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
이 말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 ~1925)가 생전,
자신에 관하여 남긴 말이다.
이렇게 함축적인 표현 속에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니...
명언이다.
1893년 가을 어느날,
옹플뢰르에 있는 에릭 사티의 집에
수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가 초대되었다.
수잔 발라동!
몽마르뜨 언덕 위 카페에서 르느와르와 드가, 로트레크의 애인이었고,
그들 화폭 위 모델로 활동했던 그녀 앞에 조용히 나타난 그.
사티는 자신이 카페의 피아니스트로 등장했던 첫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젊은 사티의 가슴을 뜨겁게 불지르고도 남을만한
예술혼과 열정이 깃들어 있는 그녀가 들어와 버렸으니...
뜨거운 밤을 보낸 그날 이후 시작된 동거.
둘의 연인 관계는 당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파리 예술계에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 되었기에,
발라동은 이제 그녀의 아들 위트릴로에게
사티를 소개시켜주기로 마음 먹는다.
발라동! 그녀의 나이18세 되던 해에 사생아인 위트릴로를 낳았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전부터 시작했던 누드모델이라는 직업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녀 삶의 어려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복잡한 상황이었을게다.
카페에서 생계를 위한 모델 활동과
자신의 숨겨진 화가의 꿈,
(후에 로트레크와 드가로부터 화가로써의 천재성이 인정되면서, 작품활동은 시작되었고,
마침내 프랑스 후기 인상파 여류화가 1호로
유명해진다.)
청소년기의 긴 방황과 알콜중독,
정신병 등으로 인한 정신병원에서 감금 생활을 해야만 하는 아들 위트릴로를
지켜봐야 만 하는 어미의 심정과 고뇌는
말 할 수 없이 힘들고 벅찼으리라.
그런 그녀에게 불꽃같이 나타난 사티는
순수한 영혼의 대명사이자 아이콘이 되어
그에게 기대어 영원한 사랑을 잠시 꿈꿀 수
있었다.
음악계에 풍운아처럼 나타난 사티의 음악은 가히
아방가르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대중에게는 기괴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비주류 음악가였다.
사후, 그의 옷장에서 발견된 똑같은
벨벳 자켓 10벌 이상은
그의 기이한 행보를 설명하는 듯 하다.
늘 같은 옷을 번갈아가며 입었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100개 이상의 우산이
그의 편집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혼이 아닌 동거로 시작된 그들의
불안한 관계는 6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사후, 그의 방 서랍 속에서 발라동에게 보내지 못한
한 묶음의 연서가 발견된 것을 보면
발라동과 헤어진이후, 사티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했고, 죽는 날까지 그녀를 사랑했었던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사티의 사랑에는 오로지 수잔 발라동,
그녀 뿐이었다는 사실에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사티를 떠난 발라동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서인지,
주식거래인인 부유한 상인이 폴무시와
결혼을 했고, 시골에 내려가 화가로써 작업에
몰두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화가의 길을 들어선 아들 위트릴로의 친구이자,
화가인 앙드레 우터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몇년 후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폴 무시와는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발라동은 21년 연하인 앙드레 우터와
결혼해서, 위트릴로와 우터,
셋이서 한집에 살게된다.
이 일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에 괴념치않았으며,
자신의 인생을 화폭 위에 계속 담기 시작했다.
사티와 발라동!
인생의 교차점이자, 그들의 젊은 무명시절을
풍미했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쳤고,
예술혼을 불어 넣어준 대상이었음은 분명하다.
위대한 음악가와 화가와의 만남!
잠깐의 하모니!
그들이 달달한 사랑을 나눴던 시절,
사티는 발라동을 위해 '난 당신을 원해(Je te veux)'라는 곡을 만들었고,
발라동은 사티를 위해 사티의 초상을 그렸다.
필시 그들의 사랑은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앞에 영원히 새겨져 길이 남아있다.
사티의 예술혼를 불태우게 한 정열의 그녀!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불태울만한 작품 만들기를 꿈꾸지 않는가?
프랑스 노르망디해안가 작은시골도시 옹플레르와 몽셍미셸을 다녀왔다는 나의 친구가
사티 생전집인 사티박물관을 구경했던 소감을 기억하며~ 2015. 4. 17.佳媛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