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할까?

짝사랑도 오래하면 작품이 되는군

by 김정현 작가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하루이틀 사흘~~

중략~~ 일주일 이주일 ~~~한달 두달 석달"

이런 노랫말이 잘 어울리는 음악가!




"그녀를 보면 내가슴은 설레이고,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황홀하다는 생각뿐이다.

이제 그녀 앞에 서면, 정말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할지, 머리속은 하애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버린다.

아~~나의 짝사랑 조세피나여!"


스메타나를 이어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안톤 드보르작(Anton Dvorak,1841~1904)


안톤 드보르작(Anton DVorak, 1841~1904)

체코 프라하 인근의 조그마한 마을인 넬라호제베스에서 여인숙 겸 정육점을 가업으로 경영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체코 프라하 북부 블타바강변 근처 마을인 넬라호제베스에 있는 드보르작의 생가


13세때 독일어를 가르쳐준 리만 선생님를 통해 종종 배웠던 음악공부에 서서히 관심이 생겼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내 음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다행히 16세에 프라하에 있는 오르간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 곳에서
음악가가 되는 엄격한 기초교육을 받게 된다.


졸업후, 24세에 드보르작은 프라하에 머물면서 작곡 활동과 종종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당시 금 세공사의 두딸, 조세피나 체르마코바와 안나 체르마코바 자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서 있는 여인 ㅡ 드보르작이 짝사랑 했던 조세피나, 앉아있는 여인 ㅡ 드보르작의 아내이자 조세피나의 여동생 안나 체르마코바

몇 해가 지나 어느새,
드보르작은 짝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가르치고 돌아오는 날 밤이면,
젊은 청년 드보르작의 머리 속엔 온통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솜털처럼 보드랍게 춤추듯,
연주하는 조세피나의 하얀손과 그녀의 고요한
숨결과 창밖으로 퍼지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쳐 가슴 속에 깊이 울리곤 했다.


몇 해에 걸친 불면의 밤과 번민을 거듭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조세피나를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체르마코바 집안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소심한 성격 탓이거나,
혹은 고백 후에 거절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일까?


그가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는 않았음에도,
늘 옆에서 같이 수업을 받고 있었던 조세피나의 동생 안나는 미묘한 여인의 육감으로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미모의 조세피나가 드디어 배우가 되어 명성을 얻게고,
독일 바아마르 궁정극장의 무대에 서게 될 무렵,

가난한 음악가 드보르작의 조세피나를 향한 일방적 짝사랑이 종지부를 찍게 되는 순간이 도래하고 말았다.


그녀가 보헤미아 귀족인 바츨라프 백작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 짝사랑은 이리도 싱겁게 끝이 나는 것을,
설령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던들,
불투명한 나의 장래로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책임 질 수 있는 능력도 없으니..."


그의 초기 작품 중 가곡집<측백나무(cypress tree)>는 자신의 곁을 떠나는 조세피나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젊은날의 생기 넘치는 사랑과 감상의 테마가 흐르는 곡이다.


조세피나가 결혼한 이후,
드보르작은 조세피나의 여동생 안나와 연인이 되었고, 1873년 그녀와 결혼했다.

그녀를 알게된지 8년 만의 일이었다.


마치, 모차르트가 일로이지아와의 실연으로 그녀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했 듯이 인생에서

이런 비슷한 사랑 이야기는 다른 인생에도 데쟈뷰되는가 보다.


드보르작 부부와 자녀 (슬하에 8자녀 중 3명은 여의었다)


혼자서 하는 짝사랑은 끝이 났지만,
드보르작의 마음에는 안나의 언니로써 조세피나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처형이니깐 그럴 수 있겠거니 하지만

드보르작의 조세피나를 향한 순수함에는
변함이 없었던 듯 하다.

이러한 일들로 드보르작과 안나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한 가정사가 힘들었다는 얘기는 없었으니,
안나가 충분히 감수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꽃을 피우지 못한 혼자만의 사랑이었지만,
그녀를 향한 애틋하면서 좋은 감정은 늘 유지된
듯 하다.


조세피나 부부의 초대로 부부간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바츨라프 백작 또한 드보르작에 대한 배려심도 깊었다.

평소 드보르작이 자연과 벗 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비소카에 있는 자신의 영지를 싼값에 제공하기도 했고,

드보르작이 바츨라프를 만날 때 그 옆에는 조세피나가 늘 함께 했었다.


드보르작이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대되어 미국에 가족과 체류해 있을 때, 1895년 처형 조세피나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의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는 젊은 시절 장황하고 엉성하게 만들었던 첼로협주곡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혀 새로운 곡을 탄생시켰다는 평을 얻게 된다.


https://youtu.be/U_yxtaeFuEQ

첼로 : 쟈크린 뒤프레,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 -영국 로열 알버트롤 실황(1968.9)


1악장과 2, 3악장에서 그녀를 위해 썼던 노래 Op. 82중 'Leave me alone'를 인용함으로써,
생전의 그녀를 짝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떠나 보내는 이의 마음을 구구절절히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내 영혼의 비밀스러운 짝사랑이 시작될 때, 당신에게 처음으로 보여줬던 어설프고 장황했던 첼로협주곡이 미완으로 시작하였지만, 당신의 죽음 앞에 드리는 이 곡은 당신을 향한 사랑의 고결함이자 당신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노래합니다."


드보르작의 음악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그를 독려하고, 음악계에 그의 곡을 알렸던 브람스는 "이와 같은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왜 나는 몰랐던가? 알았더라면 오래전에
나도 썼을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드보르작의 뛰어난 음악성과 곡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이었지만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안에서 만이 그의 인생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주는 듯 하다.


짝사랑 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마법이
드보르작에게 통했다.
후대에게 인생을 아름다움에 깃든 한편의 시처럼

느끼게하는 이상적인 곡이 아닐 수 없다.


드보르작 당신의 짝사랑은 음악으로 꽃을 피우는군요~




첼로협주곡 안에서, 드보르작의 짝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아마도 그의 첼로협주곡은 전혀 다른 느낌의 곡으로 탄생했거나 이 세상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2018. 10. 24. 佳媛생각


120여년 전 감성이 그의 첼로협주곡

속으로 파고드는 밤이다.

오늘도 짝사랑으로 가슴 떨리는 하루를
보낸 청춘들이여!
부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듣고,
충만한 감성을 채우시라.

당신은 적어도 짝사랑만 한다고 슬퍼하거나, 스스로를 연민만 하는 불쌍한 인생은 아닐 것이오.


드보르작과 그의 아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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