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코리안 찾기
"아니에요, 김치는 한국 거예요." "그러니? 요새 인기더라."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 프렛에 잠시 들렀다가 내 옆에 앉은 영국인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엿듣게 되었다. 한 1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학생과 부모님이 마주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김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었다. '맞아요, 김치는 한국 거죠.'라고 괜히 참견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간질거렸다. 그 대신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런던에서 살면서 이렇게 이 단어를 많이 보고 들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난 1년간 코리안의 인기는 뜨거웠다. 특히 항상 새로운 메뉴를 선보여야 하는 외식업계에서 앞다투어 코리안으로 시작하는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고 현재 잇수(Itsu), 레온(Leon) 등 단발성 시즌 메뉴가 아닌 고정 메뉴로 자리 잡은 곳이 꽤 많다. 얼마 전에 영국의 유명 버거 프랜차이즈인 어니스트 버거(Honest Burger)에서 코리안 버거를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맛이 꽤 괜찮아서 한번 놀라고 가짜 김치가 아닌 진짜 김치를 넣은 것을 보고 두 번 놀랐다. 과거 호기심 때문에 한식당이 아닌 곳에서 코리안이 붙은 메뉴를 한 번씩 시도했다가 번번이 실망했던 기억이 나서 이 버거도 당연 그중 하나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전 지점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지만 워렌 스트리트 지점에서는 고정 메뉴로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만간 버거가 먹고 싶을 때 다시 한번 먹어볼 생각이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인지라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처음 영국에 왔던 6년 전,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하면 '북한이요? 남한이요?'라는 반응이 열이면 아홉이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국에 여행을 다녀왔거나 잠깐 살았던 사람,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 드라마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꽤나 자주 만난다.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거나 한국은 쿨하다며 엄지를 척 들어 올린다. '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괜스레 으쓱거리는 기분은 덤이다.
타지에서 살아가면서 본인이 나고 자란 곳이 알려지고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있는지, 왜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오늘이다. 쿨한 한국인으로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 나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