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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sun AN Feb 20. 2019

흙과 불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김창대 제와장(기와를 만드는 장인) 인터뷰  

월간한옥을 만들면서, 많은 장인과 작가, 예술인, 그리고 이 분야의 어른분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뷰 글이 다른 글보다 쉽게 느껴졌지만, 갈수록 인터뷰가 어렵고 또 이를 글로 정리하는게 어렵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대상의 생각을 담아야 하기에. 

그래도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지 못하는 성격의 나로서 인터뷰 글을 계속해서 쓰게 된 것은 큰 복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또 그 인생을 간접 경험하는 느낌을 받으니. 

작년 8월 가장 더웠던 때 김창대 제와장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기와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월간한옥 15호에 실었던 글을 다시 공유한다. 



흙과 불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제와장 김창대  

          

장흥에 위치한 김창대 제와장 가마터에 방문한 이 날은 39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 김창대 제와장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맨발로 흙을 밟고, 실자로 수평을 맞추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공간에 사람이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 한 대의 선풍기 뿐이었다.      

장흥 가마터에 처음 방문했던 때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이었다. 그때도 야외 작업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나마 겨울에는 가마터에서 나오는 열기가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해서 35도를 넘는 여름 날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모든 것이 수작업인 이 과정이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수제 기와를 만들려면 이렇게 아무런 기계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바보스럽다 싶을 정도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죠. 흙을 밟는 단순한 작업조차 기계를 쓰지 않으니까요.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이익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일이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좋아서 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고요.”        



<원형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다>


김창대 제와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전수교육조교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 한형준 제와장의 제자다. 도자기를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 관련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김창대 제와장은 1998년 한형준 제와장을 알게 된 후, 제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무형문화재는 한 대가 이어질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게 돼요. 힘들다고 하나를 바꾸게 되면 또 하나가 없어질 수 밖에 없죠. 제 가장 큰 역할은 스승님에게 배운 것을 온전히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전통 방식 그대로를 이어가야죠. 그래야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이 가장 큰 역할을 잊고 욕심을 부리면 이 일을 못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는 이야기 중에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원래 수채화를 전공했던 그는, 선배들이 흙으로 작은 물레를 돌려서 형태를 만들고, 그런 것들이 다시 항아리가 되고, 도자기가 되는 것이 재밌어서 도자를 전공하게 되었다. 도자기가 좋았고, 좋았던 만큼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고 했다. 졸업 후 도자 실기를 전담해서 가르치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기와를 접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기와를 가르쳐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자를 전공한 사람들이 기와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막상 와서 배우다 보니 선생님이 흙을 만지는 것, 불을 조절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 신기했어요. 그냥 잘한다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 있었어요. 방식은 투박하고 촌스러운데 모든 것이 정확했죠. 흙 하나로 반죽 질기를 맞추고, 나무 하나로 불을 조절하고.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걸 보고 반해버렸죠. 그러면서 이 일을 전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오랫동안 해왔던 도자에서 직업을 바꿀 만큼 그를 움직인 것은 스승의 작업 모습이었다. 긴 시간 체득된 장인의 손은 그에게 그 어떤 기술보다도 위대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후 쉬지 않고 기와 작업을 이어온 그는 이제 수제 기와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손으로 만든 기와는 한 장만 놓고 봤을 때는 알기 어렵지만 지붕에 올렸을 때 그 매력이 잘 나타난다. 기계로 만들 수 없는 수제 기와 만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색감이 한옥과 어우러져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편안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과 환경과 어우러진다. 

 “저는 주로 문화재 복원 작업을 하기 때문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한 작업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의 깊이가 묻어나 원래 있던 것처럼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원래 돌 하나도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새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보다 매력적이잖아요. 제가 하는 기와 작업도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수제 기와의 편안함은 흙과 나무, 불과 같은 자연적인 재료로부터 나온다. 기와를 만들 때에는 보통 다섯 가지 흙을 채취해서 사용한다. 다섯 가지 흙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재질과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업의 성격에 맞게 흙을 조절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전통의 방식대로 흙을 채취하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곳에서 채취한 흙이라 하더라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점은 기와의 재질과 색감에도 영향을 준다. 기와를 굽기 위해 불을 땔 때는 땔감이 되는 나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소나무를 썼을 때, 편백나무를 썼을 때, 자작나무와 대나무를 썼을 때, 그리고 마지막에 솔가지를 넣었을 때 나뭇가지 하나가 변수가 돼서 각각 다른 값을 낸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다양한 변화를 할 수 있는 작업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원형을 지키는 것이라고 다시 강조한다.     



<호기심이 만든 열정>


제와장은 물을 담기 위한 그릇 외에 흙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조형물을 작업할 수 있다. 그에게 다른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그에게 고된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작업은 항상 제게 호기심을 자극해요. ‘이 흙을 썼더니 이런 색깔이 나왔네’, ‘불을 이쪽으로 때니까 이 색깔이 나왔네.’ 자꾸 호기심이 생겨요. ‘이번엔 이런 전돌을 만들면 좋겠다.’, ‘다음엔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보자.’ 이렇게 계속 적어두고 언젠가 실현시켜봐야지 생각하곤 해요. 아마도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런 호기심인 것 같아요.”      

흔히들 장인은 몇 세기 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재현하거나 복제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통의 기술을 지키면서도 작은 발견을 놓치지 않는 이 젊은 장인을 보며, 장인은 ‘새로움에 닿기 위해 원형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안유선

curator@hanexpo.co.kr


ⓒ월간한옥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월간한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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