 않은, 편한 평상복 차림인 후드티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나가서,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그를 유유자적하게 기다렸다.)


그가 내게 사탕 꾸러미를 주기 전까지, 나의 그런 생각이 옳았다.


오랜만에 먹는 떡볶이의 달큰하고 매콤한 맛이 입에 촥촥 감긴다. 

분식집을 나와서 우리는 동네의 아기자기 한 카페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동아리를 도울 무언가의 일이 있다고 한 오빠의 그 말이 궁금한 나는

카페에 어서 가서 들으려는 조급한 생각이 잠깐씩 들었다. 





카페를 들어서자 초저녁이어선지 좌석은 여유 있었고,

펜던트의 밝기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에 어울릴 만큼의 

어둠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우리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커튼이 살짝 드리워진 창가 자리로 착석했고, 

우리를 향해 온 주인장에게 음료를 주문한 후, 몇 분의 기다림의 시간을 마냥 즐겨야 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사알짝 그에게 미소 지었고,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모습에 무언가 진지한 모습으로 

준비한 몸짓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멈칫 거리는 몸짓에 로봇처럼 움직이는 손동작 사이에

입술이 씰룩대는 순간,

카페 주인장이 주문한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음료가 가지런히 세팅되고, 주인은 우리의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수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나는 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만 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내게 무슨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나?"

"으으응, 그랬지"

나는 그의 말을 금새 받아치면서

"어~ 그럼 해야지. 뭔데요?"

"..."

.

.

.


말이 없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해?"


"에...엥? 그게 무슨말이에요?"

나는 처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오빠는 좋은 선배이고, 나는 오빠 후배이지 뭐' 라고 하려다가

뭔가 뒷목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듯 쌔한 느낌이 느껴진다. 


카페 안에 흐르는 음악 사이로 헛기침을 몇 번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내게 하려고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가 말하려는 수 초 전에서야

알아챘다. 


"너를 알게된지 벌써 일년이 되가네...(중략)...

나는 너와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서... "


그가 내게 고백한 요지는 이랬다.

내가 대학 1학년 3월에, 처음 서로 알게 되었고,

.

.

.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재기발랄한 순수함과 약간의 허당끼와 웃음 등 나에 관한 아주 사소한 것들...

뭐 이러 저러한 나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그가 나에 대한

좋은점과 매력을 미분, 적분하 듯 디테일을 곁들여서 애기한다. 

심지어 나도 잘 느끼지 못한 나의 매력을 그는 발견한 듯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 상대를 좋아하면, 

상대의 모든 언행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구나를 몸소 체험한 날이다. 


(그가 나를 향한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과 친절한 배려에 대해서 

그날의 나는 아쉽게도 결코 깨닫지 못했다. )



"그러구 보니, 오늘이 화이트데이네~"


사탕보다 먼저 그의 사랑고백을 먼저 받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2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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