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담킴 Apr 26. 2018

수유에 대하여

10개월의 임신, 그리고 출산의 과정이 끝나면 육아라는 장거리 달리기가 시작된다. 이 긴긴 여정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제 1 난코스는 바로 '수유'다. 모유를 수유하든, 분유를 수유하든, 3시간마다 대찬 울음소리로 배고픔을 호소하는 갓난쟁이를 배불리 먹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1. 모유수유

우선 모유수유. 세 시간마다 공복상태가 된다는 주먹만한 아이의 위를 시시때때로 채워주어야 한다. 특히 모유는 소화가 금방 되어버려서, 젖을 물리는 초보 엄마라면 아이 수유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렇다면 밤에는 젖을 안 찾고 자느냐. 애 바이 애 이긴 하지만, 어느 시점까지는 밤에도 세 시간마다 깨서 젖을 찾는다. 우리집 아기는 200일 즈음까지도, 8시에 재우면 12시, 3시, 6시에 깨서 젖을 찾았다. 그의 배꼽시계 스케줄에 따라 나 역시 통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3시간짜리 조각잠을 잤고 컨디션도 너덜너덜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아이가 통잠을 자면 모든 것이 편해지는가. 그것도 아니다. '젖몸살'이라는 증상을 간과해선 안된다. 아기는 보통 두세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젖을 찾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몸은 아기의 시간표에 맞춰진다. 두세시간마다 젖이 가득 차오르고, 아기가 먹으면 비워지는 식이다. 그런데 아기가 수유를 건너뛰고 통잠을 잔다면, 제때 젖을 비워지지 못해 '젖몸살'에 걸리게 된다. 돌덩이처럼 굳어진 가슴은 옷깃만 스쳐도 '이년!'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아프다. 열은 펄펄 끓고 온몸은 얻어맞은 듯 쑤시지만 수유를 해야하므로 약을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실제로 젖몸살에 걸렸을 때 인터넷에서 민간요법을 모조리 찾아 닥치는대로 해 봤었다. 양배추를 얼려서 가슴 위에 얹기. 식혜 마시기. 유축하기. 아기에게 억지로 물리기. 옷깃만 스쳐도 아픈데 유축하고 아기에게 물리는 것은, 정말 이를 악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듣기론 마사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아이와의 외출은 또 어떠한가. 모유수유를 하면 짐은 한결 가볍다. 분유와 젖병을 따로 챙길필요가 없으니. 하지만 문제는, 모유수유를 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수유실이 없는 곳에서 아기가 배고파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식은땀이 줄줄 난다. 그래서 왠만하면 백화점, 쇼핑몰 등 수유실이 잘 갖춰진 장소로만 외출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과 조건 때문에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제한된다. 엄마가 먹는 것이 젖의 성분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술은 물론, 커피, 매운 것, 인스턴트, 밀가루 등 상당수의 맛있고 자극적인 메뉴들이 금지된다. 평소에 내가 좋아했던 모든 먹을거리들이 금지되다 보니 쌓이는 육아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깝깝했더랬다. 게다가 아플 때도 약을 쓰지 못한다. 다 나을 때까지 꾹 참는 수 밖에. 단유 후 마셨던 씌원한 맥주 첫 모금의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원샷을 했던 것 같다. 감격스러워서 사진까지 찍어뒀다.)

그리고 가장 마음 아픈 것. 가슴 모양이 망가진다. 젖이 차올라 늘어났던 가슴이 다시 줄어들면서 탄력도 모양도 엉망이 되기 쉽다. 원래도 자신이 없었지만 이젠 정말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가슴은 폭망했다. 언젠가는 너무 속상해서 벗은 채로 운 적도 있다. 여자로서의 인생이 쫑난 것 같은 허망함이 컸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가슴을 텅 비운 채로 살고 있다. 


2. 분유수유

분유수유는 수월한가. 분유는 기본적으로 비싸다. 프리미엄이나 유기농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값이 한 번 더 껑충 뛴다. 분유를 먹을 정도의 어린 아기라면 대부분의 엄마는 집에서 아기만 보고 있을 시기이다. 외벌이라는 얘기다. 마트 분유 코너 앞에 서면 구입이 부담스러운 마음과,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종종 충돌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마트에 가 보면 분유 뚜껑에 자물쇠 같은 것이 달려있다. 뚜껑을 열어서 분유를 퍼 가는 절도건이 종종 있었나보다. 웃프다.)

분유 물 온도를 맞춰 끓여주는 분유포트나, 먹고 난 젖병을 알아서 세척해주는 젖병세척기를 들여놓았다면 분유수유는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그런 '템'들이 없다면 매번 분유물의 온도를 맞추느라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를 달래야 하거나, 아이가 잠든 후에도 젖병을 씻고 삶는 등의 노동이 계속되어야 한다. 돈이 나가거나, 몸이 나가거나. 뭐가 어찌 됐든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린 아이를 먹여 키우는 데엔 앞서 적었던 것처럼 이러저러한 고충들이 수반되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뭐니뭐니해도 '주변에서 끊이지 않는 잔소리'다. 모유를 수유하면 '모유를 먹이면 애가 작다더라. 00을 먹고 젖을 물리면 아토피가 생긴다더라. 이렇게 깨작대서 젖은 잘 나오겠냐.' 등등. 분유를 수유하면 '왜 모유를 안먹이고 분유를 먹이냐. 아이에게는 모유가 제일 좋다. 분유 먹이면 살찐다. a분유 말고 b분유를 먹여라.' 등등. 이미 엄청난 애로사항들을 극복하며 해내고 있는 수유에 모난 말들이 툭툭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렇게 힘 빠질 수가 없다. 내 애를 설마 내가 굶기겠냐고요. 내 애한테 설마 내가 못 먹일 거 먹이겠냐고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삼키는 게 수유를 하면서도 가장 힘든 일이었다. 세상은 넓고, 내 수유방식에 참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참 많더라. 


그러니까. 도와주지 않을 거면, 적어도 초는 치지 말자. 있는 힘을 다 해서 키우고 있고, 젖먹던 힘까지 내서 먹이고 있다. 다 자는 새벽에 홀로 깨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외로움을 안다면, 응원을 해주자. 그 고독을 모른다면, 토닥여주자. 아기를 먹이느라 스스로의 끼니는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 세상의 모든 수유자들은 날선 간섭과 참견이 아닌, 박수갈채를 받아야 마땅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 방법의 자유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