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두 여인
사랑의 시작은 또 하나의 방황
드뷔시 생가이자 드뷔시 박물관(파리 생제르망 앙레)
"당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쓸쓸한 가을 하늘에 떨어지는 낙엽에 실려가는 바람의 질문에 그는 멈칫한다.
"엠마를 내 아내로 맞이하고, 그녀에게서 첫째 딸 슈슈를 얻고 보니, 유한한 내 생에서 정점을 찍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만 같다.
오늘 밤 문득, 나의 사랑을 거쳐간 수많은 여인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평탄치 않은 인생 속에 그녀들이 있었기에, 내 음악의 질감이 더 쫀득쫀득 해졌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문학계에서 당시 유행했던 상징주의와 인상주의 여파는 음악계에서도 그를 중심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정수이자 세계적인 이슈가 될 만큼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던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화려한 여성 편력의 아이콘으로도 당시 유명한 인물이었다.
여러 여성들과의 사랑과 이별을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오히려, 그의 창작활동은 왕성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사이에서 인상주의 음악의 절정을 보여주는 곡들이 대부분 탄생되었다.
혈기 왕성한 18세 청년시절부터 열렬히 사모했던,
연상의 여인인 마리 블랑슈 바니에 부인!
유부녀인 그녀에게 바친 25개의 가곡은 그녀를 향한 진한 사랑과 열정을 토해낸 곡이기도 하다.
그녀를 향한 8년간의 사랑은 드뷔시가 로마대상을 수상한 이후, 로마로 떠나면서 그들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청산되었다.
25세 때 만났던, 가브리엘 듀퐁!
그녀와 몇 년을 사귀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10여 년 동거생활은 궁핍했지만, 음악가로서 작곡 활동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그가 그녀에게 바쳤던 무수한 곡 중에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은 오늘날 그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도 유명하다.
듀퐁과 동거하는 동안에도 드뷔시는 다른 여성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구애하기도 했다.
1894년 32세에 가곡집 <서정적인 산문>을 발표하는데, 작품에 연관되어 가수 테레즈 로제와 인연을 맺게 된다.
듀퐁과 동거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테레즈와 사랑도 키워 나갔다.
이어 그는 테레즈와의 약혼 발표를 했지만, 뒤늦게 듀퐁과의 동거 사실이 탄로 나면서 테레즈와의 결혼은 무산되고 만다.
테레즈와의 결별도 잠시 잠깐, 드뷔시의 구애는 한 여자에게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테레즈와 파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1895년에는 카트린 스티븐스에게 청혼을 하기도 했다.
막을 수 없는 그의 연애 충동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는지, 그의 동거녀 듀퐁은 괴로움의 나날을 견디지 못해,
급기야, 1897년 마침내 권총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
주변 사람들과 음악계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 여자에게 머물지 않는 갈급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듀퐁의 자살 소동 사건 이후에, 드뷔시는 듀퐁의 친구인 로잘리 텍시에와 또 다른 사랑을 꿈꾸기 시작한다.
드뷔시의 첫째 부인인 릴리 텍시에 (1902)
릴리 드뷔시, 1902년 드뷔시는 그녀를 '나의 사랑 릴리'라는 애칭을 불렀고, 그녀에게 띄운 수많은 연서를 통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도 했다.
듀퐁의 자살 소동 사건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899년에 이윽고,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그 약속을 5년도 채우지 못한 채 릴리와의 결혼 생활도 드뷔시에게 새로운 여인이 나타남으로써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만다.
후에 엠마 드뷔시가 된 엠마 바르닥 모습 (1903년)
릴리의 뒤를 이은 드뷔시의 여인은 부유한 은행가인 바르닥의 아내 엠마로 당시 드뷔시가 가르치던 제자의 모친이기도 했다. 그들의 염문이 있기 전 엠마는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옛 연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각자 가정이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국 가정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택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열렬히 구애하며 사랑을 고백했던 드뷔시가 엠마와 도피행각을 벌이자 충격을 이기지 못했는지, 듀퐁에 이어 릴리 또한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만다.
다행히 릴리의 목숨은 건졌지만,
그녀의 인생은 이미 끝없이 추락하는 나락의 길과도 같았다.
사랑도 덧없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리라.
릴리의 눈을 피해 영국으로 도주한 드뷔시는 엠마로부터 클로드 엠마(슈슈)를 얻게 되었다. 결국 1905년 릴리와 이혼 후, 자신의 딸 클로드 엠마를 낳아준 엠마 바르닥과 재혼한다.
피아노 작품 곡 <기쁨의 섬>은 엠마를 향한 넘치는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창작 의욕을 한층 불태우게 한 대표곡이라 하겠다.
드뷔시와 그의 딸 끌로드 엠마(슈슈, 1995~1919)
슈슈라는 애칭을 가진 딸을 위한 피아노곡 <어린이의 세계>, 발레곡 <장난감 상자>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전주곡> 등을 작곡함으로써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딸에 대한 정성을 다한다.
과거 사랑했던 두 여인이 모두 자살을 기도할 정도의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추궁하는 이자이와, 쇼숑 등 많은 친구들에게서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탓인지, 영국 남부 해안가 도시인 이스트번에서 엠마와 피신하듯 한동안 생활했다.
마침내, 그는 엠마를 통해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애정 편력의 종지부를 찍었고, 딸 슈슈가 그들 사이에 있었기에 부부관계는 더욱 안정적이었으리라.
엠마와 슈슈가 함께 한 여생은 그 누가 뭐라 해도, 행복함 그 자체이자, 삶의 안식이었으리라.
드뷔시의 과거 여인들을 거쳐서, 그와 엠마의 사랑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품인<La mer(바다)>초판 악보 , (1903)
드뷔시의 사랑엔 밀려오는 파도가 있다.
2019. 5. 22. 가원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