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
1896년 1월 6일. 뤼미에르 형제가 커다란 봉제 천을 걸었을 때, 새로운 예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짐작했을까요? 저는 확신할 순 없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가장 '흥행' 할 거라는 사실은 예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는 마력이 있거든요. 1초의 착각을 일으키기 위해 24장의 사진들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진의 모음들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일으킵니다. 바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이죠.
움직이는 사진. 말 그대로 마술과도 같지 않습니까. 시각의 착각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사진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실제로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 을 만든 이후, 영화의 대중성을 주목한 사람이 있습니다. 서사 영화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조르주 멜리에스죠. 영화는 마치 마술과도 같아서, 마술사인 조르주 멜리에스가 주목한 것도, 어쩌면 운명일 수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FAj9fJQRZA
저에게도 영화가 마술 같이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의 영화사의 시작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DVD의 전성 시대가 시작되었고 텔레비전에서는 흔히 말하는 '케이블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연신 영화만을 틀어주던 채널이 많았고, 애니메이션을 주로 하던 채널에서는 가끔 만화 '영화'를 틀어주곤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개봉한 만화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희 아버지 말버릇이 있으시거든요.
"뭘 그런 걸 보냐~" 충청도 톤으로요.
여기에서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봤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명작으로 고르는 만화 영화들이 있는데, 그 중 한 편인 <베이커리가의 망령>을 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제 영화사에 극장이라는 공간이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영화의 역사는 오로지 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극장이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메가박스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CGV였던 영화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영화관은 저의 어린 시절에 유일한 극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롯데 시네마 용산점은 어릴 때, 한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상암 경기장의 영화관은 달랐습니다. 경기장 안에는 거대한 슈퍼 마켓도 있었으며,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때가 제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죠.
그 때 본 영화들을 기억합니다. <디 워>, <화려한 휴가>, <미이라 3>. 지금 다시 보라고 한다면, 한 번 정도는 깊게 생각할만한 영화들이죠.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즐겁게 보았습니다. 그 해, 저는 3번의 영화관을 갔고. 그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랑 같이 보러 간 영화들은 블록버스터, 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었고. 영화라는 마술에 빠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지금에서야 생각한다면, 이 또한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운명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진 않아요. 하지만 영화학을 접하고, 논문을 쓰면서 과거를 돌이킬 때마다 어린 시절의 제가 눈에 아른거리곤 합니다.
이것은 운명이다. 내가 글밥을 먹으면서, 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살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