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빨리 했나.
계획보다 한 달 일찍 복직했다. 장장 11개월의 육아휴직이 막을 내렸다. 1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눈도 제대로 못 뜨던 핏덩어리는 점점 사람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고, 모든것이 두렵고 어색하고 어설펐던 나의 체성분은 엄마의 그것으로 서서히 채워져갔다. 끝이 없을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지던 순간들과 영원히 붙잡고 싶을 정도로 반짝이던 순간들(진정한 단짠!). 그 모든 순간들이 촘촘하게 엮인, 31년 인생에서 가장 굵고도 길었던 11개월의 여정은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복직을 닷새 앞둔 날 아침. 아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열이 40도까지 올랐고, 먹을 것이라면 마다않던 먹보가 식음을 전폐했다. 공기를 찢을 듯 울어댔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기를 들쳐 안고 동네 병원으로 무작정 뛰었다. 유난히 볕이 더운 날이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병원문을 젖혔다. 카운터에 준비된 종이의 빈칸을 다 채우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긴 기다림 끝에 진찰을 받았다. 수족구성 구내염이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았다. 처방받은 약을 사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여봤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차도는 없었다. 다시 아기를 들쳐 안고 집 밖으로 뛰어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이번엔 옆동네의 제법 큰 병원으로 향했다. 또 다시 종이의 빈칸을 채우고 순서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어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가며 진찰실에 들어섰다. 진단은 같았지만 다른 종류의 약을 한움큼 처방받았다. 돌아오는 길엔 아기도 나도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지쳐 잠든 아기의 이마를 짚어 체온을 가늠해보며,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마음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일주일은 갈거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호박이는 다행히도 이틀만에 기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앓고 난 후 눈에 띄게 해쓱해진 모습과, 앞으로 또 아플 때가 오더라도 옆에서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은 온통 어지러워진 후였다. 새삼스레 복직의 시기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예상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지금이 아기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는 아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을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지, 등등의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출근날짜는 하루 하루 다가왔고, 결국 나는 예정대로 출근했다. 심중의 그늘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채.
그리하여 오늘은 복직 딱 일주일 째다. 아침 출근길, 엄마로부터 카톡이 도착했다. 무심결에 열어보았다. 방금 엄마가 찍은 아기의 동영상이었다. 영상 속의 호박이는, 거짓말처럼 걷고 있었다. 엊그제만해도 겨우 일어서던 아기가 하루 사이에 걸음마를 떼고 있는 모습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 아이의 첫 걸음마를 동영상으로 보다니. 내가 생각했던 첫 걸음마의 순간은 이런 게 아닌데. 절반의 기쁨과, 절반의 속상함으로 출근길은 내내 울렁거렸다.
아이의 첫 순간에 함께하지 못하는 일은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아픈 순간도, 예쁜 순간도, 자라는 순간도,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무심히 흘러가겠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지만서도. 나는 괜한 섭섭함을 어쩌지 못해 하루종일 동영상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았다. 한 100번 쯤 봤을 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